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죄 앞에 평등하다 - 이재훈 목사
인간은 죄 앞에 평등하다로마서 3장 9~20절이재훈 목사
죄 앞에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습니다.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됩니다.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게 되고, 구원이라는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의 주제는 ‘모든 사람은 죄 앞에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가운데 처해 있다’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이라는 단어에 민감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는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항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구원이라는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죄에 빠져 있는 사람들
사도 바울 이후로 죄와 구원의 관계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신학자는 어거스틴입니다. 그는 죄와 관련된 인간의 상태를 4단계로 정리했습니다.첫 번째 단계는 타락 이전의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타락한 이후의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죄 가운데 빠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아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가운데 있지 않으면 또다시 죄를 짓게 됩니다. 네 번째 단계는 영화로운 상태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에 빠져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구분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의 헛된 우상과 바꿔버린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여기는 도덕주의자들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종교적인 의로움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입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헛된 생각, 거짓, 위선 등으로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없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냅니다.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구원’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더 낫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했습니다”(9절).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종과 문화, 지식과 경제에 상관없이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이라는 것은 지배받고 있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현실을 인정해야만 십자가의 축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기 위해 제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제물을 바치는 끔찍한 제사의식이 나옵니다. 예물을 드리는 사람은 제물로 황소를 바치기 위해 제물을 죽이고,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제물을 죽이는 감정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싫어하실까요. 하나님은 죽임을 당하는 제물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고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여러분,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는 만큼 구원의 은총과 은혜의 깊이는 깊어집니다.
신체를 통해 죄 짓는 사람들
여러분, 사도 바울은 사람들의 신체를 인용해서 인간의 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책을 보면 알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과 눈빛, 소리, 입술의 움직임 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총체적인 타락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창조된 신체를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구멍은 열려 있는 무덤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목구멍이 타락했다는 의미입니다. 혀는 거짓말만 일삼고 있습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습니다. 또한 저주와 독설이 가득합니다. 얼굴에 있는 모든 기관들이 죄를 짓는데 기능이 모두 다릅니다. 혀는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입술에는 독이 가득합니다.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입과 입술, 목구멍, 혀입니다. 얼굴에 있는 네 개의 기관이 연합해서 완벽한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거짓의 연합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죄를 짓는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고 이것 때문에 완벽한 연합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거짓을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진실을 위해서는 생명을 바칠 사람은 있습니다.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버릴 사람은 없습니다. 죄와 악이 함께 연합을 이루면 하나 됨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일에는 연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우리의 죄는 말을 통해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말은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말실수가 없는 사람을 가리켜 온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진다는 것은 언어가 거룩해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이 있었습니다. 강도들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양팔과 다리가 못 박히자 강도들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는 바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혀로 죄를 지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를 짓습니다.
우리의 목구멍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나오는 기관입니다. 또한 우리의 혀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입술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자 존 헨리 주엣은 죄로 인해서 인간의 신체가 얼마나 파괴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죄는 시각을 손상시켜서 맹목적으로 일하게 합니다. 청각을 마비시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미각을 왜곡시켜서 단것을 쓴 것으로 혼동시킵니다. 촉각을 마비시켜서 과거의 느낌만이 들도록 합니다. 죄는 영적인 모든 감각을 막아버리고 질식시켜 버립니다. 죄는 모든 것에 무감각하게 만들고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의 신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바랍니다.
발은 죄를 짓는데 빨리 달려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발은 어떤 발이어야 합니까. 아름다운 구원의 소식을 증거하는 일에 앞장서는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눈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이 눈치를 보거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의 시선만을 의식해야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여러분, 인간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록되기를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10~11절).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타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죄악이 시작됩니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죄 가운데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율법은 변명할 수 없고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없게 만듭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율법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아무리 선하다고 해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는 없습니다. 또한 율법을 통해서도 우리가 완전해 질수는 없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죄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정리 황치연 기자 hcy@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