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자폐증 낙인의 심리학

전문가 기고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자폐증 낙인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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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채널 ‘ENA’에서 방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인기몰이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우영우는 자폐 스펙스럼을 가진 새내기 변호사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사는 데 익숙합니다.”
드라마 속 우영우의 이 말처럼 자폐인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산다. 교류의 핵심인 타인과 눈 맞춤도 없고, 혼자 지내려고 한다. 사람보다는 사물에 더 관심이 많다. 자폐인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과 의도가 있는지 헤아리는 데 관심이 없다. 우영우도 대화 중이나 법정에서 변론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않는다. 눈을 내리깔고 이야기한다. 
의사소통의 기본인 언어에도 장애가 있다. 말을 하는 목적도 타인과의 교류보다 자신의 요구 표현인 경우가 많다. 언어능력이 있더라도 단조로운 어조, 고음의 소리를 유지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를 자주 쓴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똑같은 것만 고집한다. 우영우가 드라마에서 삼시 세끼를 김밥만 고집하거나 타인이 관심을 가지건 말건 일방적으로 ‘고래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배우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말아톤’(2005년)에서 주인공 윤초원에게 꽂힌 대상은 ‘얼룩말’이다. 
자폐인은 대개 지능장애를 갖고 있다. 대략 자폐인의 70~85%가 지적장애를 동반한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한 암기나 계산, 음악, 미술 등 특정한 영역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폐 성향을 지녔지만, 지적인 능력과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경우를 ‘고기능 자폐장애’라고 부른다. 우영우가 ‘고기능 자폐장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자폐인들의 예후는 좋지 않다.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경우는 1~2% 정도에 불과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왜 이리 인기가 있었을까? 배우 박은빈을 비롯한 출연진의 연기가 뛰어나서일까?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 드라마가 사람들이 자폐에 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 일반적인 자폐인과는 다르다. 그녀는 사회적인 교류의 방식이나 내용이 다소 어색하고 서툴기는 하지만, 자폐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인 변호사로서 성공적으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우영우의 모습은 자신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성장해나가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자폐인이 저렇게 능력이 있고, 게다가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겸비하다니…’ 
아마 시청자들의 속내는 이랬을 것이다. 
 
자폐증에 대한 낙인 대신 
따뜻한 시선과 긍휼한 마음으로
 
과연 그뿐일까? 고기능 자폐장애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시청자들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대다수 자폐인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이루 말하기 어렵다. 그들이 갖는 수치심이나 고립감은 다른 장애인들이 받는 차별 반응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자폐인들은 어릴 때부터 조롱과 멸시, 따돌림을 겪는다. 이러한 현상을 ‘자폐증 낙인(autism stigma)’이라고 한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폐 아동들의 75%가 또래 집단의 활동에서 소외되고, 13%가 따돌림을 당하며, 37%가 조롱을 받는다고 한다. 물론 자폐인의 특성에 따른 파괴적이거나 반사회적 행동, 예컨대 머리를 벽에 부딪치거나 살갗을 할퀴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등의 행동이 이런 반응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측면에서 역설적으로 드라마 속 우영우는 ‘이상한 변호사’가 맞다. 
드라마가 판타지 같다는 소리도 있다. 
“우영우의 성공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폐인에 대한 감정이입과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힐링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영우와 같은 고기능 자폐인들뿐만 아니라 영화 ‘말아톤’의 윤초원과 같은 대다수 자폐인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과 긍휼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모자란 게 아니라 다를 뿐!
 
구약 요나서에 등장하는 고래는 죽음과 고난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인 선지자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고난을 상징하고, 나오는 것은 부활을 상징한다. 반면 우영우가 좋아하는 고래는 바다의 상징이다. 드넓은 대양을 유영하는 고래는 창의성의 자유로운 사용을 상징한다. 윤초원이 좋아하는 얼룩말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내달리는 자유의 상징이다. 초원을 떠난 얼룩말, 바다를 떠난 고래는 상상하기도 싫다. 
우리가 한 명의 우영우에 대한 찬사를 아낄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99명의 윤초원에 대한 관심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영우가 대양을 가르는 고래처럼 창의성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윤초원이 초원을 내달리는 자유를 구가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폐인도 다른 장애와 마찬가지로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다를 뿐(different, not less)’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인식은 기독교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교류에서도 마찬가지로 요구된다. 장애를 개인의 비극이나 죄의 결과로 보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가진 크리스천은 없으리라 믿는다. 장애인을 사회적인 약자로서 교회 차원에서 돌봐야 할 대상 정도로만 인식하거나,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허심(虛心)하게 돌아볼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또한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모든 것 위에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여호와께서는 모두에게 선하십니다. 그분이 지으신 모든 것에 자비를 베푸십니다”(시 145:9). 
장애인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우리와 완전히 동격의 사람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출 4:11). 
이 드라마 마지막회에서 우영우가 이렇게 말한다. 
“길 잃은 외뿔고래가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고래 무리에 속해 살아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외뿔고래와 같습니다.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가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렇다. 윤초원이나 우영우의 인생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이다. 우리 인생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인생이란 점에서 똑같은 인생이다.
/ 김진국 집사(한강공동체,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
<발문>
장애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우리와 완전히 동격의 사람이다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이다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인생이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