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돕는 사람의 축복(창 2:18~25) - 이재훈 목사

1월 5일 말씀

 

 

하나님께서 직접 하와를 남자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 ‘돕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한 결정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가정은 교회처럼, 교회는 가정처럼

 

 

부모, 자녀, 부부의 관계가 삼위일체가 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두 가지 기관이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입니다. 둘 중에 가정이 먼저 창설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이 바로 교회가 됩니다. 진정한 가정은 교회와 같은 가정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까 가족이 함께 고민하는 가정이 진정한 가정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교회에 가보면 그 교회는 마치 가정과 같습니다. 여성은 자매처럼, 어르신들은 부모처럼, 자녀들은 나의 자녀처럼 서로가 그렇게 느낍니다. 가정은 교회 같아야 하고, 교회는 가정 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가정과 교회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정과 자녀와의 관계를 도외시 한 채 교회에 나와 봉사를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이나 잘못된 관계를 가르치는 공동체일수록 성도들에게 가정보다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하도록 요구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이루어야 하는 공동체는 가정이기에 가정에 먼저 힘쓰는 것이 진정한 교회 사역인 것입니다. 각자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이루는 것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기초로 교회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2013년도에는 우리의 가정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임하는 복된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창조하신 6일 동안은 ‘좋았다’는 말만 나옵니다. 그런데 18절에 보면 ‘좋지 않다’는 말이 처음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18절).

이것은 홀로 있는 것이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이 아니라 남자 혼자만 창조된 것이 하나님의 원래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추가적인 계획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돕는 사람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 생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온갖 들짐승들과 공중의 온갖 새들을 다 빚으시고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셔서 그가 어떻게 이름을 짓는지 보셨습니다. 아담이 각 생물을 무엇이라 부르든지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됐습니다.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모든 들짐승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자기에게 알맞은 돕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19~20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들을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아담이 그 생물들을 보고 이름을 짓습니다. 아담이 타락 이전에 가졌던 능력은 엄청납니다. 그 능력은 지상의 어떤 사람의 능력과도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었습니다.

 

아담이 이름을 짓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첫째로 다스림, 통치의 시작은 이름을 짓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이름을 받는 대상의 통치자라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는 우리보다 높은 권위자였을 것입니다.

 

아담이 통치권을 발휘하여 이름을 짓는 과정 중에 깨닫게 된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돕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이 왜 혼자일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기쁨과 슬픔을 나눌 ‘너’라는 존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아담은 세상의 가장 놀라운 통치권을 가졌지만 ‘너’라는 존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돕는 사람을 창조해주시기 전에 먼저 아담에게 필요를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런 과정을 통해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갈급함을 먼저 느끼게 하셨고, 이후에 돕는 이를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그렇습니다. 인간 스스로 먼저 필요를 느끼게 하십니다. 그리고 구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고난과 어려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결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21절).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깊은 잠에 들게 하시고 갈비뼈를 취해 여인을 만드셨습니다. 그 이전까지 아담은 그냥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를 만드심으로 인해 사람이 남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하와를 남자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돕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로는 ‘에젤’이라고 말합니다. 없으면 안 되는 결정적인 존재가 에젤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함께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한 결정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에젤을 데려오시자 아담이 고백합니다.

 

“아담이 말했습니다. ‘드디어 내 뼈 가운데 뼈요 내 살 가운데 살이 나타났구나. 이가 남자에게서 취해졌으니 여자라고 불릴 것이다”(23절).

 

‘드디어’라는 말은 아담이 갈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형이 담긴 고백입니다.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는 고백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배우자를 바라보며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다음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결혼의 세 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그 아내와 결합해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둘 다 벌거벗었지만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24~25절).

 

첫째는 떠남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것은 부부관계가 우선이 된다는 말입니다. 부모님도 부부관계에 끼어들면 안 됩니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결혼은 했지만 가장 친밀한 관계가 배우자가 아니라 부모입니까. 하나님 이외에 가장 친밀한 관계는 부부여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부부 관계 속에 참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연합입니다. 유기적인 결합만이 아니라 영과 정신이 연합하는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각자 다름을 가지며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부로 맺어주셔서 하나가 되는 것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친밀함입니다. 이것은 성이 친밀함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친밀함은 성적인 친밀함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정서적, 영적 친밀함이 부부간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모든 부부관계 속에 아름다운 친밀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친밀함과 익숙함은 다릅니다. 한 집에 산다고 해서 친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친밀함은 헌신과 용납, 수용, 이해, 용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특별히 가정과 부부 관계에 임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이 온 세상과 교회에 증거되길 축복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