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2-상황을 넘어서는 삶

 

질 브리스코 사모(시카고 Elmbrook 교회)

 

이스라엘에는 여러 절기가 있는데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가족이 함께 하는 즐거운 절기입니다. 그러나 한나만 예외였습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당시 문화로는 자녀가 없다는 것은 비극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한나 주위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함께 살았지만 그녀의 자녀는 아니었습니다. 그 자녀들의 엄마는 브닌나였습니다. 남편의 두 번째 여자였습니다.일부다처제는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맺어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 나름대로 아이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여자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항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창세기에 나오는 사라와 하갈이 그렇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사라는 한 번도 하갈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항상 ‘그 여자’, ‘그녀’라고 불렀습니다.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습니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하갈은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사실 사라, 하갈, 한나, 브닌나 모두 따지고 보면 희생자입니다. 이 여성들도 모두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상황 속에 갇혀있었습니다. 변화시키지도, 도망가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도하며 통곡하는 한나

 

한나는 브닌나와 함께 살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 두 사람은 경쟁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는 잔인했습니다. 브닌나는 하나님이 한나의 태를 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으로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고, 또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남편은 브닌나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점점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했습니다.아이러니하게도 한나는 사랑하는 남편과 살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제 중의 하나는 남편과의 대화의 단절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문제를 남편에게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한나에게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나 자신의 문제였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마음속에 쌓여있는 분노, 쓰라림 같은 감정과 싸워야 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경쟁상대를 용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용서’라는 것은 복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나도 복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한나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슬픈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이 관여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면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좋은가?’라는 질문입니다.한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저는 아이를 갖지 못해도 좋습니다. 아이를 주시더라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저는 너무 비참합니다. 다 갖고 가십시오.” 그 순간 하나님께서 한나의 짐을 거두기 시작하십니다. 그랬더니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고통하는 자를 돌아보시는 하나님

 

여러분이 어려운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 때 몇 가지를 기억하십시오.첫째, 있는 상황 그대로 용납하십시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가정의 구조를 바꾸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 안에 있는 한나는 바꾸실 수 있습니다.브닌나는 영원히 한나를 괴롭히는 여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브닌나를 향한 한나의 태도를 바꾸실 수는 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한나를 비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한나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처한 상황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인정하십시오. 본인이 당하는 고통을 하나님께 돌리십시오.둘째, 하나님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십시오. 하나님은 야곱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레아를 돌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갈이 도망갔을 때에도 우물가에서 하갈을 만나주시고 하갈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하갈아, 하갈아.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임신을 한 네가 어떻게 사막에서 지낼 수 있겠느냐?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하십니다.하나님은 늘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난 우물에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나를 보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비참함을 보고 계십니다.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사라의 집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너를 돌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한나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그러자 즉각 한나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나가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브닌나도 달라진 한나를 이상하게 보았을 것입니다.저는 한나뿐만 아니라 브닌나도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경이 브닌나에 대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브닌나의 고통도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 상황을 극복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드러나는 섭리 … 한나의 놀라운 고백

 

나머지 이야기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여셔서 한나는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아이를 낳으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께 아이를 드리려면 4년간 양육을 해야 했는데, 사무엘을 키우는 4년 동안 그녀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은 좋은 분이니까 아이를 바치지 않아도 될꺼야.”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저는 작년에 카작스탄에 있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과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카작스탄에는 믿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조차도 감옥에서 선교사들의 사역을 통해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그중에는 여성도 있습니다. 그들이 감옥에 있을 때 임신했으면 아이를 낳고 4년간 돌보아야 합니다. 그 후에는 정부가 아이를 데리고 가 영영 볼 수 없습니다. 엄마의 선택권은 없습니다.그러나 한나에게는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4년간 돌본 후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사실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들은 정직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을 바칠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겨야만 했습니다.생각해 보십시오. 한나가 자신의 아이를 엘리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자신의 삶 속에서 가장 긴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한나는 가장 우울한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 시점에서 부른 한나의 노래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1,2)상황이 여러분을 조종하도록 놔두면 여러분은 항상 우울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더 이상 상황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배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한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셨습니다. 한나는 이해할 수 없는 즐거움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삶을 겪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한나처럼만 될 수 있다면 어떤 사람과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 정리 : 서철 기자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