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의1-미국교회 부흥사
한홍 목사 | 온누리교회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들 중 80%가 미국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국이라는 개체를 통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부흥사의 흐름은 한국 평양대부흥에 이르기까지 흘러드는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200년 전 미국을 흔들었던 영적 대각성운동을 오늘 이 시간에 짚어보겠습니다. 1차 영적대각성 운동 첫 번째 영적대각성 운동은 18세기 초에 일어납니다. 이 당시 미국은 정부가 들어서기 전이었고 버지니아를 중심으로 음란하고 폭력적인 문화가 난무했습니다. 또한 뉴잉글랜드 보스턴 지역에 최고 엘리트들인 청교도 후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긴 했으나 이들은 메마른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상황 속에 많은 뜻 있는 목회자들이 미국 부흥을 위해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영적대각성 운동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몰려옵니다.1차 영적대각성 운동은 정확히 1726년부터 1776년까지 50년 동안 일어납니다. 이 부흥운동의 첫 단추를 끼운 사람은 네덜란드 개혁교회 28살 밖에 안됐던 디어도르 후레링하이즌(Theodore Freylinhyusen: 1703-1764)입니다. 이 사람은 28살에 뉴욕항에 도착해 보니 미국에 있는 교회들이 메마른 것을 보고 뜨거운 설교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설교에 감동받은 주변에 많은 목회자들은 부흥의 불길을 들고 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들 중 특별히 부흥의 주력으로 활동했던 인물이 길버트 테넨트(Gillbert Tennent: 1703-1764)입니다. 길버트는 장로교회 목사로 1726년부터 29년까지 10개 지역을 커버하는 엄청난 부흥설교를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또한 길버트는 다음세대 목회자들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우리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서 아버지와 함께 ‘통나무 대학(Log College)’을 세우고 다음 세대 목회자들을 양성합니다.길버트와 함께 18세기 초 영적대각성 운동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인물이 또 한명 있는데 그가 바로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 1703-1758)입니다. 에드워드는 천재였으며 과학, 문화, 예술에서 달통한 인물이었습니다. 에드워드로 인해 뉴잉글랜드 지역 엘리트들이 부흥의 불길로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부흥운동가인 에드워드의 사역도 노스웨스트 한 지역에 국한됐습니다. 이 부흥의 불길을 전국적으로 번져나가게 한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설교가로 꼽는 죠오지 휫필드(1714-1770)입니다. 휫필드는 야외집회를 처음 시도한 인물입니다. 또한 그는 가는 곳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동부와 남부를 오가며 설교를 합니다. 1740-1743년 사이 뉴잉글랜드 지역 교인수가 2만 명이었는데 휫필드가 이 당시 이 지역을 한번 거치고 지나가자 5만 명으로 불어날 정도였습니다.디어도르 후레링하이즌으로 시작해 죠오지 휫필드로 마무리 되는 50년의 영적 대각성 운동은 미국 전체에 미친 영향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 애국심과 국가주의의 형성, 둘째 민주주의, 셋째 타 권위 주의와 평신도 역할의 강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차 영적대각성 운동 2차 영적대각성 운동은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에 3단계로 일어납니다. 대학캠퍼스에서 일어났던 첫 번째 부흥운동의 핵심인물은 1795년부터 예일 대학교 총장을 지낸 티모씨 드와이트(Timothy Diwight)박사입니다. 이는 예일 대학교 학생들을 위해 7년이 넘게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 중보기도의 결과로 1802년부터 1817년 드와이트 총장이 사망할 때까지 예일 대학교 학생들은 이유없이 하나님을 믿고 회계하고 주님께 나아옵니다.그러면서 그 주위 많은 대학들이 그 부흥의 불길에 휩싸입니다.두 번째 단계는 미국 서부 개척지의 부흥운동입니다. 동부가 균형 잡히고 지적이었다면 서부는 광할한 땅을 개척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칠고 야성적이었습니다. 서부 사람들은 개척을 하면서 지치고 불안하고 힘들었기 때문에 영적인 욕구가 아주 팽배해 있었습니다. 서부시대에 가장 빠른 적응력을 보인 교단은 침례교입니다. 이들이 서부에서 가장 빠른 적응력을 보인 이유는 서부시대 정신이 자립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교단의 간섭이 최소화하며 융통성과 유용성이 빠른 자교의 권리를 최대한 인정해준 침례교가 적응하기 좋았던 겁니다. 침례교가 서부에서 성공을 거두자 권위적이며 감독중심인 감리교가 시스템을 바꾸며 서부지역 사역에 나섭니다. 시스템을 바꾼 감리교는 요한 웨슬레가 말을 타고 수천키로씩 떨어진 포장마차를 심방하는 순회 전도자 방식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혹독한 대가를 치른 미국 감리교회는 수천 개가 넘는 교회를 단시일 내에 서부지역 곳곳에 세웁니다.감리교 침례교가 서부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펼치자 장로교도 제임스 맥그리디라는 인물을 통해 서부지역 야외 부흥운동을 일으킵니다. 이 부흥운동이 일어난 때에는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포장마차를 끌고 나와 설교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방언 받고 쓰러지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야외 부흥운동이 한 번 일어나면 그 지역 술집이 문을 닫고 매춘부가 떠나가며 노예제도폐지운동이 일어났습니다.2차 대각성 운동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 찰스피니(1792-1875)입니다. 피니는 부흥의 새로운 기준들을 세우는데 간절한 집회, 연장되는 집회, 조직적인 기도모임, 전문 부흥집회 봉사자 훈련 등을 하나하나 체계화시켰습니다. 이런 탁월한 부흥의 테크닉들을 체계화시켜서 연 로체스터(1831)라는 유명한 집회에서는 5일 동안 1만명의 타운 인구가 모든 일을 중단하고 집회에 참석해 주께 돌아오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부흥운동 기도부흥운동의 불을 지핀 사람은 제리마이야렌피(Jeremiah Lanphier)라는 평신도 였습니다. 150년 전인 1857년 9월 렌피는 멘하턴 거리를 지나가는 비즈니스맨들을 보면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렌피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첫 주 20명 다음주 40명 그러다 한주씩 모이던 모임을 매일 점심때마다 모이게 됐습니다. 한 달도 안 되서 뉴욕 곳곳에는 100개가 넘는 기도 모임이 생기게 됐으며 6개월 만에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소그룹모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러분 점심시간에 5만 명이 넘는 비즈니스맨들이 샌드위치를 들고 기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기도부흥운동은 교역자가 시작하지 않고 기도 응답으로 이뤄진 부흥운동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기도부흥운동’이라고 말합니다.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추출할 수 있는 부분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 부흥은 하나님의 독특한 주권과 섭리에 담겨있다는 것, 둘째 누군가가 부흥의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것, 셋째 부흥은 전염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흥의 여파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겁니다.미국이라는 나라는 문제가 많고 범죄가 많은 나라이나 미국의 사회를 움직이는 가치관은 기독교적인 것입니다. 노예가 해방되고 학교가 곳곳에 세워지고 전 세계 인재가 모여드는 오늘날 미국의 글로벌 대학시스템들이 다 부흥운동의 산물이었습니다.복음이 들어 온지 120년 밖에 안 된 우리나라도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그러나 아직 최고의 것은 오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색깔과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흥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부흥의 주역이 되길 추권합니다./ 정리 김의재 기자 kuj@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