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신앙에세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신앙생활을 한 지 어느덧 24년이 되었다. 지난 24년 동안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늘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승리하는 제자의 삶을 살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싶었는데 번번이 실패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시간이 참 많았다.
“나는 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할까?”
“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
어느 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말씀을 통해서 나의 신앙생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나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것에는 힘을 썼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간과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전제조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는 심리학적 용어로는 ‘거짓자아’, 성경적 용어는 ‘겉사람’이다. 인간은 육신을 가진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타락하기 이전에 인간의 혼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존재 목적과 소명 등 모든 것을 알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살았다. 그런데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의식할 수 없게 됐다.
타락한 인간의 혼은 외부의 환경과 자신의 경험, 지식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거짓자아’(겉사람)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존재이다. 새로운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를 ‘속사람’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속사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가짜인 겉사람을 부인하고,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 가지 차원의 세계가 있다. 첫째, 영적 세계이다.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말씀의 세계이다. 시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세계이다. 둘째, 실재 세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존 세계 즉, 물리 세계이며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세계이다. 셋째, 인간의 정신세계이다. 개념과 인식의 세계이다.
인간은 동일한 상황에 직면할 때 모두 동일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르게 인식한다. 저마다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자아가 바로 이 영역에 속한다. 영적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영적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세계 즉, 거짓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바로 그때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하면서 겉사람을 부인하고,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매일 훈련했음을 고백했다.
겉사람의 노력으로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겉사람이 깨지고,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바로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최영민 목사(강촌공동체)
“나는 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할까?”
“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
어느 날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말씀을 통해서 나의 신앙생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나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것에는 힘을 썼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간과했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전제조건임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는 심리학적 용어로는 ‘거짓자아’, 성경적 용어는 ‘겉사람’이다. 인간은 육신을 가진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다. 타락하기 이전에 인간의 혼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아 자신의 존재 목적과 소명 등 모든 것을 알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살았다. 그런데 죄를 짓고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의식할 수 없게 됐다.
타락한 인간의 혼은 외부의 환경과 자신의 경험, 지식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게 된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거짓자아’(겉사람)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옛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존재이다. 새로운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를 ‘속사람’이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속사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가짜인 겉사람을 부인하고,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 가지 차원의 세계가 있다. 첫째, 영적 세계이다.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말씀의 세계이다. 시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세계이다. 둘째, 실재 세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실존 세계 즉, 물리 세계이며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세계이다. 셋째, 인간의 정신세계이다. 개념과 인식의 세계이다.
인간은 동일한 상황에 직면할 때 모두 동일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르게 인식한다. 저마다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자아가 바로 이 영역에 속한다. 영적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영적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세계 즉, 거짓자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바로 그때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훈련해야 하는 영역이다.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하면서 겉사람을 부인하고,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매일 훈련했음을 고백했다.
겉사람의 노력으로 성령 충만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겉사람이 깨지고,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바로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 최영민 목사(강촌공동체)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