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처럼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
창 2:4~17절
이재훈 목사
하나님은 사랑을 강요하지 않습니다.우리가 권위를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선택해야합니다. 통치권과 자유의지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의 형상대로, 복을 누리며 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 동안 안식하는 것으로 창조하는 모든 과정을 마치셨습니다. 안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안식을 통해 질서 있고 조화롭게 이뤄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안식은 반드시 구별해서 지켜야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공간과 물질을 통치하다 보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안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안식은 단순한 육체적 쉼이 아닙니다. 영과 육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함께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권세를 허락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2장에서는 다른 각도에서 인간 창조의 방법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인간이 피조물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강조했고, 2장에서는 피조물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또 1장에서는 하늘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2장에서는 이 땅에 친히 오셔서 흙을 빚어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호흡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생기를 나누어 가진 존재입니다.
1장에 등장한 하나님이 창조주의 모습이었다면 2장에 등장한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은 따뜻하고 인자하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하늘과 땅이 창조됐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의 기록이 이렇습니다”(4절). 이때부터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등장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낼 때 쓰는 명칭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미를 출애굽하면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창조와 더불어 인간과 관계하고 교제하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생기를 불어넣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서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습니다”(7절). 땅에서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땅으로 돌아갑니다. 실제로 우리 몸에는 흙과 성분이 비슷한 미네랄이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생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느끼는 때는 잠잘 때입니다. 사람은 잠이 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호흡은 붙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어 넣어 주신 생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호흡을 거두면 죽게 됩니다. 잠자는 순간에는 죄를 짓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잘 나타나는 순간은 잠잘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기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쪽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시고 손수 빚으신 그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온갖 나무가 땅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가 있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8~9절).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실제로 존재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구전체가 에덴동산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한 공간을 에덴동산이라고 명하고 그곳에서 인간이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8~9절 말씀과 5절 말씀이 대조됩니다.
천국에서 일하는 기쁨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직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일굴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온갖 풀이 아직 없었고 땅에는 풀조차 나지 않았습니다”(5절). 8~9절에 나오는 에덴동산과 5절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모습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하나님은 개발되지 않은 모든 땅을 인간들이 개발해 통치하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다른 곳에도 에덴동산을 만들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동산에 두셔서 동산을 일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15절). 하나님은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분입니다. 씨앗을 뿌리면 그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거두며 제2, 제3의 에덴동산을 만드는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기쁨을 맛보게 하기 위한 곳이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에덴동산은 쉬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일은 인간에게 기쁨이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일은 인간에게 더 이상 기쁨이 아니라 고통이 된 것입니다.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면 일하는 기쁨이 생깁니다. 일이 하기 싫고, 귀찮은 것이 아니라 기쁨이자 감사가 됩니다. 천국에 가면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에서 일하는 기쁨을 맛보십시오.
한 가지 금지명령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16~17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통치권을 주셨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 거하게 하셨고, 마마음대로 먹고 일하게 하셨습니다. 무한대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금지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금지명령에는 기가 막힌 섭리를 숨어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통치권을 대면하게 하셨습니다. 만약 선악과가 없었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통치권과 자유의지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합니다. 둘째,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는 훈련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선택하면 하나님이 영화롭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발적 선택을 통해 영광받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고 순종한 사람의 자유의지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과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