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특새 | 12월 30일 | 새 창조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

■ 라준석 목사

 

 

▲ 라준석 목사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복을 주십니다. 전심으로 찬양과 경배하는 진정한 예배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9절

 

오늘 말씀의 핵심 단어는 9절에 있는 ‘경배’입니다. 9절 뒷부분에 “너는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씀은 ‘너는 하나님만 예배하라. 절대로 예배를 포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예배를 포기하면 한 번은 살겠지만 곧 영원한 죽음에 이릅니다. 죽음과 비웃음, 조롱 앞에서도 예배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천국에서 누릴 새 창조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라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드러내 놓고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예배를 선택할 때 당하는 어려움 일곱 가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예배를 선택하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사람들은 사막으로 추방당해 짐승의 밥이 됐습니다. 예배를 선택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임을 당하고 그 부모의 죽음 앞에서 자녀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나 우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이다. 이는 처음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계 21:4)는 말씀은 주님이 오시면 생명을 잃을 걱정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는 굶주림의 고난이 찾아옵니다. 예배를 선택하면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네로 황제가 예배를 방해했습니다. 네로에게 경배해야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표가 주어졌습니다. 그 표를 받지 못하면 어떤 물건도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예배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말 것을 명령하십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저주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돌에 맞아 죽거나 톱으로 허리를 켜서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죽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는 방법일 뿐 저주는 아닙니다.

 

네 번째로 예배를 선택하면 죽음을 당하고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찾아왔습니다.

 

다섯 번째 어려움은 잊혀짐의 문제입니다. 예배를 선택하고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셨는가’라는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여섯 번째는 어두움의 문제입니다. 대낮에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믿고 싶은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 어두움 가운데 살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못하고 말 것인가’라는 걱정이 생깁니다.

 

일곱 번째는 통치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죽이는 황제의 통치는 영원할 것인지, 하나님은 지금도 다스리는가 하는 의구심이 찾아옵니다.

사탄과 우상숭배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하라고 유혹합니다. 예배를 포기하면 생명과 배고픔, 저주, 절망, 잊혀짐의 문제가 한 순간에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당한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환상과 계시를 받습니다. 요한은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흰옷을 입고 날선 검을 가지신 승리자 예수 그리스도의 환상과 예배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면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사탄과 우상숭배자들이 무저갱에 들어가고 예수님을 경배한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거룩한 신부가 되는 것을 환상으로 목격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환상을 보여주시며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 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심

 

“그 후 천사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강물은 도성의 길 한가운데로 흐르고 있고 강 양쪽에 있는 생명나무는 매달 열매를 맺고 열두 열매를 맺고 나뭇잎들은 나라들을 치료하는데 쓰입니다. 또 다시는 저주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도성에 있고 그의 종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1~3절)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에게는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첫 번째 복은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생명의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어린양의 보좌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예배를 포기하면 죽고 예배를 선택하면 삽니다. 예배를 포기하면 순간적으로는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잘린 가지와 마찬가지로 죽고 말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생명나무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는 양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나무가 생명나무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열매가 아닌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예배를 선택하면 굶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복은 저주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어떠한 것도 예배자에게 저주가 되지 않습니다. 시험에 떨어진 것도 잠시 쉬었다 가라는 예수님의 뜻입니다. 사탄은 어떤 일이 생각대로 안 풀리면 하나님이 저주한 것이라고 미혹합니다. 하지만 예배자에게는 그 어떤 고난과 죽음도 저주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저주가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영접하면 우리 가운데 천국이 임합니다. 천국은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예배자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이며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밤이 없겠고 그들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므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통치할 것입니다.”(4~5절)

 

네 번째 복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예배자는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더라도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또한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말씀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의 이마에 표시를 해 두었다는 뜻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다섯 번째 복은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시기 때문에 어둠 가운데 다니지 않게 됩니다. 천국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통치합니다. 사탄의 권세를 받은 황제가 언제까지나 통치할 것 같지만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움직입니다. 진정한 통치는 세워주고 살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자가 되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양과 경배하는 예배자를 쓰심

 

“그러자 천사가 내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라. 나는 너와 네 형제 예언자들과 이 책에 기록된 말씀들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종 된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께 경배해라.”(9절)

여러분, 예배자가 되면 죽지 않습니다. 예배자로 살면 굶지 않습니다. 예배자가 되면 길이 열립니다. 예배자가 되면 창피를 당하지 않고 빛이 임하게 됩니다. 예배자가 되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예배를 선택하면 비웃음을 살 것 같고 어려움을 당할 것 같지만 하나님만을 붙드십시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예배자가 되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예배를 포기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포기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쓰지 않습니다. 예배를 포기하는 민족도 쓰지 않습니다. 전심으로 찬양과 경배하는 진정한 예배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 정리 정성진 기자 jun@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