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12월 17일 용서한 것 같이 용서해 주소서(마태복음 6장 9~13절) / 이재훈 목사

마태복음 6장 9~13절

 

이재훈 목사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의 사이클을 사랑의 사이클,

하나님의 은혜의 사이클로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소서’ 라는

기도를 날마다 드림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소서’

이 말씀을 어떻게 보면 앞뒤가 바뀐 것 같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정확하게 보면 순서가 정반대입니다. ‘우리’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할 때 항상 어려운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용서는 우리의 믿음과 마음 그리고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용서의 관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제목을 주셨습니다. 한 가지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우리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시험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한 가지 기도제목을 주셨고, 영혼과 마음을 위해서는 두 가지 기도제목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필요보다는 영혼과 마음을 위해 두 배로 기도해야 합니다.

‘죄도 지어봐야 용서받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남을 용서하고, 남에게 용서받는 것만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이 하나님과 우리 가운데 있는 용서의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합니다. 성경에서는 용서를 가장 쉽게 이해하기 위해 빚이라는 단어로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죄라는 개념을 왜 빚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설명했을까요. 빚은 처리되지 않으면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빚은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빚을 갚지 않으면 대가가 따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여전히 남아있게 됩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기 위한 용서

 

12절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진 자를 용서한 것같이’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법적인 키가 나옵니다. 그것은 ‘~같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즉  ‘그와 동시에’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용서에 이런 서약의 기도가 덧붙여지는 것일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용서의 종류를 알아야합니다. 용서의 종류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용서, 하나님과 친밀감을 누리기 위한 용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용서는 십자가의 사랑을 의지하고 믿으면 받을 수 있는 용서입니다. 즉각적인 용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으로 가면 즉각적인 용서, 무조건적인 용서가 주어집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이 가득할 지라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 자녀로서의 용서, 십자가의 용서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감을 누리는 용서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용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용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는 용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용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6:14~15)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조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감을 나누는 회복의 용서는 바로 조건적인 용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적인 용서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여전히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을 품고 용서를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과 나눌 수 있는 친밀함의 풍성한 축복, 아름다운 기도 응답의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친밀함의 축복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우리 마음속에 아직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보류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용서는 무조건적이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나누는 용서는 조건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우리 죄 진자를 용서한 것 같이 그와 동시에 아버지께서도 나의 허물을 용서하심으로써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시켜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주님 앞에 올려 드려야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용서를 체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버지의 용서를 누리고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가운데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결단의 용서와 감정의 용서

 

용서에는 결단의 용서와 감정의 용서가 있습니다. 결단의 용서는 내가 용서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용서는 감정으로는 용서되지 않은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 내가 용서하기로 결단했지만 감정적으로 용서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단의 용서와 감정의 용서를 구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결단하는 용서를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용서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용서해야할 대상이 회개하고 좋은 마음으로 화해되었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의 변화와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을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변화되지 않고, 뉘우치지 않고 회개하지 않더라도 나로부터 내 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용서의 목표는 화해입니다. 그러나 화해까지는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단계를 말씀하십니다. 용서의 단계는 감정이 화해의 감정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우리의 중심에서 남을 용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 = 남을 용서하는 것

 

예수님께서는 남을 용서하는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용서를 체험하는 것이 연결되어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정 남을 용서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결단의 용서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무조건적인 용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용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됩니다. 자기가 받은 대로 주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는 조건적인 용서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용서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용서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용서하지 않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의 결단을 내릴 때 자유와 행복,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남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존심, 이기심과 싸워야합니다. 이기심은 누룩과 같습니다. 내가 10개의 상처를 받았으면 100개의 상처를 받은 것처럼 부풀립니다. 자기의 상처를 만들어냅니다. 이기심, 자존심, 용서받지 못하는 마음이 하나가 될 때 우리의 마음은 복잡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를 통해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남을 용서함으로써 용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용서하면 용서의 사이클이 돌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죄악의 사이클을 사랑의 사이클, 하나님의 은혜의 사이클로 변화시키기를 바랍니다. 주변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소서’라는 이 기도를 날마다 드림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