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기획_차세대 교육이 미래다> 2.신앙의 뿌리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는 자녀의 미래다

 

대한민국 아버지들, 가정의 행복보다 중요한 것 없다
축복하고, 가르치고, 신앙 전수해야한다 그래야 자녀가 산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먹을 것을 줘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줘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눈에 비친 눈물 젖은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초상화다. 아버지들은 동심의 세계에서조차 설 곳이 없다. 불분명한 용도가 되어 버렸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보통 13시간이다. 돈 버는 기계가 된 지 오래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는 가정의 뿌리다. 영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신앙은 아버지로부터 전수되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다. 개성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이 더 중요하다. 개성은 반드시 사회성으로 성숙해야 한다. 그것이 인성이요, 영성의 뿌리다. 개성의 핵심이 성품이라면, 사회성의 핵심은 관계다. 개인으로 태어나 사회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사회화 과정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사회화를 통해 사회인이 되어 간다. 사회화 과정의 기본 틀을 경험시켜 주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바람직한 사회화가 이루어지려면 법규나 관습적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충동적인 만족을 미루거나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른 공경하는 것, 부모나 교사에게 복종하는 것, 배고프다고 남의 것을 훔쳐 먹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 안 되는 것, 서로 양보하고 함께 공유하는 것, 남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 등이 사회화 과정이다.
몇 년 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모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개인적으로 뛰어나지만 국제화 감각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마도 사회화가 덜 되어 있다는 것이 바람직한 표현일 것이다. 뛰어나고 탁월한 개인은 많지만 훌륭한 사회인이 적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다.
우리의 자녀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입시전쟁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깨진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 가슴에 상처와 분노가 쌓여있다. 가정은 마치 작은 교실과 같다. 가정에서 학습한대로 밖에서 행동하게 된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감정반응의 패턴과 대인관계의 스타일이 형성되고, 이에 따라 대인관계의 유형과 색깔이 정해지게 된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 정치적 성향에서 인생관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거의 모든 부분이 어릴 적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패턴은 가정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인간은 세 살까지 그들의 가정에서 온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인간발달의 근원적 집단이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가정을 회복시켜야 한다. 가정의 회복, 그것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과제다.

 

아버지가 가정의 운명을 결정한다

 

가정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수준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문제는 바로 아버지의 문제다. 아버지의 영향력 부재 혹은 잘못된 아버지의 영향력이 사회를 극도의 혼란 속으로 몰고 가고 있다.
물질만능주의나 지나친 개인주의 속에서 더 많은 업적, 더 많은 월급,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들이 급증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 가출 소녀의 90% 이상이 아버지와의 접촉결핍증 환자라고 한다. 캔 캠필드는 <아버지, 당신은 카피되고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보다 가난해질 확률은 다섯 배, 극빈자가 될 확률은 열배 높다”고 했다.
존 킹은 <잘 되는 자녀는 아버지가 다르다>에서 “가정에 아버지가 없거나 있어도 제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자살할 확률 다섯 배, 교정 기관에 수감될 확률과 고등학교에서 낙제할 확률 각 아홉 배, 약물남용 확률 열 배, 강간을 저지를 확률이 열네 배(남자에 해당), 행동장애를 일으킬 확률과 수감될 확률이 스무 배, 가출할 확률이 서른두 배 높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때 발생되는 좋은 영향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자들은 학업성취에 도움, 동기발달에 긍정적 영향, 타인을 돌볼 줄 알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 규칙을 엄수할 줄 알고, 어른들 말에 순종적 반응, 지능지수가 높다, 사회성이 높다, 성 정체성이 분명해진다고 밝히고 있다. 아버지가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때 발생하는 좋은 영향력은 이외에도 훨씬 많다.
요즘 동성애 문제가 사회적&#8231;종교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동성애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정의 붕괴나 아버지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사회에 영어교육 열풍이 일어나면서 어린 자녀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들이 속출하고 있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영어는 중요하다. 그러나 영어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다. 영어를 못해서 보다 아버지의 부재가 문제아를 만들 소지가 더 높다.
아버지는 가정의 건축가다. 아버지가 놓는 벽돌 한 장 한 장이 가정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버지의 얼굴이 가정의 얼굴이다. 아버지가 짓는 표정이 가족 모두의 표정을 결정한다. 아버지는 세상을 여는 창이다. 자녀들의 미래다. 아버지들이 절대적으로 자녀양육에 참여해야 한다.

 

아버지가 예수 믿으면 93%가 교회에 간다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 미래지도>라는 책에서 “한국교회는 성장이 잠시 주춤한 것이 아니라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경고했다. 한국교회의 위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 교회의 세속화, 대형화, 교회 분쟁, 영성의 문제, 리더십의 자질, 신앙과 삶의 괴리, 교인의 고령화 등이 그 이유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가정의 붕괴와 아버지의 부재다.
교회의 뿌리인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에 남자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성비 불균형이 심각하다. 젊은이의 경우는 7:3, 심지어 8:2 비율로 여성 성도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때문에 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교회가고 싶은 남자>의 저자 데이비드 머로우는 그 원인을 “현대의 교회는 남자들이 찾아가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교회 안 남성들의 수동성은 어색함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열두제자로 남자를 택하셔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핵심인물로 양육하셨다. 기독교의 가치관, 세계관은 여성적일 수 있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공격적이고, 도전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성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여기신 것 같다. 현대의 교회에도 남자들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남자들의 타고난 재능과 기질이 교회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데이비드 머로우는 남성적인 은사가 교회의 건강을 촉진한다고 주장하면서 “남자들의 실용정신이 교회에 혁신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남자들이 교회에 힘을 불어넣는다”고 주장했다. 경건한 남자들이 여자들을 끌어 모으고, 남자들이 교회에 가족을 데려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러 통계에 의하면 아버지의 영적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부모가 함께 주일예배를 드릴 경우 자녀가 성인이 돼서 교회에 다닐 확률은 72%다. 아버지가 주일예배를 드릴 경우는 55%, 어머니가 주일예배를 드릴 경우는 15%, 부모가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을 경우는 약 6% 정도가 성인이 돼서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고 한다. 또 다른 통계에서는 어머니가 예수를 믿으면 가족의 17%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지만, 아버지가 예수를 믿게 되면 93%의 가족들이 교회에 간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거의 온 가족이 주님을 따르게 된다. 최윤식 박사는 한국교회의 사회영향력과 부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사안으로 가정회복과 은퇴자의 미래 그리고 자녀의 미래를 꼽았다. 그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가 주님을 만나면 그 가정에 영적 전쟁이 시작되고, 아버지가 주님을 만나면 그 가정에 평화가 깃들기 시작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기독교가 세속주의와 싸워 이기고, 사회에 건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필요하다. 교회는 남자들을, 아버지들을 불러 모아야 한다. 아버지들이 교회부흥의 핵심이 되도록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한다.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

 

기독교는 종교나 철학이 아니다. 믿음이다. 관계와 삶의 방식에 밀접한 영향을 준다. 파스칼의 말처럼 기독교는 논증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결단의 문제다. 종교나 철학은 알고 믿지만 기독교는 믿고 알게 되는 신비다.
아버지는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영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아버지는 관계의 뿌리다. 하나님의 이미지는 육신의 아버지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어렵다. 무신론자이며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로이드는 “정신분석은 아버지 콤플렉스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가르쳐 준다. 개인이 믿는 신은 격상된 아버지 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 “신의 존재여부는 심리학적 영향력 아래 있으므로 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폴 비츠는 프로이드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신론의 심리학>에서 무신론의 결정 인자들을 찾아냈다. 그는 ‘결함 있는 아버지(defective father)’를 가설로 명명하고 대표적인 무신론자들을 분석했다. 무신론자들 뒤에는 결함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죽은 아버지, 유약하고 학대하는 아버지들 말이다.
아버지의 존재는 자녀가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기 전인 3~5세 시절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는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그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데이비드 흄은 두 살 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버트란트 러셀은 네 살 때, 사르트르는 15개월에 각각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20세기말 저널리스트 러셀 베이커는 자서전에서 5살 때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하나님,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아버지를 죽게 하셨나요?”라고 물었다. 이들은 ‘죽은 아버지 증후군(dead father syndrome)’에 속했고, 토머스 홉스, 볼테르,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프로이드 등은 유약하고 학대하는 아버지에 속했다.
이에 반해 파스칼과 윌리엄 페일리, 윌리엄 윌버포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하, 알렉시스 토크빌, 알베르트 슈바이처,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등의 유신론자들은 어린 시절을 정상적이고, 건강한 아버지와 함께 보냈었다.
비츠는 “자녀들을 부인하고, 미워하고, 신체적·성적으로 학대하거나 유기한 아버지를 둔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이해와 긍휼이 필요하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어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진리를 아무리 말로 잘 설명해도 자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주지 못하면 그들은 결국 진리를 떠날 것이다”는 조시 맥도웰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축복권, 말씀권, 훈육권, 신앙전수권

 

신앙의 뿌리는 아버지다. 하나님은 창조질서의 마무리 단계에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돕는 배필인 하와를 짓고 명령을 주실 수도 있었지만, 아담 홀로 있을 때 명령을 주셨다는 것은 영적으로 의미가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아담이 그 말씀과 권위에 순종할 때 창조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창조질서 안에 사는 것이 자유다. 그 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 수 있다. 이것이 영생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되었고, 죄성으로 인한 이기심, 시기, 다툼, 상처로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숨었을 때 선악과를 먼저 먹은 사람은 하와였지만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가정의 제사장이자 남편, 하나님과의 관계의 뿌리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담의 실패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질서를 회복시키고, 다시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거듭 강조한다. 아버지는 신앙의 뿌리다. 아버지가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 삶으로 가르치고, 말씀으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아버지들에게 네 가지 권리를 주셨다. 첫째 축복권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길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4,27).
둘째 말씀권이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셋째 훈육권이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넷째, 신앙 전수권이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 3:15)
한때 세계선교를 주도했던 많은 나라들, 이른바 복음의 선진 국가들의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수평선교, 즉 지역선교에만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직선교 시대다. 가정선교로 눈을 돌려야 한다. 수평선교는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선교다. 수직선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세대선교라고 하는데 가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가장 기본적인 선교다. 세대선교를 회복시켜야 수평선교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세대선교를 회복시키기 위해 ‘아버지학교 운동’을 일으키셨다. 아버지가 만난 하나님을 아들과 딸들에게, 할아버지가 만난 하나님을 손자 손녀에게 전수해야한다. 경험시켜야 한다.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 4:6).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에게로 돌아올 때, 삶과 믿음이 회복될 것이다(눅 15:18). 하나님이 아버지들에게 주신 축복권, 말씀권, 훈육권, 신앙전수권으로 자녀들의 신앙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저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김성묵 장로 (2)김성묵 장로(아버지학교 운동본부)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