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3-여성행전 Acts29
사회 : 조호영 목사
패널 :
이정숙 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김정년 선교사
(BEE Korea, 싱가폴)
한연희 집사
(한국 입양 홍보회 회장)
조호영: 여성은 자신의 회복과 가정 회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도행전 29장을 여성이 쓰자는 ‘여성행전’이 오늘 주제입니다. 오늘 여성행전을 쓰고 있는 분들을 모시고 어떻게 쓰고 계시는지, 우리 여성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삶으로 여성행전을 쓰면 좋을지 나눠보겠습니다.
이정숙: 어제 쓰레기를 들고 나가며 문득 이런 것이 오늘날 여성행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일도 여성행전의 한 부분이지만 음식 분리수거, 쓰레기를 기꺼이 줍는 것도 여성행전의 중요한 몫이 될 수 있습니다.
조호영: 맞습니다. 여성행전이 멀리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 선교지에 가기 전 옆집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지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는 데서부터 풀어가면 여성행전에 쉽게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어떻게 선교사로 가게 되셨나요?
김정년: 저는 선교사로 가겠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 살 때 소아마비가 와 지체 3급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이 교수를 그만두고 BEE 선교사로 간다고 했을 때 저는 3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갔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3일째 새벽기도를 다녀오며 아이 도시락 반찬을 사러 슈퍼에 들어갔을 때 ‘첫 손님이 장애인이라니. 아줌마 때문에 나 오늘 장사 망쳤다’는 생각이 그대로 나타난 주인의 일그러진 얼굴을 봤습니다. 당황해 서둘러 물건을 사서 나왔는데 가게 위에 부적이 붙어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가게 문 열며 성실히 일하지만 저 사람은 예수님을 몰라 지옥에 가겠구나’하는 측은한 마음이 생겼고 ‘세상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해 지옥 가는 사람이 많은데 내 몸이 불편하다고 선교지에 못가겠다는 나는 정말 구원의 의미를 모르는 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우리는 어차피 죽을 인생이었는데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됐다면 이 세상에서 얻을 것을 다 얻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고 복음의 빚진 자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임을 깨닫고 순종의 첫 발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 모든 상처를 씻어주시며 그곳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조호영: 생명이 있는 자는 다 갈 수 있고, 가야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김 선교사님은 선교지에 정말 잘 갔다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선교지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서요.
김정년: 선교지에서 그곳의 믿는 사람들과 여인들을 보며 난 한국에서 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됐습니다. 복음에 있어서도 우리는 설교 테이프나 이런 축제 등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그들은 성경 한 권이 전부입니다. 우리가 나눠주는 BEE 교재가 그들에게는 생명 같은 책이 됩니다. 그것을 보며 내가 정말 복음의 빚진 자인데 나눌 줄 몰랐다는 것을 깨달으니 여기 있으면서도 열악한 선교지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성경 한 권을 든 그들이 생각나 자꾸만 가고 싶습니다.사역지 영혼들을 보며 세상 조건들은 다 썩어질 것인데 그런 것을 위해 내 귀한 생명을 쓰고 있었구나 깨달았고 ‘내가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한발 내딛는 그곳이 바로 여러분의 사역현장이요, 사회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사역현장 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호영: 한연희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자신의 삶을 내려놓았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나눠주십시오.한연희: 하나님께서 저를 양자 삼아 제 신분을 변화시켜주셨고 이 세상에서 살 기쁨을 치솟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고아를 입양해 고아의 신분이 우리 자녀로 바뀌는, 하나님이 내게 하신 그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입양을 시작했습니다.제 아이가 10살 되던 해 7살 된 남아를 데려온 것이 첫째 입양이었습니다. ‘내 아이도 있는데 다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가장 걱정하는 그 부분에서 제가 실패했습니다. 7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조그만 아이가 날 거절할 때 깊은 배신감이 들었고, 맛있는 것을 둘로 잘라 나눠 줄 때 늘 큰 쪽이 큰 아이에게 가는 것을 보며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유치한 사람이구나’하는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그 아이가 이제 22살이 되었는데 입양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가족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 뒤로 부모를 잃은 형제 둘과 여자 아이를 입양해 결국 5남 1녀가 되었습니다.
조호영: 우리는 잘 못한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며 나갈 때 하나님께서 최선으로 도와주신다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고 순종해 하나님 길을 따라간다고 하지만 내 자식은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이는지 엄마로서 참 궁금합니다.
한연희: 저는 입양할 때 아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동생을 잘 돌봐주기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아들이 큰 문제가 있다며 상담을 해 왔습니다. 아들은 침대에 한참 흐느껴 울다가 “엄마 난 그동안 너무 많은 죄를 지었어. 입양아가 왔을 때 그들의 처지를 살피기보다 미워했고, 시끄러워서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들의 부모도 너무 많이 미워했어”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용서받기에 너무 큰 죄인 것 같다며 마구 울었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우리 아이에게 너무 많은 죄를 지었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 말도 못하고 손만 잡았습니다. 정말 많이 울고 아들과 열흘간 금식하며 통회자복하고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내 눈을 가려 우리 아들의 마음을 못 보게 한 것을 감사했습니다. 알았으면 입양하지 않았을 테고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통해 하시는 일을 죽을 때까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많은 부분 희생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결국 나와 내 아들을 세우시고 가정을 회복시키셨습니다.또 공개입양을 통해 우리나라를 변화시키는 순간까지 왔습니다. 우리나라에 입양의 날이 제정되었습니다. 5월 10일입니다. 정말 획기적인 일입니다. 우리 아이만 보호하려 하고 안일한 삶을 추구했다면 이런 날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년 우리나라에는 가정이 필요한 아이가 1만 명 정도 발생하지만 그 중 1700명밖에 가정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그 생명을 위해 여러분이 두려움만 극복하면 됩니다.
조호영: 하나님께서 원하는 모습은 내 자식같이 남의 자식도 끼고, 내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계신 곳에 어떻게 하나님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 지 한 말씀씩 해주고 맺겠습니다.한연희: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뛰어넘도록 해 놓으셨으니 그것만 뛰어 넘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김정년: 구원의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있습니다. 그 구원을 묵상하며 내딛는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여러분의 사역지입니다. 이정숙: 여성들이 사회 참여라고 하면 흔히 경제적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고 우리 있는 곳이 사회이며 우리는 굉장히 다양한 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있든 여러분은 사회 참여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큰일도 많이 해야 하지만 잔일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나만 쏙 들어가지 말고, 뒤돌아보며 다른 사람을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지십시오. 그 뒤에는 아이 유모차를 끌고 오는 엄마나 장애인이 오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작은 일을 많이 하며 사회참여 개념을 확대하는 여성들이 되면 우리 사회가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리 전성희 기자shee@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