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저녁집회1-마리아의 작은 상자

 

질 브리스코 사모

(시카고 Elmbrook교회)

 

저는 마르다와 마리아 두 여성의 삶을 함께 보기를 바랍니다. ‘나는 마르다도 될 수 있고 마리아도 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사실 우리는 모두 마르다와 마리아가 돼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배하는 여성, 기도하는 여성을 대표하고 마르다는 염려하는 여성, 일하는 여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사역은 예배에서 출발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마리아를 볼 때마다 그녀는 예수님 발 앞에 무릎 꿇고 발을 씻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칭찬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발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곧 우리의 사역은 예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어느 날 제 손주가 정원에서 엄마에게 뭔가를 요청했습니다. 엄마는 “안 돼”라고 말했고 손주는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10분 후에 집에서 나온 그는 한 여름에 스키 자켓을 입고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메고 집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한테 “나가버릴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다시 돌아올 거야?”라고 말했고 그는 금방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기회를 한 번 더 달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거절한 것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했습니다.저는 이것이 기도에 대한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최상의 응답이 뭔지 아십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응답하시기도 하고 거절하시기도하고 기다리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거절하실 때 제 손주처럼 떠나버립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하나님을 대면할 때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뜻을 전달하십니다. 예수님도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좀 봐라.” 그러나 마르다는 너무 바빴습니다. 마리아는 어디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발 앞에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배하는 것이 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저는 기독교 국가인 영국의 비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학교에 다니면서 기도회에 참석하고 성경도 배우면서 기독교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과 만나는 것은 다릅니다.저는 18세인 대학생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맹장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맹장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아프기 전에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지만 아프니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나 스스로가 살아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했습니다. 그때 옆에서 간호사가 예수님을 소개해줬습니다. 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난 뒤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저는 영국 여자라서 꼭 원하는 사람만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굉장히 이상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열 두 제자와 병자, 종, 이웃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마르다의 집에 왔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온갖 사람이 그 집에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초대교회 같습니다. 우리는 집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오픈해야 합니다. 우리 문화가 무엇이든지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집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중요한 것을 말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지상에 있을 시간이 2~3주 정도 남았던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할 기회였던 것입니다.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듣질 않았습니다. 나사로도 마르다도 듣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만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면서 무덤에서 장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장사되지 않는다는 건 끔찍한 일입니다. 장사지내는 데에는 기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처형을 당하면 시신을 그냥 위에서 떨어뜨립니다. 장사도 지내지 않고 개가 시체를 핥도록 했습니다.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너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음식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예배 하듯 하라

 

마리아는 특별히 장사지낼 때 쓰는 향유를 가져왔습니다. 굉장히 비싼 향유 나드 였습니다. 마리아는 ‘정말 십자가에 돌아가신다면 내가 치러드려야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두게 놔둬라. 나를 장사지내기 위해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드린 옥합의 향기는 결혼을 위한 지참금이었습니다. 결혼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향유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도 원했던 사건입니다.마르다의 마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르다는 예배없이 예수님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 때문에 산만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일하지만 예배하지 않는다면 마르다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왜 나만 일해야 하나’ 불평하게 됩니다.어느 주석가들은 사실 마리아도 마르다 같았지만 ‘마리아’처럼 됐다고 말합니다. ‘마리아’처럼 하는 것이 그의 자연스런 본능이 아니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럼에도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기를 선택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저도 남겨두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저는 선교 단체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출장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때 우리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습니다. 마약하는 젊은이, 임신한 여학생, 저의 세 자녀도 함께 살았고 집은 굉장히 좁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님 앞에 앉아 있겠습니까? 저는 마르다와 같이 느꼈습니다.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다른 사람이 집을 오픈하면 안 되나’라고 생각했습니다.마리아처럼 예수님은 저도 다루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람도 많고 자리도 좁은데 어디서 그런 일을 합니까” 물었습니다. 답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방이 있는데,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거기가 제 장소였습니다. 아이들이 이것에 대해 수근 거릴 때 저는 “엄마는 지금 예수님과 만나는 중이니까 가만히 놔두겠니?”라고 말했습니다.나중에 아들이 그 상황을 기억하고 설교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엄마가 놀이방에 들어갈 때마다 가만 놔두었어요. 왜냐하면 엄마가 놀이방에 들어갈 때보다 나온 이후가 훨씬 좋았기 때문이에요.” 맞습니다. 저는 그것 때문에 훨씬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아니라 마리아가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주를 위한 일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에 대한 태도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선택해야 합니다.여러분, 예배의 행위를 할 것입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드릴 것입니까. 그 두 가지를 함께 하십시오. 마리아와 마르다가 되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정리 김익겸 기자 kik@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