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별새벽부흥집회 ㅣ 2월 2일 ㅣ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_조정민 목사

요한복음 7장 14~24절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믿음 생활을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무엇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가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 분별  “명절이 반쯤 지났을 때에야 비로소 예수께서는 성전으로 올라가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놀라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것을 아는가?’”(14~15절) 요한복음에 나오는 표현 중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가르쳤다’는 표현은 여기에서 처음 나옵니다. 가르침을 시작하니까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어떻게 배우지 않고 가르칠 수 있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들에게 가르침의 기준은 토라와 미시나입니다. 당시에 랍비들은 토라를 다 외웠습니다. 그리고 미시나를 공부했습니다. 미시나는 율법서 토라의 주석 전집입니다. 63권입니다. 랍비들은 이것을 통달해야 가르칠 수 있다는 통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대로 된 랍비 문화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격도 없는 사람이 가르치니까 가르침의 자격과 권위가 어디서 왔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권위의 출처를 따지느라 권위의 본질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목수인 아버지를 통해 세상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 목수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부서진 것을 고쳐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백성들의 고통과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직접 다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르침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분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예수님은 “내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르침의 출처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책상에서 오지 않습니다. 물론 신학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와야 합니다. 성령님으로부터 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구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 가르침이 나에게서 온 것인지 하나님께로 온 것인지를 반드시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깊이 들어가서 보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잘 들으려면 말씀을 보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좋은 설교만 들으러 다니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사람으로부터 온 것인지의 분별 기준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을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라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합니다. 18절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보내신 분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진실하며 그 안에 거짓이 없다.”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한다면 첫 번째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두 번째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구체적인 태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과 정직입니다. 한마디로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각자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되, 진실하게 거짓 없이 살고, 정직하게 사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도대체 너희는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19절)세 번째는 율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바로 사람들의 대답이 나옵니다. “무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귀신 들렸소.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오?’”(20절) 이것은 말꼬리를 잡는 대화법입니다. 본질에 밀리면 말꼬리를 잡습니다. 말꼬리를 잡는 것은 이미 육적인 대화입니다. 니고데모는 당대의 학자이지만 요한복음 3장에서 “어떻게 거듭나야합니까? 어떻게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납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아무리 배운다 한들 이것은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4장에서 수가성의 여인은 한마디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 생수를 내게 주셔서 나도 목마르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배워도 덫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는 지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계속 이뤄지기를 원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 ‘공정하게’ 판단하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왜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이 답변하십니다. 2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자 너희 모두가 놀랐다.’”예수님은 평면적으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감춰진 것을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자 너희 모두가 놀랐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놀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에 놀란다는 것은 내가 그 일에 이해관계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면 불안해집니다. 불안해지면 분노가 생깁니다. 분노는 자칫 치기가 되고, 음해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놀라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담대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은 그 본질을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38년 된 병자를 안식일에 낫게 했다고 충격을 받지 않았느냐”고 하십니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법을 주었기 때문에 너희는 안식일에 할례를 베풀고 있다. (사실 할례는 모세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그 전 조상들에게서 온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에게 할례를 베푸는 것이다.”(22절)유대인들에게 할례는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태어난 지 팔 일이 되면 안식일이라도 할례를 행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지적하십니다. 안식일에도 자식이 귀하기에 할례를 해서 안식일법을 어기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딱 한 번 어겼다고 설명하십니다. 할례가 안식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순됨을 먼저 지적하고 계십니다. 율법주의의 특징은 본문보다 해석과 주석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설교를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모세의 율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데 안식일에 사람의 온몸을 성하게 해줬다고 해서 너희가 어떻게 나에게 화를 내느냐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기만 하면 날마다 안식일입니다. 그 옛날 율법시대에도 제사장들에게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누구나 다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안식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24절입니다. “겉모양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공정하게 판단하라.” 드러난 것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중심으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드러난 것으로 일하지 말고 온 마음을 담아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내가 만일 사람의 언어와 천사들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소리 나는 꽹과리와 같을 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울리는 꽹과리와 징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정리 박영주 기자 pyjoo@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