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책 읽어주는 목사] 하나님의 귓속말

책 읽어주는 목사
 
하나님의 귓속말
<황제의 칙명>
프란츠 카프카 저 / 현대문학 / 19,000원
 
<변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 <황제의 칙명>이라는 소설이 있다. 분량은 적지만 크리스천에게 주는 의미가 커서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임종을 앞둔 어느 황제가 있었다. 그는 아주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는 신하를 불러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였고, 그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귀에 들은 내용을 반복하게 한 다음 멀리 떠나보냈다. 칙사가 된 신하는 곧바로 길을 떠났지만 여러 난관에 부딪힌다. 일단 그를 저지하는 수많은 사람을 뚫고 나가야 했다. 자기의 길을 막는 사람들에게 통행증을 뜻하는 가슴에 달린 표를 보여주면서 헤치고 나아갔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황제가 있는 곳은 구중궁궐로 방을 지나면 또 방이 나오고, 수많은 계단과 뜰을 지나도 여전히 궁궐 안이다. 칙사는 미로 같은 궁궐을 헤매면서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카프카는 “그 궁궐을 빠져나가려면 수천 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칙사가 궁궐의 가장 바깥쪽 성문을 나간다 해도 황제가 거하는 수도가 그 앞에 펼쳐질 뿐이지 그는 결코 바깥으로 뚫고 나가지 못한다. 소설은 칙사가 궁궐 안을 계속 방황하는 것을 묘사하면서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그대는 저녁이 오면, 그대의 창가에 앉아 그 칙령이 오기를 꿈꾼다…” 
무슨 뜻일까? 황제의 전갈을 가진 칙사가 궁궐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왜 그에게 황제는 귓속말을 속삭였고, 그 내용이 무엇일까? 
이 짧은 소설을 영적으로 해석한 이가 있다. 소설가 이승우 교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속언어로 전하는 사명을 가진 몇 안 되는 소설가이다. 그의 해석에 의하면 황제의 귓속말은 신하를 예속시키고, 황제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다. 귓속말로 전했다는 것은 그것이 매우 은밀한 것이고, 들은 내용을 다시 반복 확인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갈임을 알려 준다. 곧바로 내보냈다는 것은 시급성을 나타내고, 성 밖 사람들의 운명과 연결된 것임이 틀림없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 카프카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독자의 상상력에 의하면 그것은 복음일 수밖에 없다. 왜소하고 초라한 신하에게 귓속말했다는 것도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고, 귓속말로 전했다는 것은 호렙산에서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지 않고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신 엘리야의 하나님을 연상하게 한다. 
귓속말이란 깊은 관계가 있는 사람들끼리 하는 것이다. 친하지 않더라도 귓속말을 듣게 되면 친분이 생기고, 그 내용을 깊이 간직하게 된다. 한 사람을 충성스러운 사신을 만드는 것은 황제의 귓속말이었다. 하나님은 왜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실까? 온 세상을 호령하며 쩌렁쩌렁 모두 들을 수 있게 선포하실 수 있는 분이지만, 개인에게 귓속말과 같이 은밀하고 친밀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인격적이시고, 자발적 순종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승우 교수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황제의 귓속말을 듣지 못한 채 명령을 전달해야 하는 사신의 비참함을 언급한다. 
“은밀한 관계없이, 그들만의 교감과 사적 비밀 없이, 그저 사무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적으로 들음 없이, 큐티를 통한 매일 매일의 영적 인도함 없이 그저 사명에 따라 사역하는 사역자들의 피곤함과 비참함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이 많고 어려워서 힘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귓속말을 듣지 못했기에 힘든 것이다. 사역의 결과보다 과정 중에 경험하는 영적 체험과 기도응답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복음은 원래 영원에 속하는 하늘 궁궐의 언어이다. 영원에 속하는 궁궐의 언어를 궁궐 밖으로, 그것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세속언어로 전하려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카프카는 그 모든 어려움을 구중궁궐을 빠져나기가 불가능하고, 나가려면 천년이 걸린다는 은유로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이 무엇인가? 황제의 전갈이 궁궐을 빠져나갈 수 없음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저녁마다 그대의 창가에서 그 칙령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황제의 칙령을 받은 사신은 그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사신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궁궐 밖을 나가 황제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유일한 원동력은 황제의 귓속말이다. 가슴속 깊이 새겨놓아 전하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친밀하고 세미한 음성이다. 오늘도 힘들게 사역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귓속말을 듣고자 한다. 아침마다 세미하게 들려오는 은밀한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다.
/ 허원희 목사(남양주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