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심장을 가진 두 국가를 정탐하다

간사 팀인 ‘모리타니 팀’은 6월 24일부터 7월 5일까지의 일정으로 블레싱 사하라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기자는 모리타니 팀원으로 함께 동행하며 모로코와 모리타니 땅을 정탐했다. 예상치 않은 일과 예기치 않은 만남으로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모리타니 팀은 돌아와서도 현장에서 보고, 듣고, 만난 이들을 위해서, 마지막 블레싱 사하라 팀을 위해서 중보하면서 한국에서의 아웃리치를 이어가고 있다.
다리는 ‘아프리카’, 머리는 ‘유럽’, 심장은 ‘이슬람’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모로코 왕국. 북아프리카는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뛰어넘어 이슬람과 아랍어권에 속한다. 프랑스, 스페인 등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아왔던 모로코는 자신들이 속해 있는 대륙은 ‘아프리카’, 지향하는 문화는 ‘유럽’, 7세기 후반에 이슬람 군대가 들어왔을 때부터 뿌리박힌 ‘이슬람’은 그들의 심장이 됐다. 팀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머물면서 모리타니 비자를 신청하고, 메디나(Medina)를 탐방했다. 메디나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큰 재래시장이다. 좁은 미로와 하얀 회칠을 한 긴 담벼락으로 시장이 이어졌다. 전통의상을 펼쳐 관광객에게 옷을 파는 상인, 각종 향신료를 파는 가게, 모로코 역사가 그려져 있는 그림들, 검은 차도르를 온몸에 감고 손과 발에 헤나로 문신한 여성, 시장 안의 모스크 등 한 시간이 넘게 땅밟기를 하며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메디나에서 나와 15분 정도를 더 걸어 우데야 마을로 이동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많은 연인들이 데이트를 즐겼다. 편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여자들의 모습은 차도르를 둘러싸고 남자와 거리를 두어 다니는 여자들과 달라보였다. 옷도 편하고 시원하게(?) 입고 있었다. 젊은 세대의 사람들 특히 유학을 다녀왔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젊은이들일수록 이슬람 문화권에서 벗어나 보였다. 그러나 모습만 그렇게 보일 뿐 그 마음은 여전히 동일한 이슬람 심장이라고 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모리타니로 이동하는 일정이 하루 늦춰졌다. 27일에 이동해야하는 비행기 티켓이 비자문제로 취소가 됐기 때문이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에 막 군대를 제대한 듯 보이는 청년이 도움을 청해왔다. 말이 통하지 않고 늦은 밤이라 우리숙소에 함께 머물기로 했다. 청년의 이름은 ‘지욱’이었다. 스페인을 여행하기 위해 왔고 경유지인 모로코를 구경하기 위해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중에 헤매고 있었다고 했다. 유럽 여행객들이 도와준다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순간에 우리를 만났다고 했다.
다음 날 지욱은 스페인으로 향하고 우리는 모리타니를 가기 위해 함께 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지욱이와 팀원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고마워서라도 꼭 집 근처인 양재 온누리교회에 가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팀 일정이 바뀌었을지언정 지욱을 만나 도움을 주고 교회에 나오도록 스스로 다짐받게 되는 과정을 보며 한 영혼을 위해 팀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거룩한 땅 ‘모리타니’,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누악쇼트’
28일 모리타니에 도착했다. 그러나 팀원 모두가 아닌 절반인 3명뿐이었다. 항공권을 다시 사면서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는 예상치 못한 일을 수습하느라 발권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로인해 3명만 발권이 됐고, 나머지 3명은 하루를 더 모로코에서 머물게 됐다. 팀원 모두는 일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려놓으며 인도하심에 맡겼다. 29일, 드디어 모리타니 팀 6명 전원이 모리타니 땅에 모두 모였다. 하루 만에 부쩍 성숙해진 모습들이었다. 연속해서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짐을 느꼈다. 팀에는 하나님이 주신 동일한 마음이 있었다. 거룩한 땅에 들어오기 위해서 스스로 거룩한 성전이 돼야 한다는 것. 그날 밤 팀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어렵게 들어온 모리타니 땅 위해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도했다.
모리타니에서 우리의 사역은 누악쇼트 땅 밟기였다. 모리타니 수도인 누악쇼트는 가장 큰 도시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다. 전체적인 도시의 이미지는 정신없을 만큼 복잡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한가로워 보이지도 않았다. 낮의 도로는 조용했고, 오히려 밤의 거리는 복잡했다. 60도까지도 올라가는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낮의 활동을 하지 않고 대부분 오후 늦게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웅장함을 드러내는 모스크는 모스크 펜스 밖의 각종 쓰레기들과 힘없이 주저 앉아있는 염소들과는 대조되어 보였다.
땅 밟기의 하이라이트는 ‘사막’과 ‘바다’였다. 사막 초입에 새로 지어지는 수많은 집들이 있었다. 신도시였다. 가뭄이 이어지면서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누악쇼트로 올라온다고 했다. 이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의 무지함이 보이는 듯 했다. 양쪽 사막을 끼고 아스팔트 도로가 반듯하게 깔려있었다. 중국인들의 업적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이 모리타니에서 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동양인에 대한 인식이 좋았었으나 지금은 중국인들의 무차별한 비즈니스로 오히려 시선이 곱지 않아졌다고 했다. 사막에서 30분을 차로 이동하니 넘실대는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땅을 삼킬만한 파도위에 고기를 잡는 배들이 빼곡히 있었다. 배가 들어오고 나가는 항구도 따로 없었다. 그냥 파도에 밀려 자연스럽게 나가고 들어오는 그곳이 바로 부두였고 선착장이었다. 물고기가 많이 잡혀서인지 떨어진 물고기만 줍는 아낙네들도 있었다. 이 풍부한 어장으로 대서양의 모리타니는 살아가고 있었다.누악쇼트에서의 사막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바다는 그들의 생명줄이었다.
오래 기억하고 평생 중보하기
10박 11일 일정동안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메시지는 많은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미 그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팀의 일정대로 된 것이 거의 없었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그곳에서 경험한 모든 것들을 위해 오래 기억하고 길게 마음에 품으며 평생 중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웃리치가 아닐까.
/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넘실대는 파도위에 빼곡히 고깃배들이 떠있다. 모래사장에 누워 구경하는 사람, 물을 기르는 사람, 그들에게 바다는 생명줄이다.

바다바람이 얼마나 센지 소녀의 땋은 머리가 중구난방으로 날린다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모리타니 전통복장

사막초입부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있다. 인부들이 공사하다 말고 기도시간에 맞춰 기도를 드린다

웅장한 모스크, 펜스 밖의 쓰레기와 힘없이 앉아있는 염소와 대조를 이룬다

라바트 시내 전경. 오른쪽 성벽을 따라 메디나(시장)

라바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대서양과 아비라카락 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모로코 최고의 음료 '오렌지 주스' 길거리에서 직접 짜준다. 1잔에 600원 정도

모리타니에서 만난 의지의 한국인 1- 자전거로 세계여행중인 김행창 씨와 쌍둥이 아들

모로코에서 만난 '지욱이'(가운데)

모리타니에서 만난 의지의 한국인2-팀에게 문어요리와 한국밥상을 대접해준 박성남 씨 가족. 모리타니에 산 지 30년(뒤 가운데 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