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크리스천들은 자존감이 낮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기획 _크리스천과 자존감

 

자존감은 주관적 신념 … 키워드 ‘사랑’과 ‘유능감’

 

당신의 자존감(自尊感)은 안녕하십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작 자존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다. 자존감은 ‘사랑’과 ‘유능감’으로 구성된 주관적 신념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외모, 환경, 배경, 경제력, 인간관계가 어떻든지 간에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무엇이든지 다 잘 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 개인의 신념을 뜻한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자존감이 낮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 이소정 기자 s2868@onnuri.org

 

자존감은 자아존중감(self-esteem)과 의미가 같다. 자존감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평가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모양이 완전히 달라진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고,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문제는 자존감을 개인의 주관적 신념으로 해석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이나 판단으로 해석하면서부터 발생한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와 같은 해석의 오류를 범한다.
자존감은 아동기의 축적된 경험, 타인으로부터 받은 평가, 자신의 행동평가, 자신의 기준에 따라 사는 능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 자존감을 구성하는 요소는 사랑과 유능감이다. 사랑은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좋아하는 정도이고, 유능감은 과제를 완수하고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 개인의 신념을 뜻한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이유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물겨운 삶을 산다. 생후 30개월 이전에는 부모가 그 눈물겨운 일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 고단함을 잘 모를 뿐이지 갓난아이들도 사는 게 녹록치 않다. 인간은 누구나 아주 어린 시절부터 고난과 역경을 스스로 이겨내야만 한다. 수천만 번 넘어지는 실패를 통해서 걸음마를 배우고, 수억 번 이상 옹알이를 하면서 언어를 배운다. 이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양육자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듣는다면 자존감이 높아지지만 적절한 격려와 칭찬을 받지 못하면 자율성 대신 수치심을 학습해서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다. 자존감이 높은 청소년일수록 건강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매우 유리하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원만한 친구관계, 학업성취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원만한 친구관계, 학업성취 등이 건강한 자아정체성 확립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업성취는 우수한 성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청소년기에 건강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면 정신적, 감정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면서 자존감이 낮아지게 된다.
청년들의 자존감은 취업과 대인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우리나라 20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존감이 낮다’고 응답한 청년이 40.6%나 됐다. ‘자존감이 높다’고 응답한 청년(24.4%)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 ‘자존감 수준이 보통’이라고 응답한 청년 비율도 35.1%나 됐다. 이를 해석하면 우리나라 청년 열 명 중 네 명은 자존감이 낮고, 열 명 중 세 명 이상은 자존감이 높지도 낮지도 않다. 청년들이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비교의식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언제 자존감이 낮아지는지를 물었더니 무려 27.6%가 ‘SNS에서 행복해 보이는 지인을 볼 때’라고 응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취업이 안 될 때(22.7%)’, ‘가족의 기대에 부응 못할 때(21.9%)’, ‘친구 또는 상사와 갈등(11.9%)’, ‘외모가 불만족스러울 때(11%)’ 등의 순이었다.
중년 이후의 자존감은 역할상실의 영향을 받는다. 주로 남성들은 은퇴로 인한 역할상실, 여성들은 빈둥지증후군(자녀를 독립시킨 중년여성들이 느끼는 심리적 박탈감)을 호소하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의 특징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에게는 각각의 특징이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허풍이나 과장이 심하다. 그만큼 자기합리화를 잘하고 거절에도 민감하다. 착한사람 콤플렉스, 완벽주의가 있는 사람도 자존감이 낮은 경우가 많다. 또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과일반화 등의 부정적 인지와 정서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보이는 특징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도 매우 뛰어나다. 또한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다. 주로 이들은 공동체에서 리더가 된다.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먼저 ‘반드시 ~ 해야 한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벽해야 되고, 무조건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불가능한 신념을 버리고, 실수하고 실패한다고 해서 스스로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자존감이 낮아진 사건과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타당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벌어진 사건과 상황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해석이 긍정적으로 바뀌면 낮아진 자존감이 회복된다. 늘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정서적 지지기반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도 바울이 자존감이 높은 이유

 

앞서 언급한대로 크리스천은 자존감이 낮아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자녀로 택하셔서 부르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1,4).
자존감이 높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이라는 탁월한 가문에서 공부했고,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자존감이 높은 이유는 성장 배경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연약한 육체를 이끌고 복음을 전하면서 겪은 모진 고난이 그의 자존감을 높인 원동력이었다. 사도 바울이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히 13:8)”에 있었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고 믿는 그 자체가 우리의 낮아진 자존감을 높여준다. 이를 성경이 증명해주고 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나의 자존감 정도 알아보기

1. 나는 다른 사람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다.
2. 나는 결정하는 게 어렵지 않다.
3. 나는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4. 나는 다른 사람만큼 일을 잘할 수 있다.
5.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6.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7.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8.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다.
9. 나는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
10. 나는 현재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한다.

점수 계산법
전혀 아니다 1점  대체로 그렇다 2점  그런 편이다 3점  매우 그렇다 4점

합산 결과
30점 이상 자신을 아끼고 사랑함
20~29점 보통수준
19점 이하 자존감이 낮은 상태

 


전문가기고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반대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자로 여기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내가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착된 ‘노예정체성’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으로 바꾸고자 하셨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자부심이 대단한가? 또한 크리스천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한가?

 

정체성 잃고 마음에 병든 크리스천 유형

 

정체성 잃고 마음에 병든 크리스천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크리스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포로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잊어갔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존재인지 계속 말씀하신 이유다.
우리는 어떨까? 나는 크리스천인가? 내가 크리스천이라면 나는 지금 크리스천답게 살고 있는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산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또 다른 하나는 ‘꿈을 잃고 살아가는 크리스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조국으로 복귀하는 꿈이 사라져 갔다. 그 꿈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이룰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다.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못난 부분을 확인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무시했다. 만약 크리스천이 꿈을 잃고 살아간다면 죽는 날까지 성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를 출석해도 복음을 잃어버리고 이념에 빠져 살게 될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거절감 때문에 분노하며 살아가는 크리스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조국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응답이 없자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여겼다. 하나님께 거절감을 느낀 것이다. 우리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면 소망이 없는 자신의 삶을 탓한다. 그것이 너무 병적이 되면 거절이 아닌 것도 거절로 생각하고 분노하게 된다.
크리스천이 거절감을 품고 분노하면 결국 피해의식이 되어 공동체를 파괴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작은 일에도 상처를 잘 받고 우울감에 빠져 신앙생활을 해도 즐거움 없이 살게 되는 것이다. 상처받고 병든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좌절의 경험과 불신의 경험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좌절의 경험’ 때문이다. 고통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망을 잃었을 때 좌절을 경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우리도 이와 같다. 출생부터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자궁에서 100% 의존하고 있다가 출생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일관성 없는 부모의 양육은 아이로 하여금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인지기능이 미숙할 때 겪는 좌절은 내재화 되어 불신을 형성한다. 결국 좌절은 인지기능이 성장하면서 병적인 감정과 관계형성의 미숙으로 나타나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불신의 경험’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었던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이내 불신하게 된다. 이러한 불신은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부모가 자녀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아이는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과 기대를 무참히 꺾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찾는 방법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찾아야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나의 실체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만드신 분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건져 주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이름을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사 43:1).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내가 너를 건져 주었다)”는 말씀은 상처받고 병든 나를 고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우리를 구속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병에서 고침을 받았다면 항상 감사해야 한다.
“내가 지명하여 불렀다(내가 네 이름을 불렀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거절당하고 소외된 나를 찾으시고, 스스로도 포기했던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님께 부름 받은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한다.
“너는 나의 소유다(너는 내 것이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부모(혹은 자식)도, 주위 사람도 싫어하는 나를 자신의 자녀라고 확정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소유가 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해야 한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4).
“너는 나의 보배로운 존재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열등감으로 자학하는 나를 보배라고 인정해주시는 것이다. 오늘이 힘들다고 내일도 힘들다는 법은 없다. 오늘 죽을 정도로 힘들었다면 내일은 다시 좋은 아침을 기대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배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항상 “하나님께 존귀한 자”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거절감 때문에 분노하고 원망하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함을 받는 자이기에 높은 자존감을 가져도 된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외로움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고 자살하려는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외로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과 반대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는데 우리는 스스로를 쓸모없는 자로 여기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증상이 내 안에 있다면 내면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는 증거다. 과거에 경험한 내가 오늘의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회복의 처방을 주신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8~19).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내 속에 희망, 믿음,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자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을 굳게 믿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대로 인도해 가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 차준구 장로(양지 온누리교회 회복사역 담당)

 

 

작성자  이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