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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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강의2-한국의 오순절, 평양대부흥

박용규 교수 | 총신대학교(한국교회사연구소) 부흥의 세 가지 배경  한국교회의 부흥을 이해할 때 세 가지 배경을 이해해야합니다. 첫째, 전 세계적인 부흥운동입니다. 1904년 웨일즈 부흥운동, 1905년 인도 카시아 부흥운동, 1906 아주사 부흥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 1908년 만주와 중국의 부흥운동 1909년에 백만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놀라운 부흥운동은 세계선교를 앞당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특히 초점은 중국, 한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에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집중된 나라는 한국이었습니다.  둘째, 한국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였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청나라도, 러시아도, 일본도, 미국도 아니요 하나님밖에 없는 생각이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 있었습니다.  셋째, 전국적으로 널리 시행된 사경회운동입니다. 1890년 채택된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근간으로 사경회가 널리 시행되었는데, 이 사경회가 부흥운동을 위한 영적각성의 토양을 제공해주었습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도 일종의 사경회였던 기도회에서 발흥했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역시 그해 1월에 열린 평안남도도사경회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1890년부터 사경회가 널리 시행되면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적각성이 서북지역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오순절 그 역사적 발단 한국에는 세 차례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1909년에 백만인구령운동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흥운동이 세 번이나 일어난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이 성령의 역사는 1903년 원산 부흥운동의 주역인 화이트(Mary Culler White)와 맥컬리(Louise Hoard McCully)라는 여자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인들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한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기도회를 갖기로 하고 의료선교사 하디(Robert A. Hardie)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지 강의를 부탁했습니다.  1890년 토론토의과대학을 졸업한 하디는 가는 곳마다 선교를 실패했는데 그 원인을 한국 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다가 기도회 강의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문제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만난 성경은 누가복음 11장 13절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가 눈물로 며칠 동안 하나님과 만난 이후 시작한 강의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디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하디의 회개를 통해 사람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하디의 회개는 동료 선교사들한테도 은혜를 끼쳤습니다. 업아력(A. F. Robb) 선교사가 성령의 강력한 은혜를 경험하고 새롭게 거듭났고, 제임스 게일(James S. Gale)도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변화되자 원산 부흥운동의 저변이 확대 되었습니다. 하디는 자신을 부흥의 도구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갖고 자신에게 실패감을 안겨주었던 강원도 지경터로 향했습니다. 그가 인도한 12일의 지경터 집회 동안 성령의 역사,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디는 이어 개성, 서울로 향했습니다. 주님은 예외 없이 이곳 집회에서도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부흥의 열기에 힘입어 1904년 6월에 들어 처음으로 부흥회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기성신자는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불신자는 주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하디는 안식년을 떠나기 전 10월에 서울과 제물포와 평양 세 곳에서 집회를 인도했고 이들 집회 가운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하디가 안식년을 떠난 후 1905년에 접어들어 개성을 중심으로 영적각성이 계속되었습니다. 1905년 9월 장로교 4개 선교회와 감리교 2개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은 함께 모여 한국복음주의선교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를 조직하고 하나의 민족교회를 꿈꾸며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 영적부흥이라고 확신하고 1906년 신년 들어 신년부흥회를 전국적으로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1906년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평양의 모든 선교사가 모여 원산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하디를 강사로 모시고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장대현교회 담임목사 이길함 선교사를 비롯해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의 손을 잡고 그 집회에 참석했던 12살의 어린 셔우드 홀(Sherwood Hall)에 이르기까지 온 회중들은 하디의 설교를 통해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존 스톤을 강사로 모시고 이어 열린 서울선교사 사경회에서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웨일즈와 인도 부흥운동의 현장을 목도하고 한국을 방문한 존 스톤은 웨일즈와 인도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운동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존 스톤은 서울 사경회가 끝난 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경회를 인도하며 다시 한 번 웨일즈와 인도의 부흥운동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다시 한 번 부흥을 기대하며  이런 영적분위기 속에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전역에서 올라온 1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평안남도 도사경회가 열렸습니다. 6일부터 저녁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평양시내 사람들은 낮 집회에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저녁집회에는 참석이 허용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 기간, 특별히 사경회 마지막 14일과 15일 이틀 동안에 발흥했습니다. 평양의 오순절 그 첫째 날 (1월 14일 월요일 저녁), 통성기도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을 다 돌려보내고 600명이 남아 새벽 2시까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이후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평가받는 평양대부흥운동은 바로 그 때 모인 남은 자 600명 가운데 임했습니다.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는 모인 이들 모두 처음 체험하는 강력한 부흥이었습니다. 평양의 오순절 둘째 날인 1월 15일, 선교사들은 정오에 모여 어제 있었던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선교사들 가운데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이날 말씀을 전하는 길선주의 얼굴은 거룩함으로 불타고 있었고, 그의 메시지를 들은 동료 장로의 증언을 빌린다면 그의 얼굴은 길선주가 아니라 예수였다고 합니다. 그가 회개할 것을 촉구하자 그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 안에 은밀하게 숨겨진 온갖 죄악들을 다 토로했습니다. 사람이 지을 수 있는 모든 죄들이 그날 공개적으로 고백되었습니다. 장대현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평양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사경회 이후 숭덕학교와 숭현여학교에서도 회개를 동반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장대현교회는 사경회가 끝났는데도 16일 수요일 기도회 때, 다시 20일 주일 예배 때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었습니다.  1백 년 전에 일어났던 영적 대각성운동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한반도는 소망이 없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을 여러분이 다시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 밖에 없기에 더욱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 정리  서철 기자 chol@onnuri.or.kr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