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장로칼럼

 

 

/ 이용만 장로 (OCC공동체)

 

소년 시절에는 마을에서 공부 잘하고착한 소년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전 과목 만점을 받아 전교 최우등생도 되었다. 그런데 6.25가 발생하고 꼼짝없이 인민군 장교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아버님 지혜로 면했다. 국군의 공세로 인민군들이철수하면서 학생들이 부상자를 이송하게 되었을 때에 나도 부상자를 들고 꼼짝없이 평양까지 가게 됐다. 밤새 산을 넘으며 가다가 같이부상자를 후송하던 연장자의 지혜로 경찰서에가서 밥을 먹고 오겠다고 말하고 도망을 쳤다.

 

 

마을에 오니 북진하는 국군들 수십명이 집에서 머물렀다. 어머니는 국군들에게 밥해 먹이느라 얼마나 신이 나셨는지 모른다. 그 후 치안대가 생기고 학도대가 생겼는데 나도 학도대원으로 공비 토벌에 나가는 날 어머니가 “배고프겠구나”라시면서 떡을 구워 주셨는데 그 찰떡 세 개가 어머니가 주신 마지막 음식이었다.토벌을 갔다 들어오니 시내는 이미 인민군으로 가득했다. 그 길로 남쪽으로 향했다.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 어머니가 뜨개질로떠주신 양털스웨터가 부대자루 같이 뻣뻣했다.경산에서 신체검사 때에는 연령 미달이라 검사 받지 않고 육군훈련소로 들어갔다. 훈련소에서는 밥도 주고 담요도 주고 정말 좋았다.1951년 5월 11일, M1소총 실탄 300발을 몸에감고 춘천에 있는 가리산으로 갔다. 산 능선에서 적의 부대를 만나 두 시간 동안 격전을 벌였다. 총 두발을 맞았다. 왼쪽 어깨와 척추에 총을맞고 절벽으로 굴러가다 나무에 걸려 겨우 목숨을 건졌다. 조금만 더 아래에 총알을 맞았으면 그대로 즉사했을 거라고 했다. 내가 맞은 두발 모두 급소를 피했다. 지금 생각하면 전우의기도 덕분이었다. 몰래 성경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저녁 성경 읽고 찬송 하며 기도하던 전우가 나에 대한 기도도 열심히 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에 가서 고학으로 졸업했다. 가정교사도 했고, 남들 대신 숙직도 하고,트럭을 타고 짐도 날랐다. 대학을 졸업하고는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재무부에서 일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60~70%를 더 일했다. 7시이후 출근하거나 9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높은 분의 친인척이나를 찾아왔는데 일이 바빠 만나지 않았더니괘씸죄로 면직을 당했다. 취직이 금지된 2년간체육관에 나가 분을 풀었다. 별의 별 생각이 들었으나 궁리를 하다 누구를 탓 할 것이 아니라‘ 나의 교만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 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내 힘과 능력이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서 교만한 마음을 고쳐 주셨다.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자산이고 성장의 원동력이다. 하용조 목사님은 고난 이상의 보약이 없다고 하셨다. 밑에서부터 새 출발을 하자는 마음으로 종업원 100명 정도 되는 투자금융회사를 맡아 1등으로 만들고, 신한은행, 외환은행,은행금융감독원을 거처 재무장관이 되었다. 재무부에서 면직 당하고 다시 돌아가기까지 딱11년 걸렸다. 그러나 면직을 당한 것이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채시장의 움직임, 시중은행, 국책은행, 감독원의 미흡한 점을 경험한 것이 장관직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고비마다 지켜주셨다. 지나고 보니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 나의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작성자  온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