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법으로 주어진 완전한 의- 이재훈 목사
믿음의 법으로 주어진 완전한 의로마서 3장 21~31절이재훈 목사
하나님의 의는 전적으로 믿음으로만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덧입혀지는 의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쌓여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러나 이제는’으로 시작합니다. 새로운 전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접속사 ‘그러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접속사 ‘그러나’가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여주신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은 로마서 3장뿐만 아니라 로마서 전체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이러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덧입혀진 하나님의 의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별개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21~22절).
이 말씀은 성경의 핵심이자 믿음의 출발점이 되는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모두 잘 알고 있는 말씀 같지만 이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사건을 통해 심판하시면서 노아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노아를 선택하셨을까요. 노아가 다른 사람보다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요?
성경에서는 노아를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알코올중독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수치스러운 일도 당했습니다. 이러한 기준으로 보면 노아는 의인의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브람 시대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는 계시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람의 자손도 이와 같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그런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창 15:6). 아브람은 약속의 말씀을 듣는 순간 믿음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땅의 먼지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에서 엘리에셀을 양자로 들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는 네 상속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네 몸에서 나온 사람이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다”(창 15:4)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랍게도 아브람에게는 믿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믿음이 생겼고, 하나님이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전적으로 믿음으로만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덧입혀지는 의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쌓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초대교회 이후 중세시대 사람들이 이 진리를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 진리를 감추고 어둡게 만든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이 진리를 드러내야 하는데 교회 역사가 길어지면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흐리게 만든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도 이것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은 이 말씀 한 구절을 붙잡고 시작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중세시대처럼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중세시대를 어둠의 시대라고 할까요. 교회는 흥했지만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에서 원리가 되지 못하고 한 가지 교리로만 머무를 때 교회는 타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는 자랑과 교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이는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종교개혁자들에게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이신칭의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든다는 것 이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다고 선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 선포된 거룩입니다. 우리의 삶은 실제로 거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다고 선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쌓아올린 것으로 거룩하게 되려고 하니 잘못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공로종교나 도덕종교, 철학종교가 아닙니다. 우리의 출발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하시는 하나님의 칭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구속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의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집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습니다”(23~24절).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인해 값없이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값이 없다는 것 때문에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값을 지불한 것은 잘 믿습니다. 세상의 종교는 일종의 보험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험(insurance)이 아닌 보증(assurance)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 믿음이 필요합니까. 우리가 값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값을 지불한 것에는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값없이 은혜로 주어졌지만 누군가가 값을 지불했습니다. 누군가가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값이 없는 것입니다. 24절에 ‘구속’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구속이라는 단어는 값을 치렀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가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날에는 구속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채무관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종이나 노예가 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 문화는 채무관계를 통해 종이나 노예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구약에도 이러한 구속이 나옵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빚을 지고 나쁜 짓을 해서 종이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아내를 다시 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은 15세겔을 주고 아내를 되찾아옵니다. 이것이 구속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 죄로부터 그냥 나올 수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을 지불해야만 죄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죗값이 지불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인정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리스도가 치르신 대가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롭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또 다른 한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가운데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이때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를 나타내신 것은 자신의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25~26절).
첫 번째는 ‘구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속죄제물’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제사 제도에 나타난 원리를 설명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모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욤키프르(대속죄일)입니다. 이 속죄일에는 마지막에 모든 백성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제사장이 염소 두 마리를 선택하여 한 마리는 속죄제사로 드리고 다른 한 마리(아사살의 염소)는 따로 구별합니다. 속죄제사가 끝난 후에 대제사장이 그 염소에 안수를 합니다.
모든 백성들의 죄가 그 염소에 전가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염소를 광야로 떠나보냅니다. 그것이 속죄일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속죄제물을 진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로운 방법입니다.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주어졌고 완전한 용서가 허락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는 것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공짜로 주어졌지만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27절 이하에서는 세 번의 질문이 나오는데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와 “하나님이 유대 사람만의 하나님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합니까?”입니다. 대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사실과 진리를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의롭게 된 자의 축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