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ㅣ 1월 26일 ㅣ예수님과 함께할 때 사라지는 두려움_이재훈 목사

 요한복음 6장 16~21절  우리의 신앙이 확인되는 시점은 태풍이 불어오는 순간입니다. 금이 용광로에 들어가야만 도금인지 순금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시기 바랍니다.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원하는 목적지까지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메시지는 기적을 믿는 것과 기적을 행하신 분을 믿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체험하거나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는 ‘기적을 경험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적을 경험해도 믿지 않는 것이 ‘기적’ 예수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굶주린 청중에서 흥분한 선동가로 변했습니다. 이들이 흥분한 이유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눈앞에서 생생하게 일어난 기적을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을 똑바로 믿지는 못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들을 피해 기도하기 위해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왕이 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들의 환호성을 거절하고 홀로 산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이후에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던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보고 흥분한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지 않은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보고 흥분한 군중들로부터 제자들을 분리시키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반강제적으로 제자들을 떠밀어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날이 저물자 예수의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향했습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이 있는 곳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16~17절)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호수 건너편에 위치한 가버나움으로 건너가고 있을 때 갑자기 폭풍을 만났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시에 따랐지만 폭풍이라는 고난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폭풍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떠났기 때문에 폭풍을 만날 일이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날 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제자들이 폭풍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제자들을 폭풍의 한가운데로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폭풍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실 때 두 가지 종류의 폭풍을 사용하십니다. 첫 번째는 올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고, 그릇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폭풍입니다.  두 번째 폭풍은 사람들의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해 사용하십니다. 은처럼 단련된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온전케 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주님 뜻대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선교사로 파송됐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지에서 뜻하지 않게 질병에 걸렸거나 어린 자녀를 천국으로 보낸 경우를 주변에서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인생의 폭풍이 우리에게 불어오는 것일까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 떠나는 길에 왜 이런 아픔과 갈등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러한 고통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폭풍이라는 고난을 만났을 때 자신을 숨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숨어계실 때 제자들은 본심을 드러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확인되는 시점은 성령 충만한 예배시간이 아니라 인생에 태풍이 불어오는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금이 용광로에 들어가야지만 도금인지 순금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 19절과 20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주십니다.“그들이 노를 저어 한 25~30스타디온쯤 갔을 때에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배 쪽으로 다가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제자들은 세찬 바람으로 인해 불어오는 풍랑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이 장면이 마태복음에는 “그들이 두려워하며 ‘유령이다’하고 외쳤습니다”(마 14:26)라고 기록됐습니다. 제자들이 폭풍보다 예수님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폭풍의 한가운데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외면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항상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 나타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폭풍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에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계시고,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 되면 여러분의 손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실 때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죄악 가운데 찾아오기 때문에 두려워 떨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과 환경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할 수 있다는 마음과 근신하는 마음과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기적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이런 기적이 있어야 해’라고 해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동행해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이것을 꼭 이뤄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믿음의 성장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 위를 걸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이 가능해집니다.   우리 인생에 폭풍을 허락하시는 이유 예수님이 배에 오르고 바람이 잠잠해지자 제자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4:33)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듣기 원하셔서 군중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을 때 홀로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호수로 내보내시며 훈련을 시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폭풍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신앙의 고백을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기꺼이 예수를 배 안으로 모셨습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도착했습니다.”(21절)예수님을 여러분의 인생에 선장으로 모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인생의 배에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시면 그 배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예수님이 숨어계신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면 가장 알맞은 때에 예수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을 배 안으로 초청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