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날 선택강의/트랙C
나는 왜 선교사가 되었나?
사회 : 조정민 전도사 / 패널 : 이운구, 강부호, 김주태
△ 1일(금) 양재 캠퍼스 기쁨홀에서 한 '어노인팅' 트랙 강의에서 선교사들이 은혜를 나누고 있다.
조정민: 세 분을 모시고 예수님의 하향식 삶을 따라 새겨진 흔적을 찾아보고 도전받고 위로받고 격려도 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강부호 목사님은 왜 이라크에 가셨습니까?강부호: 저는 선교에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뒤 안식년을 영국에서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일본인을 만나 전도를 했는데 그때 외국인을 전도하면서 감동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뒤 선교를 더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말씀해 주시던지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서 가게 하시던지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뒤 귀국해서 하 목사님을 뵈었는데 첫 마디가 ‘이라크에 가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멘’하고 순종했습니다.조정민: 이라크에 도착한 뒤 처음 예상과는 많이 달랐죠?강부호: 두려운 마음이 많았습니다. 이왕이면 영어권 국가에 환경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어도 달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바그다드에 들어가고 나서는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느꼈고 이라크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일하심, 놀라운 사역을 보았습니다.조정민: 김주태 선교사님은 언제 외국에 가셨나요?김주태: 3세 때 부모님 따라서 아르헨티나에 가서 30년 살았습니다. 조정민: 선교사로 언제 결단하셨습니까?김주태: 저도 항상 그 질문을 생각하면서 언제였는지 아직도 생각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13세 정도에 슈바이처에 대한 전기를 읽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린 마음에 결심한 게 슈바이처 인생의 1/10 만큼만 살아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그때 저는 거듭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아시고 비전을 심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뒤 북한, 중국으로 다니면서 구체화되었습니다. 조정민: 의료선교는 언제 시작하셨나요?김주태: 저는 93년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몇 차례 아웃리치를 다니면서 선교에 대한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북한에 대한 선교 부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군대 입대가 결정되었습니다. 원래는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면제를 받는 상황이었는데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루가 더 필요했던 것도 모른 채 그냥 입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생각은 저와 다르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순종하길 원하셨습니다. 그 뒤 아마존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때는 10개월 아기에 3세 된 아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라 정말 큰 결정이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해 모두 페루로 향했습니다.이운구: 저는 1969년에 일본에 남편을 따라 3남매를 데리고 갔습니다. 떠날 때 수십 년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던 목사님 내외분이 예배를 같이 드려주셨습니다. 그때 사모님은 제가 복음의 신발을 신고 있는 꿈을 꾸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절반을 거기서 살았습니다. 저는 선교사를 돕는 게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러다 암 때문에 일본에서 치료받으시던 하용조 목사님을 처음 만났고 목회사관학교를 거쳐 샤이닝글로리에서 기도할 때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쓰실지 기도했습니다. 그때 큐티방 운영을 결심했고 지금까지 큐티방 운영하면서 일대일 양육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선교사가 됐습니다.조정민: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이운구: 올해로 일흔입니다.조정민: 일흔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재벌이라고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 대통령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 계신 선교사님의 인생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선교지에서는 여전히 사도행전 역사가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라크에서의 성령행전, 선교행전은 어떻습니까?강부호: 이라크와 중국 생활을 합쳐서 말하면, 우리들이 일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무슬림 중에 코란을 읽다가 성경과 비교해서 보게 되고 자연스레 복음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게 복음인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그 밑바닥에서부터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쉽게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돌아오는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저희는 그저 열심히 뒤쫓아 가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검사하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조정민: 남미는 선교가 개방돼 있죠?김주태: 이라크, 중동처럼 핍박이 없고 돌 맞는 것도 없고 감옥 끌려가는 것도 없습니다. 그곳은 지금 성령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10만 명 되는 교회가 한두 교회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도와줄 건 한국의 영성으로 말씀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공유한다면 그들 문화와 후손을 통해 중동을 선교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정민: 일본은 귀신이 8만3천개라고 합니다. 40년 가까이 살아오시면서 크리스천으로서 살기 힘든 곳이 아닌가 합니다. 어떻습니까?이운구: 실제로 귀신은 그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은혜 받고 뜨거운 가슴을 품고 가도 한 달이면 다 시듭니다. 확실히 영적으로 눌립니다. 일본 교회는 많지만 교단이 1년에 몇 십개씩 문을 닫고 일본인 목회자들은 담배와 술을 다합니다. 교회는 수요 예배, 금요 예배도 거의 없고 목회자와 신도들이 전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청년들도 없습니다. 제일 마음 아픈 건 일본인은 전도하기는 쉬운데 다신을 믿기에 예수를 신들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70만 재일동포가 있는데 2, 3세대는 한국말을 몰라 일본 교회 나가는 사람이 많고 구태의연한 자세로 예배를 드려서 흥미도 못 느낍니다. 제 마음은 일본인을 선교하느냐 동포를 선교하느냐로 복잡합니다. 동포들은 교회 출석은 하지만 일대일, 큐티 등 나눔에는 비판적입니다. 오히려 일본인들이 큐티방에 더 열심입니다. 제가 없어도 큐티를 합니다. 일본 교회와 재일동포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세요.조정민: 김 선교사님은 큐티서적을 개인적으로 번역해서 3천부 정도 발행하고 있다고 하던데 맞나요?김주태: 현지인을 통해 묵상 노트를 쓰고 인쇄해 보급하는 일을 5년 정도 하고 있습니다. 1천5백부로 시작해 지금은 3천부 정도 보급합니다.이운구: 큐티와 일대일 양육은 연합의 제일 좋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일대일 한 사람들보면 얼굴이 먼저 달라집니다.조정민: 온누리교회 ACTS29 비전은 선교지의 마지막 열매를 교회라고 결론짓습니다. 현지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강부호: 그 비전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29장을 우리가 쓴다는 것에는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건 이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한데요. 좀더 겸손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역사적으로 후대 신앙인들이 타당하다고 느껴지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조정민: 선교를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끝으로 그들에게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강부호: 초자연적인 음성을 들을 때 나가겠다고 하면 마흔이 돼도 못 나갑니다. 그러다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놓칠 수 있습니다. 하 목사님이 나가라고 하시면 그때 순종하고 나가시면 됩니다.이운구: 저는 오늘부터 선교사가 됐기 때문에 오늘까지 인도하신 형통한 은혜 가운데 제가 필요한 곳이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사역을 어디에서나 할 겁니다. 그리고 일본 목회자를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겠습니다.
/ 정리 김익겸 기자kik@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