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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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2-디아스포라코리안의 비전

Team Upgrade | 특강 2 디아스포라코리안의 비전 신 호 범 (미 워싱턴주 상원의원) 1903년 1월 13일 인천을 떠나서 102명의 한국인이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 겨우 하루 69센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57명이 어렵지만 모금해서 이승만 박사, 안창호 선생에게 보내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달라고 했습니다.2003년 1월 13일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그 100주년 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저는 1월 4일 의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양해를 구했지만 의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은 미국 국민 30만 명이 표를 찍어서 당선됐고 상원 부의장인데 어떻게 거길 가냐”고 만류했습니다. 사무실 돌아와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도 드린 다음 자필로 편지를 썼습니다. “의장님 당신 말이 맞습니다. 저는 미국 국민들이 투표로 저를 당선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제 몸에는 한민족의 피가 있습니다. 100년에 한번 밖에 없는 행사인데 왜 못가겠습니까. 상원에 사표를 내겠습니다.”보좌관을 통해 편지를 보냈는데, 30분도 못돼서 주지사, 국무장관, 법무장관, 총무 등 7명이 와서 잘 갔다 오라고 했습니다. 가난했던 한국 저는 믿음의 선구자들이 이민을 와서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어서 갔습니다.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선구자 자손들의 간증을 듣고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20세기 한민족은 무슨 죄가 많아서인지 일본의 식민지를 겪어야 했고,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 강제 이주를 했고, 그 겨울 견디지 못해 알마티 카자흐스탄에서 얼어죽어야 했는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좀더 우리가 업그레이드 돼서 뜻있게 이 세대를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하며 기도했습니다.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저를 외할머니댁에 두고 행방불명되셨습니다. 6살 때 서울로 올라와 살기 위해서 거지가 되었고, 거기서 만난 친구와 함께 구걸하면서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추운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늘 자기는 얼어서 죽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결국 그 친구는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저는 “너는 갔지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죽지 않고 살아서 반드시 뭔가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당시 제일 부러웠던 게 아침에 가방매고 가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때 언젠가 선생님이 되겠다고 또 하나의 결심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결심을 이루지 못했지만 미국에 가서야 그 꿈을 이뤘습니다.6.25 직후 노량진으로 와서 미군들에게 구걸을 하고 살았는데, 하루는 구걸하는 제 손을 한 미군이 붙잡아 트럭에 태웠습니다. 그 군인의 배려로 미국 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미국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한국 사람들을 생각하니 너무 슬퍼서 하루는 언덕 위에서 울고 있는데 누군가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분이 울고 있는 저를 안아주었고 따뜻한 포옹을 해주었습니다. 그것이 제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그분이 제 양아버지가 되셨고, 19세에 미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양부모님은 사랑도 많고 친절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초, 중, 고등학교 모두 다 거절당하고 기도하며 독학했기에 1년 4개월 만에 검정고시에 통과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저에는 어린 시절 젊은 미국 군인의 손이 주님의 손이었고 양아버지의 그 포옹이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민족이 갈 길 55년도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양부모님은 친절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저와 같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차별이 심했습니다.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주님께 원망의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군시절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새벽 훈련가기 전에 “언젠가 당신 같은 사람에게 봉사할 때가 올 것이다”며 기도하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정치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얼굴로 1958년도에 정계에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무엇을 하는지 갈 길이 무엇인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준비 되었을 때에 사용하십니다. 기회가 왔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기도하며 준비하는데 92년도에 주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선거지역의 유권자중 97%가 백인이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라고 말씀하셨고, 3만2000여 가구를 기도하면서 아침마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에게 “이 나라에 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이제 이 나라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4선 의원을 물리치고 당선이 되었습니다.그러다 96년도 부지사에 출마했는데, 아슬아슬하게 0.7% 차로 지고 말았습니다. 아픈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우즈벡을 찾았습니다. 한민족의 이민역사에 대한 책을 쓰고 싶어 우리 민족을 찾아 다녔고 거기서 1세 교포 40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한 할머니로부터 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고 스탈린 반대 운동을 하시다 총살당했다고 했습니다. 그에 용기를 얻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상원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할머니를 통해 주님께서 제 연약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고 결국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의 갈 길을 깨달았습니다. 복음들고 땅 끝까지 가라 한국 사람이라고 여기서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앞으로 세계를 무대로 해야 합니다. 한국은 좁고 인구는 많기에 우리는 해외로 나가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저는 7년전 빌리그래함 목사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미국 역사를 보면 아일랜드 민족은 미국에 천주교를 소개했고, 블란서 사람들은 미국에 아름다운 가구와 미술을 소개했고, 독일은 과학을, 중국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소개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미국에 와서 교회를 짓는다. 로마가 군사가 없어서 망한 게 아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망했다. 21세기 미국이 망할 때에 한민족이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줄 민족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그 말을 듣고 저는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갈 길이 있고 할 일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저는 요즘 우리 나라 동포들의 대변인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써주셨고 그러한 사명감이 있습니다.700만명의 디아스포라에게는 목적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그 나라에서 봉사하며 일해야 합니다. 저는 후대에게 꽃 피우고 열매 맺으며 이 땅을 정복하라고 가르치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무엇이나 인생의 목적을 정하고 가면 실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라는 표현보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세계를 무대로 나갔으면 합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우리 민족이 수상이 되어 아리랑을 부를 날을 꿈꿉니다.세계 정복은 칼로 안됩니다. 칼 대신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런 마인드로 각자가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꿈이 필요합니다./ 정리 임재금 기자 lig14@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