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강영재 장로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산당이 좋은 곳인가요 나쁜 곳인가요?"

강영재 장로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산당이 좋은 곳인가요 나쁜 곳인가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산당과 이방신을 섬기는기기 위한 산당
 
성경을 읽으며 같은 듯 다른 단어를 만나게 된다. 그 단어를 살펴보며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가령 “그러나 산당은 없애지 않아 백성들은 여전히 여러 산당에서 제사 드리고 분향했습니다”(왕하 14:4)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올 때 산당은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곳 같은데, 선지자 사무엘과 솔로몬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것을 보면 이방신 섬기는 곳이 아닌 곳으로 보인다. 동일한 산당이라는 단어로 다른 성격의 장소가 기술되어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개정개역이나 우리말성경 구약성경에는 ‘산당’이라는 단어가 77회 나오는데 이 중에서 59회가 사무엘상부터 역대하까지 역사서에 집중해서 나온다. 산당(high place)은 높은 산에 설치한 제단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제단과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이 있는 곳으로 아래 4가지 정도로 구분된다. 사무엘 때의 라마 산당과 솔로몬 성전 건축 전의 기브온 산당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곳이었으나 나머지 산당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되는 제사와 이방신을 섬기기 위한 산당이었다. 
 
사울과 사무엘이 만나는 장면의 산당
 
사무엘상 7장 17절에서 사울과 사무엘이 만나는 장면의 산당은 사무엘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 산당은 라마에 있었을 가능성 있다. 그리고 9장과 10장에서 이 산당이 계속 등장한다(삼상 9:12, 13, 14, 19, 25, 10:5, 13).  
“그리고 언제나 자기 집이 있는 라마로 돌아와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그곳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쌓았습니다”(삼상 7:17).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이 당신들보다 앞서가셨으니 서둘러 가 보세요. 오늘 산당에서 백성들의 제사가 있어서 지금 성에 도착하셨습니다’”(삼상 9:12).
다윗이 다스리던 성전 건축 전에는 여호와의 장막(성막)을 기브온 산당에 두고 율법에 따라 번제를 드렸다(대상 16:39~40, 21:29).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그 형제 제사장들을 기브온의 높은 곳에 있는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여호와의 율법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번제단에 번제를 드리게 했습니다”(대상 16:39-40).
솔로몬도 왕이 된 직후 일천번제를 기브온 산당에서 드렸는데 성경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는 일이 약간 부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왕상 3:2~4, 대하 1:3, 13).
“그때 백성들은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성전이 그때까지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고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살긴 했지만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는 일은 계속했습니다. 왕은 제물을 드리러 기브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큰 산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그 제단에서 1,000마리 짐승을 번제물로 드렸습니다”(왕상 3:2~4).
 
북 이스라엘에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세운 산당
 
솔로몬이 죽은 뒤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남유다에 위치한 예루살렘 성전 제사로 인한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해 벧엘과 단에 산당을 세웠다(왕상 12:27~29). 이 산당은 하나님께 제사는 드리되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자신의 선조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낸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했다(왕상 12:31~2, 13:32~3).
“‘이 백성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면 이 백성들의 마음이 그들의 주인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게 분명하다.’ 그리하여 여로보암 왕은 조언을 구한 뒤에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고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너희에게 큰일이다. 이스라엘아, 여기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너희 신들이 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왕상 12:27~29).
여로보암은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사람들을 제사장들로 세웠습니다. 그는 유다의 명절처럼 여덟째 달 15일을 명절로 정하고 제단에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그는 벧엘에서 자기가 만든 금송아지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쳤습니다. 또한 벧엘에서 자기가 만든 산당에 제사장들을 두었습니다(왕상 12:31~32).
 
남 유다에 세운 
예루살렘 성전 이외의 산당들
 
히스기야 당시 솔로몬이 세운 예루살렘 성전 외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이 존재했으나 히스기야가 제거했다(대하 32: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대하 32:12).
므낫세가 히스기야가 허문 산당들을 다시 세웠으나(대하 33:3~5) 회개 이후 이방신 섬기는 산당은 모두 제거했고, 하나님을 섬기는 산당은 그대로 두었다(대하 33:15~17).
“므낫세는 자기 아버지 히스기야가 무너뜨린 산당들을 다시 지었고 또 바알의 제단을 세웠으며 아세라 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늘의 별들을 경배하고 섬겼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겠다’라고 말씀하신 그 여호와의 성전에 우상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안팎의 뜰에 하늘의 모든 별들을 위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대하 33:3~5).
“그는 이방 신들을 없애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자기가 성전 산과 예루살렘에 지어 놓은 모든 제단들을 비롯한 우상들을 없앴습니다. 므낫세는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그 위에 화목제물과 감사제물을 드렸으며 유다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리되 계속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대하 33:15~17).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
 
민수기,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하에 나오는 나머지 대부분의 산당은 가나안의 이방신들인 바알, 그모스, 아스다롯, 밀곰과 아세라를 섬기기 위한 산당들이다(민 22:41, 33:52, 왕상 11:7, 14:23, 15:14, 22:43, 왕하 12:3, 14:4, 15:4, 35, 16:4, 17:9, 11, 29, 32, 18:4, 22, 21:3, 23:5, 8, 9, 13, 15, 19, 20, 대하 11:15, 14:3, 5, 15:17, 17:6, 20:33, 21:11, 28:4, 25, 31:1, 33:3, 19, 34:3).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왕상 11:7).
시편,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미가에도 산당이 나오는데 대부분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이지만 일부 드물게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도 있어 앞뒤 문맥을 살펴 이해하면 된다 (시 78:58, 사 15:2, 16:12, 렘 17:3, 19:5, 26:18, 32:35, 48:35, 겔 6:3, 6:6, 16:16, 20:29, 호 10:8, 암 7:9, 미 1:5). 
지금까지 내용을 종합해보면 가나안 정착 이후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건축되기 전까지의 산당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한 산당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분열 이후 산당들은 일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장소와 방법이 아닌 제사나 이방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한 산당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 받으신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나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만들어드릴 수 없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하나님만 모시는 마음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며 기뻐하시지만, 하나님 외에 돈, 명예, 쾌락 등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게 되면 더는 그 마음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성경에 나온 산당이 좋은 곳인지 나쁜 곳인지 판별하기 전에 그곳이 하나님을 모시는 곳인지 아니면 이방신에게 제사 드리기 위한 곳인지를 살펴야 한다.
/ 강영재 장로(양천공동체, 전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교수)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