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온누리축제

주제강의_ 용 서

주제강의_ 용서 데이빗 스툽(풀러신학교 상담학 교수)‘내 아버지를 용서합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정 전체에 치유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힘입니다.  용서, 회복의 가장 중요한 키(Key)중독으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에서 용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과거에 한 번 용서를 했다고 중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회복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님은 큰 빚을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작은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는 한 사람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진심으로 자기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행하실 것이다.”(마 18:35)우리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지만 거기엔 우리가 형제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는 용서할 것을 더 강하게 명하고 계십니다. 주기도문에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세상 그 어떤 종교와 가르침에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폭을 가진 가르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더욱 확대시킵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빨리 용서가 되지만 어떤 것은 수 년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상처가 깊을수록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장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과정에 있어서 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는 늘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고 기억조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말고 조건 없이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계도를 따라 내려가 보면서 회복의 과정을 살펴 보겠습니다. 가계도는 최소한 3명 이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3명의 관계에서는 직선이 세 개가 등장하는 데 안정적인 관계가 되려면 세 개 다 온전한 직선이 되든지 오직 하나만 온전한 직선이 됩니다. 직선 두 개가 온전하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하갈의 관계를 보면 바람을 피우는 모든 역학관계가 다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허락을 받고 바람을 피우고, 하갈은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이용합니다. 사라와 하갈은 서로 미워하게 됩니다. 점차 아브라함도 하갈을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라와 하갈의 갈등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마엘이 태어납니다. 세 사람 모두 이스마엘을 사랑합니다. 당시 문화권에서 이스마엘은 사라의 아들로 인정됩니다. 사라와 이스마엘 사이에도 온전한 직선이 생깁니다. 하갈만 빼면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지만 하갈은 그 가정의 부분이었습니다. 이 긴장감이 15~16년 지속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천사가 방문해 ‘이스마엘은 약속의 아들이 아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고 말합니다. 9개월 후에 이삭이 태어납니다. 사라는 자신의 삶을 이삭에게 모두 쏟아 붓습니다. 사라와 하갈은 깨진 직선, 사라와 이스마엘은 깨진 직선, 하갈과 이스마엘은 안정된 직선입니다. 사라는 이스마엘을 내침으로써 관계를 안정화시킨 것입니다. 사라와 아브라함 사이에도 긴장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을 내 보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말을 듣습니다. 이제 행복한 세 명의 관계가 남았습니다. 이삭이 40살이 되었을 때 사라가 죽습니다. 이삭은 무척 슬퍼했고, 리브가가 시집을 옵니다. 문제는 리브가가 임신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결혼해서 제일 위험한 때는 첫 아이를 낳는 때입니다. 나중에 부부가 어떻게 되는지는 첫 아이를 출산할 때 결정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아이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는 가족의 패턴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낳습니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납니다. 야곱은 커서 라반의 사기로 라헬과 레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지만 레아는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즉각적으로 삼각구도가 생겨납니다. 하나의 패턴이 여기서도 생겨납니다. 아들과 딱 붙어 있는 엄마의 모습이 또 보이고, 아들을 과보호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계도에서 반복되는 패턴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난 것은 질투 때문에 그 가정에서 분리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움 때문에 그 가정에서 분리되어 나옵니다. 요셉의 경우는 참 흥미로운 상황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까지도 자식에게 너무 심하게 쏟습니다. 여기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보게 됩니다. 과거에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동일한 모습을 리브가와 야곱에게서도 봅니다. 요셉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한 자식에게 극도의 애정을 보입니다. 나머지 자식들에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습니다. 각 세대마다 누군가가 집안에서 분리되어 나갑니다. 사랑받지 못한 아들 이스마엘이 쫓겨나고 어머니의 편애를 받는 아들 야곱이 집안에서 분리됩니다. 요셉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편애하는 자식이 분리됩니다. 가족의 역기능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악화되는 모습입니다. 질투, 투기 때문에 분리되어 나갑니다. 요셉의 경우에는 거의 죽음에까지 몰려 살해당할 뻔한 상황에서 분리되어 나갑니다. 여러분 전에 창세기를 보면서 이런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이런 패턴이 있음을 보기 위해서는 때때로 여러분이 그림을 그려가면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과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까이 있을 때는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죄악 된 패턴이 3, 4세대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혹은 어떤 사건이 그 패턴을 멈추게 합니다. 여기서는 네 번째 세대에서 그치게 됩니다. 한국문화권에서는 부모와 조상에 대한 공경이 매우 강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 진실을 직시하는 것이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너희 아비와 어미를 공경하라’고 했을 때 정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공경’이라는 단어는 ‘무게감 있는 것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중요한 것을 중시한다, 공경할 만한 것을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봤을 때도 존경할 만하지 못한 것을 존경하는 것은 건강한 모습이 아닙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부인하고 긍정적인 면을 붙잡고 있으면 그 사람과 나의 관계,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쳐다보기도 싫은 가정의 모습이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창피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정과 관련된 사역을 하고 상담을 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 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가장 강력한 장소는 바로 우리의 깨어짐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치유 과정 이제 요셉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요셉의 나이 17살,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 버릇없는 아이입니다. 형들이 자기를 왜 미워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합니다. 형들이 자기를 미워한다는 그 사실조차 아마 안 믿었을 것입니다. 결국 형들은 자기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우리는 삶에서 다른 사람 때문에 희생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공평한 대접을 받기도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요셉처럼 억울한 사람이 있을까요. 상황이 점점 악화됩니다. 이스마엘 족속의 상인들은 요셉을 애굽까지 끌고가서 가두고 경매에 붙여서 보디발에게 팝니다. 보디발은 바로 왕의 경호실장이었습니다. 요셉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낯선 땅에서 언어도 모른 채 바로의 담당 수석 처형관 밑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17살의 어린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악한 상황 가운데서 요셉의 강인한 성품이 드러납니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유약하고 순진무구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강인한 성품으로 발현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희생자가 되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요셉도 그 패턴을 따라 갑니다. 뭔가 과잉보상을 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최선을 다하려고 남들보다 곱절의 노력을 합니다. 요셉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디발의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담당하는 사람이 됩니다. 몇 년 지나고 성숙해져서 건장한 청년이 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게 되고 요셉은 이것을 뿌리쳤지만 억울하게 감옥에 갇힙니다. 거기서 요셉의 회복 프로그램, 치료 프로그램이 시작됩니다. 만약 요셉이 지금 겪고 있는 그런 과정 없이 이전의 노예의 자리에서 주인의 집에 있다가 바로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면 엄청난 폭군이 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화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갔을 때 요셉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 감옥에 갇혀 있는데 낮에 할 일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결국은 그룹으로 치료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할 일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룹으로 모여서 매일 치료 를받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사람들과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형들이 노예로 팔았다는 이야기도 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요셉은 부모가 자기를 얼마나 편애해서 그곳까지 몰아넣었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물어보는 과정에서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치유와 용서의 5단계치유와 회복에 있어서 첫 단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단계에서 비로소 실제로 일어난 일,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온전하고 충만하심, 또 그 치유하심을 어느 부위에 상처가 있는지, 정말 상처가 있는지를 깨닫기 전까지는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는 그 상처를 무시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온전한 치유하심과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하심을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상처를 인식하는 단계까지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깨어짐의 자리에서 강력하게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요셉의 치유과정에서 첫 단계는 진실을 직시한 것입니다. 치유는 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눔으로써 시작됩니다. 요셉은 진실의 직면 단계를 지나 두 번째 애통의 단계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의 단계가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두고 애통해 합니다. 건강한 애통함에는 분노와 슬픔이 모두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모든 과정을 나 혼자 해결해 보겠다고 할 때는 쉽게 덫에 빠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옥에 넣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행해진 모든 불의에 대해서 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분노는 잘못된 것에 대한 항변입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생각하니 말 못할 슬픔이 몰려옵니다. 세 번째 단계는 나에게 상처가 된 행동을 저지시키기 위한 경계선을 설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시거나 요셉의 경우처럼 가족이 멀리 고국 땅에 있고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은 여러분을 지지해주는 서포트(support) 그룹과 함께 진행하는 과정입니다. 부모님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 모든 것들이 섞이면서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갈등 없이 분노를 내뿜지 않고 온유하게 경계선을 세워줘야 합니다. 그다음 네 번째 단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룹이 도움이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된다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용서는 과정이자 결정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우리를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용서의 과정을 충분히 지내왔으니 결정을 내릴 때라고 말씀해주는 분이 여러분 주변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를 해야겠다는 결정이 어떤 시점에 이르면 용서를 확정해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하나님께서도 동일한 용서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내가 너희를 용서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수천 년 동안 용서의 과정을 지나오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모든 제사와 제도들을 통해서 지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과 함께 용서를 확정하신 것입니다.다섯 번째는 용서 이후에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화해의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용서하기 이전 상태라면 그 대상에게 뭔가를 계속 바라게 됩니다. 이 다섯 번째 단계는 반드시 용서를 확정하시고 난 다음에 진행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용서한 다음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니까요. 요셉은 아마 감옥에서 8~10년 정도 긴 시간 동안 있었을 것입니다. 서른 살에 풀려났기에 20대 인생의 황금기를 도둑맞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가장 적합한 때에 요셉을 풀어주십니다. 요셉이 가족들을 다시 만났을 때 형들과 아버지를 용서하게 됩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에 이 모든 과정이 완료된 것입니다. 요셉은 가계도 안에서 반복되었던 패턴을 끊은 것입니다. 요셉은 변화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그런 사람이 되기까지는 치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과정입니다. 여러분이 여전히 용서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을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 용서의 영역에서 모든 일을 다 하셔야 합니다.  익숙해져야 할 회복의 12단계 여러분이 회복의 12단계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제 익숙해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12단계 과정을 취함으로써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몸 된 교회 안에서 회복사역의 힘을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1~3단계를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이고 두 번째는 조금 개정된 내용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코올에 대해서 무기력한 존재임을 인정하며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어떻게 손 쓸 수 없게 되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일반화해서 말씀드리면 ‘우리는 우리의 의존성에 대해서 무기력한 존재임을 인정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의존 대상에 대해 무기력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때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움은 두 번째 단계에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온전한 정신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더 큰 힘이 있음을 믿게 되었노라’ 이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단계는 ‘나는 내가 이해하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나의 의지와 나의 삶을 돌이키기로 결정했다’입니다.  죄에 대해서 무기력함을 인정하고  나보다 더 큰 존재,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내 삶을 돌이키면 그 분이 나를 고치실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계획이 아닙니까. 4단계에서는 ‘나 자신의 도덕적인 상태에 대해서 두려움 없이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점검하라고 이야기합니다. 4단계에서 회복단계를 중단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4~9단계는 내가 행한 죄, 나에게 행해진 죄에 대해서 면밀히 살펴보고 기록하고 그 상태를 측정하면서  어떤 부분에 용서가 필요한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9단계에서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1~3단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잡는 단계이고, 4~8단계는 내가 나와의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고, 9~12단계까지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치유하는 단계입니다.9단계는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겠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10단계는 ‘내가 나의 도덕적인 상태에 대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면밀히 측정하고 뭔가 잘못하면 즉각적으로 그 부분을 시인하겠다’입니다. 즉 한 번만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평생토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10단계까지 오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잡게 되고, 나와의 관계나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도 보수가 됩니다. 앞으로도 그것을 계속하겠다는 결단으로까지도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11단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회복의 핵심이 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증진시켜 나가기 위해 기도와 묵상을 해 나가겠습니다.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한 그 뜻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12단계는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각성을 한 자로서 이 단계의 결과로 우리는 다른 중독자들,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생활에 있어서 이 원칙을 적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성공적인 회복은 바로 우리보다 더 높은 힘을 가진 그 분이 누구인지,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시라은 것을 인정하는 교회 환경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여러분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용서의 힘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그것이 절대 제 삶의 한 부분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땅의 육신의 아버지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심하게 되면서, 내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뿐만 아니라 제가 아들과 맺고 싶어 했던 그런 관계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내 곁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뀌신 것이 아니라 제가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과 제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장벽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장벽은 제 육신의 아버지였습니다. ‘내 아버지를 용서합니다’라고 고백한 시간이 제 삶이 시작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했을 때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 전체에 치유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용서의 힘입니다./ 정리 차명권·박영주 기자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