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새벽부흥집회 ㅣ 1월 25일 ㅣ기적만 따르는 사람들_이재훈 목사
요한복음 6장 1~15절 5,000명의 무리를 바라보면서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법칙입니다. 긍휼한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근처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는 남자만 5,000명쯤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기도 하던 중에 저녁식사 때가 되었습니다. 이때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요청을 합니다. “날이 저물자 열두 제자가 예수께 다가와 말했습니다. ‘우리가 외딴 곳에 와 있으니 사람들을 보내 주변 마을과 농가로 가서 잠잘 곳을 찾고 먹을 것을 얻게 하십시오.’”(눅 9:12)그런데 예수님은 외딴 곳에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눅 9:13)고 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기적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가르쳐주기 원하셨습니다. 작은 가능성으로 일어난 오병이어의 기적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 번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첫 번째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 빌립을 향해 던지신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요한복음 6장 5, 6절입니다.“예수께서 눈을 들어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로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께서는 빌립이 어떻게 하나 보시려고 이렇게 질문하신 것일 뿐, 사실 자기가 하실 일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예수님이 빌립을 지목하신 것은 그 지역이 빌립의 고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고 물어보십니다. 이때 빌립은 동문서답을 합니다.“빌립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한 사람당 조금씩만 먹는다고 해도 200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7절)예수님은 빌립에게 어디에서 빵을 살 수 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얼마나 돈이 들 것인지를 계산합니다. 빌립의 마음에는 굶주린 사람들을 향한 긍휼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배고픈 자를 먹여주실 때 예수님의 마음에는 긍휼함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산이 아니라 긍휼입니다. 5,000명의 무리를 바라보면서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법칙입니다. 긍휼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제자 안드레가 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제자들 중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겠습니까?’”(8~9절)안드레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측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알아보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이 작은 마음, 가능성 때문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작은 가능성, 한 사람의 도시락밖에 되지 않는 그 음식을 예수님 앞에 가져왔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의 두 번째 법칙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앉히라.’ 그곳은 넓은 풀밭이었는데, 남자들이 둘러앉으니 5,000명쯤 됐습니다.”(10절)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11절 말씀에 세 번째 기적이 나옵니다.“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씩 나눠 주셨습니다. 물고기를 가지고도 똑같이 하셨습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되 배부르게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작은 가능성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을 일으키실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은 감사기도입니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부딪혔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작은 가능성을 붙잡고 감사기도를 드릴 때, 우리 앞의 막힌 담은 무너지고 닫힌 문은 열리며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삶의 기적을 이어가는 하나님의 비결입니다. 옛 창조의 기적과 새 창조의 기적 C. S. 루이스가 쓴 <기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기적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옛 창조의 기적’입니다. 옛 창조의 기적이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질서의 흐름대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기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지 돌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또 우리의 몸이 아플 때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술이나 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의술과 약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의 능력, 면역체계를 통해서 치유가 이뤄집니다.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몸은 치유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질서와 흐름을 존중하십니다. 이것이 옛 창조의 기적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기적들이 옛 창조의 기적입니다.두 번째는 ‘새 창조의 기적’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처녀의 몸에 아이가 잉태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도 새 창조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새 창조의 기적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깨뜨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셨으나 잉태되자마자 세상으로 나오신 것은 아닙니다. 잉태할 수 없던 몸에 아기가 잉태되었지만, 임산부의 배가 불러오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셨습니다. 옛 창조의 기적이든 새 창조의 기적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기적이 이 땅 위에 일어날 때, 기적은 반드시 자연 과정과 함께 동화됩니다. C. S. 루이스는 “기적이란 자연의 패턴을 중단시키는 기술이 아닌 자연의 패턴 속에 새로운 사건을 들여오는 기술이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세 번째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배부름의 위험, 기적의 위험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아 두라.’”(12절)예수님께서 기적으로 만드신 빵이 모두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자 남은 빵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남은 빵을 버리지 말고 모아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필요하면 계속해서 기적을 일으키셔서 빵을 얻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적의 세계를 경험한 그들을 환상 속에 머무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으로 만드신 그 빵은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서 배부름만 주고 끝나는 신기루 같은 빵이 아니라 내버려두면 썩는 자연적인 빵이었습니다. 우리가 기적만 따르고 기적에 배부르게 되면 참되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배부름만을 좇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하나님을 높이는 것 때문이 아닌 배부름의 기적을 위해서가 됩니다. 15절에 보면 사람들에게서 그 위험이 나타납니다.“예수께서는 그들이 와서 강제로 자기를 왕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사람들은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굶어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배고프면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올바르게 믿지 않았습니다. 배부름의 위험, 기적의 위험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에게 버려지는 것을 버리지 않게 하시고, 다시 모아 그것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기적에 도취되어 기적만을 따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땀 흘려 일함으로써 먹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고 감사한 일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는 버려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눈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온도를 높여주시니깐 눈이 다 녹아서 물이 되었습니다. 그 물은 어딘가에 식수로 쓰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쓸데없는 눈일지라도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식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삶 속에 쓸데없이 버려지는 시간, 물질, 지식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일어나게 하는 기적의 마지막 법칙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님들의 필요에 응답하셔서 놀랍게 채워주시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