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부흥집회

하나님 없는 자손, 하나님 있는 자손

이재훈 목사

 

 

창 4:16~26

 

 

하나님은 셋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뤄나가십니다. 셋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께 속한 경건한 후손입니다. 우리를 셋의 후손으로 택해 주시고 예배하는 자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도시, 거룩한 문화로 만들어가는 우리 되기를 바랍니다.

 

 

어제 말씀에 동생을 죽인 가인을 하나님께서 보호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인에게는 도망하는 자, 유리하는 자로 사는 징벌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복수를 해서 가인이 목숨을 잃게 되면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 실행되지 못하기 때문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보호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개인적인 복수를 막으셨습니다. 개인적 복수는 또 다른 악을 불러옵니다. 모든 악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원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가인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가인은 타락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남아있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난 가인

 

“그 후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게 됐습니다. 가인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니 그녀가 임신해 에녹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성을 세웠는데 그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지었습니다”(창 4:16~17).

가인이 에덴동산을 떠나고 여호와 앞을 떠나 방황하는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방황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놋 땅에서 가인은 여호와를 떠나 방황의 삶을 살게 됩니다. 아내와 동침하여 임신해 에녹을 났습니다. 성을 세워 그 성의 이름도 에녹이라 짓습니다. 유리하는 자로 살아가야하는 가인은 힘들고 외롭고 두려웠습니다. 그 징벌을 피하기 위해 성벽을 쌓고 도시를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셨지만 믿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성을 쌓았습니다. 가인이 쌓은 성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성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녹’이라는 의미는 시작, 계시라는 뜻입니다. 가인이 시작한 새로운 에녹은 자신이 만든 자신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성을 쌓아 도시를 세워 스스로 보호하고 자신이 통치하는 자신만의 나라. 더 나아가 도시 속에서 인간들끼리 의지하고 살면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 되어버린 그런 나라.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타락이고 새로운 불순종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따서 성의 이름을 붙인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인간의 나라를 세워가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세속화된 도시가 세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가인의 후예를 통해서 문화를 발전시켜가셨습니다. 비록 가인이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이었고 그 자녀들에게도 타락한 모습들이 나타났지만,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에게 주신 지상명령인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의 능력으로써 또 다른 창조적인 능력으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에 살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습니다. 그의 동생의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하프와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습니다. 씰라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두발가인으로 청동과 철로 각종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20~22절)”. 가축을 기르고, 음악이 발전되고 도구를 만들면서 문화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창의적 능력으로 문화명령을 이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우리를 통해 이 땅을 정복하고 번성해나가는 하나님의 목적이 지속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두 종류의 문화

 

문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옷을 만들었습니다. 옷은 인간의 최초의 문화입니다. 이렇듯 죄를 덮기 위해 발전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아름다운 악기를 만들고 도구를 통해 땅을 경작하는 것과 같이 세상을 건강하게 다스리고 정복하기 위해 발전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문화를 악하다고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문화는 비평적으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발전시킬 것은 발전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창조적 능력과 개발 능력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이루는데 있어서 쓰임 받는 문화는 우리가 수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세상의 죄를 덮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는 제거하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에게 나타나는 안타까운 잘못된 문화가 있습니다. “라멕은 아내가 둘이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아다고 다른 하나는 씰라였습니다”(19절).아내가 둘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가정의 문화가 생겨난 것을 말합니다. 죄의식 없이 일부다처제가 생겨났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가정질서를 깨트리고 파괴한 잘못된 문화입니다.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다여, 씰라여,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내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이를 내가 죽였다”(23절).

아내에게 죽음과 복수, 폭력에 대해 자신의 잔인성을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는 얼마나 끔찍한 말입니까.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자신의 폭력성을 자랑하고 즐기는 이런 문화가 가인의 후예 속에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을 만듭니다.

“만약 가인을 위한 복수가 일곱 배라면 라멕을 위해서는 77배나 될 것이다”(24절).

에녹성의 성주인 라멕은 자신의 법을 만듭니다. 이는 공의로운 복수가 아닌 악한 복수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창의적인 능력으로 청동과 철로 도구를 만들어 땅을 갈고 곡식을 만들고 황폐한 땅을 일구는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들고 자신을 해하는 사람을 77배로 복수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가인의 후예의 악하고 폭력적이고 타락한 문화를 보여줍니다.

 

경건한 후손 ‘셋’

 

그러나 그 속에 희망의 소식이 있습니다.“아담이 다시 그의 아내와 동침하니 하와가 아들을 낳아 셋이라 이름 짓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 셋도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에노스라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25~26절)

하나님께서 죽은 아벨을 대신할 ‘셋’을 주셨습니다. 셋은 아벨의 사명을 대신할 자손이었습니다. 셋은 타락한 가인의 후손들과는 다른 씨, 즉 여인의 후예에 속한 씨였습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서 셋의 아들 에노스가 태어나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시작됩니다. 경건한 후손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셋의 후손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나고, 메시야가 태어납니다. 그렇게 여인의 후손의 족보가 이뤄집니다.

가인은 뱀의 후손이었습니다. 뱀의 후손은 아담에게 속한사람, 여인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으로 나뉩니다. 아담에 속한 사람은 뱀의 후손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후손이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역함으로 스스로 성을 쌓고 자신만의 나라를 일으켰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목적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경건한 셋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이뤄나가십니다.

우리는 셋의 후손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세워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쌓은 성이 스스로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으로 나를 위한 도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도시, 거룩한 문화로 만들어가는 모든 성도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정리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