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다스리지 못한 비참한 결과
우리가 죄에 지배당하지 않고 사는 유일한 비결은
날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가인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분노, 우울, 시기, 질투를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제거하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4:1~15
이재훈 목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무너뜨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것이 사탄의 목표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해야만 하는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할 때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타락한 아담과 하와로부터 자녀가 출생되기 시작했습니다.
세 가지 종류의 죽음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죽음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죽음이 당장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먹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는 영적인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영적 죽음의 상태에 들어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자아가 분열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음으로 금지된 명령을 깨뜨렸을 때 즉시 영원한 형벌로 처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상태지만 육체적 죽음이 다가오기 전까지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형벌의 죽음을 인간에게 주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영원한 형벌의 죽음은 사탄을 위해서 예비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창세기 4장에는 가인과 아벨, 두 아들에게 일어나는 비극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니 그녀가 임신해 가인을 낳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내가 아들을 얻었다.’ 그리고 하와는 다시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 되고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됐습니다”(1~2절).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을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내가 아들을 얻었다’는 고백이고, 아벨의 이름의 뜻은 덧없음, 허무함, 무입니다. “세월이 흐른 후 가인은 땅에서 난 것을 여호와께 제물로 가져오고 아벨은 자기 양 떼의 첫 새끼들과 양 떼의 기름을 제물로 가져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몹시 화가 나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3~5절).
왜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제물은 인정하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 제물을 인정하셨을까요?
가인은 땅에서 난 것, 구별되지 않은 것 중에 아무거나 가져왔고, 아벨은 양 떼의 첫 새끼와 양 떼의 기름진 것을 가져왔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첫 새끼’를 드렸다는 것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것을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에게 얻는 소득의 첫 번째를 가져왔다’는 것은 이후에 있는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께 속해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벨은 기름진 것, 즉 가장 좋은 것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땅에서 난 것 중 일부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볼 때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달랐습니다. 가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의 반대는 헌신입니다. ‘나에게 나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정이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가인과 그 제물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제사
가인의 마음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인정하지 않은 직후의 반응을 보면 더 정확하게 나타나있습니다. 5절 후반부에 ‘몹시 화가 나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는 표현을 통해 가인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자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신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봤어야 했습니다. ‘내가 무엇이 잘못 되었기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을까?’ 그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자세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분노했습니다. 분노했다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받는 분’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드리는지에 관계없이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많은 봉사, 헌신, 물질로 하나님 앞에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의 올바른 자세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분이 아닌 주시는 분으로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나의 모든 필요를 주신다는 인정을 해야 합니다. 헌금, 헌물, 예물 그리고 우리 삶의 봉사를 주고받는 것처럼 이 세상의 거래방식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가인의 실수는 자신이 하나님께 주는 사람, 하나님은 자신에게 받는 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분노의 결과, 살인
“그러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화가 났느냐? 왜 고개를 떨구었느냐? 만약 네가 옳다면 어째서 얼굴을 들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옳지 않다면 죄가 문 앞에서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하니 너는 죄를 다스려야한다”(6~7절).
가인이 분노할 당시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왜 분노하고 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니? 네가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하면 죄가 너를 덮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다스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 짓지 않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런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죄가 사탄의 조종을 받는 이 죄가 가인을 덮쳤습니다. 가인은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잃어버리고 그 순간 죄가 그를 덮침으로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아벨을 죽여 버렸습니다. 결국 분노 때문에 살인을 행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떠나갈 때 우리는 형제를 죽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노에 사로잡힌 가인은 우리 안에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가인처럼 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인을 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 안에 있는 분노를 자기에게 쏟아 붓는 것입니다. 자살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 안에 있는 가인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을 죽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가인은 그 형벌이 너무 크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아무 죄 없는 형제는 죽여 놓고 자기가 받는 것은 과한 형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만나면 죽일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죄 때문에 두려움과 불필요한 피해망상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은혜로 다스려주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그는 유리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죄의 대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회복과 회개의 기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함부로 복수하지 않도록 하나님만 그 죄의 대가를 갚으실 수 있도록 공의를 지키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에 지배당하지 않고 사는 유일한 비결은 날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가인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내고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올려드림으로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40일은 우리 안에 있는 가인을 죽이는 시간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가인, 우리 안에 있는 분노, 우울, 다른 사람에 대한 미움을 모두 성령의 능력으로 제거하는 복된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오은지 기자 oej@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