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목사]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마디즘'
책 읽어주는 목사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마디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저 / 웅진닷컴 / 20,000원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집구석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마음만은 여기저기 다니고 싶었는지 책 한 권에 눈길이 갔다. 오늘 소개할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다. 최근 <생명경제로의 전환>이라는 책을 통해 유럽에 한국 문화와 K방역을 극찬한 학자라 더욱 관심이 갔다.
이 책은 600만 년 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대로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를 노마드의 시각으로 풀어낸 거대 보고서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6,000년 정착민의 역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탈리는 그것을 600만 년에 걸친 노마드의 역사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방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자료 처리 능력이 돋보였다. 새로운 관점으로 인류 문화와 역사를 해석하는 것도 놀라웠다. 이 책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중앙아시아의 여러 부족의 역사가 나온다. 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의 이동역사, 몽골제국의 역사, 제국주의, 산업혁명, 1, 2차 세계 대전과 미국의 패권주의,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조망했다.
원래 ‘노마드’라는 말은 라틴어로 유목민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처음 사용해서 철학적으로 사용되긴 했으나 최근까지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목초지를 찾아다니면서 이동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 이 말이 ‘디지탈 노마드’라고 해서 각종 디지털 기기를 들고 다니면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유행어가 되었다. 제한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다시 말해 아탈리가 분석한 대로 이 시대는 노마드로 회귀해 가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대표적인 노마드는 몽골족이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 평지를 지배했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말을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국가를 정복하고, 한번 점령하면 잔인하게 약탈하고 살육함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들의 이동으로 민족이 통합되고, 국가들이 탄생했으며, 상업과 문명이 발전했다. 아마 모든 왕들이 몽골족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정복 정신을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와 상반된 또 다른 노마드가 있었다. 유대민족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망한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어느 때이건 노마드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어떤 국가에서도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았으며, 영토를 정복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 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터전에서 신앙과 문화를 지키고, 공동체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교역이나 교환업에 종사했다. 추방당해 도피할 때만 이동했다. 그들은 성경을 소유하고, 안식일을 지켰으며, 공동체 안에서 예배하는 그들만의 ‘노마디즘’을 익혔다.
전자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의 노마디즘이라 할 수 있다. 물질을 탐하고 눈에 보이는 나라를 건설하며 땅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달려나갔다. 미지에 대한 탐구 정신이 정복과 약탈로 이어졌다. 그러나 재물을 축적하고 정착과 번영을 추구하면서부터 노마디즘의 본질을 상실하고 역사 속에서 차츰 세력을 잃어갔다.
후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안주가 아니라 약속받은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갔다. 그들에게 노마디즘은 이 땅에서의 정착을 향한 세속적인 노력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접근하는 유일한 생활방식이었다. 그들은 정복하지 않고 스며들었다. 여행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따랐다. 떠남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는 너그러운 노마드로서의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노마디즘에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노마디즘을 추구해야 하는가? 자유분방한 변화를 추구하며 적당히 돌아다니다 안착하며 영리추구가 목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약속을 붙들고 포기와 떠남을 통해 은혜를 얻는 영적 노마디즘을 살아갈 것인가?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마디즘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 허원희 목사(온누리교회 남양주 캠퍼스)
이 책은 600만 년 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시대로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를 노마드의 시각으로 풀어낸 거대 보고서다. 우리는 인류 역사를 6,000년 정착민의 역사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탈리는 그것을 600만 년에 걸친 노마드의 역사로 풀어내고 있다. 그의 방대한 스케일과 엄청난 자료 처리 능력이 돋보였다. 새로운 관점으로 인류 문화와 역사를 해석하는 것도 놀라웠다. 이 책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중앙아시아의 여러 부족의 역사가 나온다. 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의 이동역사, 몽골제국의 역사, 제국주의, 산업혁명, 1, 2차 세계 대전과 미국의 패권주의,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조망했다.
원래 ‘노마드’라는 말은 라틴어로 유목민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처음 사용해서 철학적으로 사용되긴 했으나 최근까지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목초지를 찾아다니면서 이동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 이 말이 ‘디지탈 노마드’라고 해서 각종 디지털 기기를 들고 다니면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유행어가 되었다. 제한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다시 말해 아탈리가 분석한 대로 이 시대는 노마드로 회귀해 가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대표적인 노마드는 몽골족이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 평지를 지배했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말을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국가를 정복하고, 한번 점령하면 잔인하게 약탈하고 살육함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들의 이동으로 민족이 통합되고, 국가들이 탄생했으며, 상업과 문명이 발전했다. 아마 모든 왕들이 몽골족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정복 정신을 본받고 싶었을 것이다.
이와 상반된 또 다른 노마드가 있었다. 유대민족이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망한 이후 전 세계로 흩어져 어느 때이건 노마드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어떤 국가에서도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았으며, 영토를 정복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 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터전에서 신앙과 문화를 지키고, 공동체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교역이나 교환업에 종사했다. 추방당해 도피할 때만 이동했다. 그들은 성경을 소유하고, 안식일을 지켰으며, 공동체 안에서 예배하는 그들만의 ‘노마디즘’을 익혔다.
전자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의 노마디즘이라 할 수 있다. 물질을 탐하고 눈에 보이는 나라를 건설하며 땅에 대한 끝없는 욕심으로 달려나갔다. 미지에 대한 탐구 정신이 정복과 약탈로 이어졌다. 그러나 재물을 축적하고 정착과 번영을 추구하면서부터 노마디즘의 본질을 상실하고 역사 속에서 차츰 세력을 잃어갔다.
후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의 안주가 아니라 약속받은 미래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갔다. 그들에게 노마디즘은 이 땅에서의 정착을 향한 세속적인 노력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접근하는 유일한 생활방식이었다. 그들은 정복하지 않고 스며들었다. 여행이 아니라 순례의 길을 따랐다. 떠남을 통해 새로운 것을 얻는 너그러운 노마드로서의 삶을 살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빠르게 노마디즘에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 노마디즘을 추구해야 하는가? 자유분방한 변화를 추구하며 적당히 돌아다니다 안착하며 영리추구가 목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약속을 붙들고 포기와 떠남을 통해 은혜를 얻는 영적 노마디즘을 살아갈 것인가? 책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노마디즘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 허원희 목사(온누리교회 남양주 캠퍼스)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