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죽음보다 생명이 존귀(尊貴)하다!

전문가 기고
 
죽음보다 생명이 존귀(尊貴)하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어디까지인가?
 
 
최근 대한민국에서 안락사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지난 6월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조력존엄사’ 법안이 있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 중에서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하자는 법안이다. ‘조력존엄사’라고 미화했지만 이미 일부 나라에서 시행하는 안락사인 ‘의사조력자살’이다. 말기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 수단으로 죽음을 사용하겠다는 안락사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안락사의 정의와 구분, 문제점
 
안락사(安樂死)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종결시키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크게 구분하면 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자의적, 비(非)자의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또 외부 행위에 따라 적극적, 소극적 안락사로 나눈다. 의사가 약물을 환자에게 직접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면 적극적 안락사, 생명 유지에 필요한 치료를 중단함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면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환자의 뜻에 반하는 비자의적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 행위이므로 이 글에서 논의할 의미가 없다. 자의적 안락사가 논의의 대상이다. 
임종기 환자가 아닌 식물인간(지속식물상태)이나 중증 치매 환자가 사전에 의사를 밝혔을 경우,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인공영양 및 수분공급을 중단해 사망하게 하는 것을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영국과 독일, 대만이 허용하고 있다.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조력존엄사는 ‘의사조력자살 및 안락사’의 부류로서 적극적 안락사다. 의사가 처방한 독극물을 환자 본인이 투약하면 의사조력자살, 의사가 직접 투약하면 안락사라고 부를 뿐이지 큰 차이가 없다. 주의할 점은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은 소극적 안락사가 아니다. 환자의 사전 지시를 따라 자연사(自然死)를 맞이하는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은 무의미한 의료집착으로 인한 환자의 고통을 줄여 자연사할 때까지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안락사는 무의미한 삶이라고 느끼는 사람의 생명을 단축하는 정반대 행위다.  
안락사는 일단 도입되면 돌이킬 수 없기에 쉽게 제정하면 안 된다. 어느 나라나 안락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하지만 일단 안락사가 허용되고 나면 기준이 무너지는 것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2001년부터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한 네덜란드가 그 대표적인 예다. 
네덜란드는 2018년 말기 환자가 아닌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의사조력자살을 허락했고, 2020년에는 중증 치매 환자에게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 본인이 희망했다고 보기 어려운 신생아부터 12세 미만 불치병 어린이에게까지 안락사를 허용했다. 아무리 엄격하게 시작했어도 안락사를 한번 허용하면 점차 더 많은 사람을 안락사 대상으로 삼게 된다.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의 실례가 되었다.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조력존엄사법의 설문 조사는 국민에게 압도적인 찬성을 받아냈다. 그 이유는 긍정적인 답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설문 조사 질문이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자는 입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존엄한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인간의 본성에 언제나 부합한다. 만일 “당신이나 가족이 말기 환자가 되었을 때 통증이 심하면 자살을 고려하겠는가?”라고 물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안락사를 논하면서 ‘존엄사’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된다. 
존엄사는 개념이 통일되지 않아서 사람마다 다른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을 때 여러 언론이 존엄사법이 시행되었다고 보도했다. 연명치료 없이 자연사하는 것이 존엄하다는 의미였다. 반면 안락사를 존엄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1997년 미국 오리건주의 안락사 법안 이름인 ‘Death with Dignity Act’를 그대로 존엄(dignity)이라 해석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존엄사는 사망하는 사람의 존엄성 확보를 목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는 용어’라고만 정의함으로써 연명치료 중단이나 안락사와 구별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라고 표현하는 것은 국민에게 큰 혼란을 일으키므로 공식적 용어로 사용하면 안 된다. 
죽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법안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연명의료결정법이다. 말기 환자에게만 국한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기까지 허용한다. 둘째, 말기가 아닌 환자까지 그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다. 2000년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대만은 9년 만에 환자자주권리법(病人自主權利法)을 시행하며 그 대상의 범위를 비가역적 혼수상태나 지속식물상태, 중증 치매로 확대했다. 셋째, 의사조력자살 및 안락사의 법제화다.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까지 적극적 안락사를 시행하는 것이다. 2021년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의사조력자살과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2003년에는 벨기에가, 2016년에는 캐나다가 이를 허용했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고, 현재 15개 주가 안락사 허용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2017년 빅토리아주에서, 포르투갈에서는 2020년에, 스페인에서는 2021년에, 콜롬비아에서는 2022년에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이름으로 급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고 있다. 
조력존엄사법안에 대해 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우려와 함께 반대 의견을 쏟아냈다. 이미 의사조력자살 및 안락사법을 통과한 나라에서 일반인의 자살률이 증가한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되었다. OECD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 의사조력자살의 입법은 자살을 조장하는 입법이라는 비판이다. 의사협회는 의사조력자살로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만일 법안이 마련된다면 의대생들에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은 선행(善行)이므로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의대에서 죽이는 법을 익혔고, 이 정도면 안락사의 적응증(indication)이 된다고 배운 의사는 지금의 의사들보다 생명을 쉽게 놓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는 해외 의사들은 인터뷰에서 “처음 하는 안락사가 어렵지, 점차 죄책감 없이 시행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국, 안락사 법안은 환자의 고통을 줄여준다는 선한 명제로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위험한 법이다. 
현실적으로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병원비 부담 때문에 안락사를 택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초고령화 시대에는 더 그럴 것이다. ‘간병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독박 간병’, ‘간병 파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환자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특히 호스피스 돌봄(care)에 합당한 의료수가를 책정해 죽기 직전 연명치료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돈과 고통을 줄이고, 그 비용을 영적·심리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호스피스에 사용한다면 국민의 죽음은 한결 존귀해질 것이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죽음은 극복하고 싸우는 대상이 아니다.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일부다. 이 가치를 가지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까지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전부다. 내 뜻대로 주어지지 않은 생명을 내 마음대로 종결하겠다는 자의적 안락사는 자살과 마찬가지여서 자기결정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다. 자살과 같이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을 위반하는 행위는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고통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가 놓지 말아야 할 전제는 ‘죽음보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죽는 것이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생명은 자기결정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쉽게 밀려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기억할 것은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영적인 존재로 지으셨다. 아무리 식물인간, 중증 치매 상태여서 대화가 안 돼도 영혼은 살아서 듣고 있다.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어 약속대로 천국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 성도들에게 맡겨진 영적 돌봄이다. 세상이 보기에는 차라리 안락사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은 육신도 그 영혼을 거두시지 않는 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영혼은 아직 이 땅에 사명이 남았기에 남겨두셨을 것이고, 불신자들의 영혼은 복음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 주고 계실 것이다.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죽음의 시간을 하나님 결정에 맡기는 것이다. 그 시간까지 인내하며 살아내고, 생명을 지켜주며, 불신자의 영혼에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자기결정권을 누리는 것이다.  
/ 문지호 집사(한강공동체, 명이비인후과 원장, 의료윤리연구회 회장)
<발문>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죽음의 시간을 
하나님 결정에 맡기는 것이다. 
그 시간까지 인내하며 살아내고, 생명을 지켜주며, 
불신자의 영혼에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자기결정권을 누리는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