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과 근심, 새로운 소망(창 6:1~10) - 이재훈 목사
1월 11일 말씀
심판은 이뤄져도 하나님 사랑을 넘지 못합니다.
심판은 이뤄져도 노아의 가문은 살아남았습니다.
진노가 하나님의 사랑보다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도 하나님의 사랑의 심판입니다.
창세기 6장에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사람들이 불경건한 사람들을 본받지 않고 결코 가인의 길을 따르지 않으며 세상 가운데 좁은 길을 가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후예들의 번성이 선한 사람들의 번성보다 훨씬 더 강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결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죄악의 파도가 흘러넘쳤을 때의 상황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땅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하고 그들에게서 딸들이 태어났을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보기에 사람의 딸들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선택한 사람들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1~2절).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지만 <생명의 삶>에서는 셋의 경건한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예들 중 딸을 말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라고 구분한 이유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자의 외모와 생김새로 결혼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있는지 판단하지 않고 눈에 보기에 좋은 것으로만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판단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통해 가인의 불경건한 계열에 속한 사람들과 셋의 경건한 계열에 속한 사람들이 혼합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땅을 심판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후예들을 한꺼번에 심판하신 것이 아닌 그들이 돌아오도록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들도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일반 은총(common grace)’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사랑하는 것은 오래참으심입니다. 그 기간에만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허락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경건한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건한 사람들의 무리가 약해졌다면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 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경건한 셋의 후손들 가운데에도 타락한 영이 급속하게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급속도로 뻗어나가는 악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이 사람 안에서 영원히 거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사람이 그저 육체일 뿐이다.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될 것이다.’ 당시에 그 땅에 네피림이라 불리는 족속이 있었으며 그 후에도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가서 낳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옛날부터 용사들이었습니다”(3~4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을 더는 사람의 육체 가운데 두지 않으신다는 것은 죽음이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직후 결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구체적으로 그 날이 정해졌습니다. 120년 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시를 노아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은혜의 기간이 120년밖에 남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단어는 ‘네피림’입니다. 네피림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유사한 히브리어 단어를 보면 ‘덮치다’, ‘떨어뜨리다’의 뜻을 가집니다. 이것은 평화로운 사람들을 덮쳐 폭력과 살인으로 지배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네피림은 민수기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했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도 네피림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거기서 네피림, 곧 네피림에게서 나온 아낙 자손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눈에도 우리가 메뚜기처럼 보였으니 그들 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민 13:33).
네피림이란 단어가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 이어집니다. 이 시대는 그런 사람들이 영웅 취급을 받는 시대였습니다. 힘과 폭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들이 타락한 사람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까? 첫째는 세상적인 가치에 의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타락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존하기 위해 보호받기 위해 결혼을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닌 사람의 보호하심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결혼을 통해 타락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다음처럼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과 그 마음에 품는 생각이 항상 악하기만 한 것을 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땅에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으로 아파하셨습니다”(5~6절).
악이 세상에 가득했습니다. 넓고 깊게 악이 뻗어나갔습니다. 더 이상은 하나님이 세상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려면 자기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됩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상상을 들여다보십시오. 여러분, 우리의 상상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상상하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상상을 거룩한 상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도 노아의 심판 이전에 악할 뿐인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진노보다 더 큰 하나님 사랑
하나님께서 6절에 ‘후회하셨다’고 나옵니다.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실패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깨닫게 하시려고 인간의 마음을 빌려 설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회는 인간의 후회와 다릅니다. 우리는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후회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이 변하시지 않기 때문에 후회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후회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변화되지 않기 때문에 후회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후회하심은 인간의 모든 행위, 마음의 생각까지도 민감하게 반응하시기 때문에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건 말건 하나님께서 신경 쓰시지 않으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아파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의 후회하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느끼고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이 어떤 상태인지도 다 느끼십니다. 하나님은 아픈 그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보내셨습니다. 얼마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실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사탄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상을 악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것은 악을 따라 행하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사탄의 음성에 순종하고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은 악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타락한 세상에 대해 후회하시는 지경에 이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결정을 내리십니다. 여러분, 심판 이전에 하나님의 후회가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왜 정당하고 의로운 심판입니까. 인간이 받는 고통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고통당하시고 가슴 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받는 고통에 먼저 가슴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 사이에 인간이 타락하는 깊이만큼 하나님의 아픔도 더해졌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은 이루어지지만 심판이 하나님의 사랑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쓸어버리시지만 그래도 보존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사랑보다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도 하나님의 사랑의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뿐이 아닌 노아의 가문을 살리셨습니다.
8~9절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보존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사람으로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8~9절).
‘은혜’라는 단어가 성경에 처음 등장합니다. 어둠이 짙으면 별이 빛나듯이 세상이 타락하면 은혜가 빛이 납니다. 세상이 타락하지 않으면 은혜가 빛나지 않습니다. 은혜는 마땅히 베풀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세상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또한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이 구원하려고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이 의롭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할지라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선한 것이 아닌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노아는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 의를 기초로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 이 시대에 의롭게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 길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존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문이 보존 받은 노아의 가문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노아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구원의 의를 전파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 정리 정지은 기자 jji@onnuri.org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