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창조세계관의 정의와 역할

 
 창조세계관과 우리의 삶  
 
세계관은 보통 ‘관점’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관점을 기독교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창조세계관’이라는 표현을 새롭게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을 거부하는 다양한 사상 중에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그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진화론적 세계관이 뿌리 깊게 우리와 다음세대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과학인 진화론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혼란이 기독교인 중에서도 상당수 있어서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강조하는 창조세계관이 매우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둘째, 창조를 강조함으로써 생각을 넘어서 삶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행위가 말씀으로 이뤄진 것처럼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표현된 말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창조는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창조세계관’은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초월적으로 시간, 공간, 물질, 생명,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창세기 말씀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까? 첫째,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분이다. 만약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삶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창조주이며 나의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출이집트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의 삶에서 그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앞으로도 나의 삶에 개입하실 것을 기대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께서 ‘질서’를 창조하시고, 그 질서를 지금도 유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과학적 질서는 물론 정신세계, 사회에서의 질서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이 질서는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해당한다. 누구도 하나님의 창조질서 밖에서 살 수 없고, 그렇게 산다면 그것이 바로 죄이다. 부부관계와 가정의 질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사회질서 등이 모두 하나님의 질서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이 질서가 무너지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창조질서를 지키고, 그 질서를 지킴으로 따르는 선하고 풍성한 열매를 보여야 한다. 
셋째, 한 명, 한 명이 너무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야 할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치가 바로 예수님의 생명 값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차별받을 수 없고, 학대받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생각이 지금 시대에 보편화 되어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아직도 학대와 차별이 끊이지 않고 있어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이 더 요구되고 있다. 
넷째,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창조계획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정체성이다.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예수님과 같은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님처럼 창조목적을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참된 정체성을 보여주면서 살아야 하는 책임과 능력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창조세계관은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가정, 일터, 윤리와 도덕, 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 등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영역이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모든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부터 예배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도록 해야 한다. 창조세계관의 어떤 부분도 쉬운 것이 없다.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창조질서를 지키며, 내가 먼저 예수님을 따르는 모범이 되어서 삶으로 창조신앙을 보여주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창조세계관을 가지면 삶의 목표가 위로 향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무능력과 죄악을 고백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될 것이다. 
/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 의과대학)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