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의로운 민족
신앙에세이
의로운 민족
최근에 ‘영웅’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안중근 의사(義士)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내용으로 의(義)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노라며 약지 손가락을 흰 눈 위에서 절단하는 장면이 단연코 압권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에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한 사람을 죽이려는 계획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독립군의 장수로서 조국을 쳐들어온 적장을 처단하는 당위성으로 그 죄책감을 이겨낸다.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조국이 위기에 처하거든 목숨을 바쳐야 한다”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그는 도망치지 않고 떳떳이 재판을 받으면서 일본 군정에 대한독립의 의지를 밝힌다. 그의 어머니는 편지에 “나라를 위한 일이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며 수의까지 보낸다. 안중근 의사도 그렇지만 어머니의 결연한 태도가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그는 참으로 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해 나라를 지켜낸 의인이다.
안중근 의사의 삶이 단지 독립투사로서만이 아닌 의를 추구하는 의인으로 숭고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역사를 연구한 오드 베스타 교수는 최근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라는 저서에서 중국이라는 거대제국 옆에 붙어있는 약소국가가 600년 동안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았던 저력이 무엇인지 밝혀낸다. 그것은 한국인이 의를 추구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은 유교, 즉 성리학을 기초로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의를 숭상했다. 유교적인 의란 도덕심, 충성심, 원리에 대한 성실함을 뜻한다. 이 의로움은 대외적인 침략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발동되었다. 우리 민족은 외적과 싸우는 백성들의 군대를 ‘의병’이라 불렀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군과의 싸움을 단순한 적과의 전쟁이 아닌 ‘의와 불의간의 투쟁’이라 본 것처럼 한국인은 의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왜군이 조선을 침공했을 때 선조가 한성을 비우고 도망간 것을 보고 이미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우리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해서 싸웠다. 왜군은 성을 빼앗기고 왕이 도망가면 전쟁이 끝나는데, 조선의 백성들은 왕이 없어도 나라를 위해 싸우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왕과 별개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의의 개념이 투철했다. 이러한 의에 대한 신념이 일본제국에 의해 35년 동안 식민지배를 당할 때 불의에 끝까지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했다. 8.15 해방 이후 곧바로 독립 국가의 기틀을 잡을 수 있게 했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구한말 복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서 성경까지 번역했다. 초창기 조선의 복음화는 선교사들의 노력보다 우리 민족의 자발적 필요로 진행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복음 수용력이 강했다. 의를 숭상하는 민족이니 노력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의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복음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의에 갈급한 영혼들에게 최고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결국 한민족은 의를 추구해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부어지는 은혜로 의로운 백성이 되었다. 일제 치하의 불의를 믿음으로 이겨냈고, 그 이후 공산정권의 불의함에도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은 어떤 불의한 상황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외부적인 침략보다 강력한 세속적이고 반기독교적인 불의의 요소를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 허원희 목사(남양주온누리교회)
최근에 ‘영웅’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안중근 의사(義士)의 마지막 1년을 담은 내용으로 의(義)가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노라며 약지 손가락을 흰 눈 위에서 절단하는 장면이 단연코 압권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중에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를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한 사람을 죽이려는 계획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전쟁에 참여하는 독립군의 장수로서 조국을 쳐들어온 적장을 처단하는 당위성으로 그 죄책감을 이겨낸다.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조국이 위기에 처하거든 목숨을 바쳐야 한다”며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그는 도망치지 않고 떳떳이 재판을 받으면서 일본 군정에 대한독립의 의지를 밝힌다. 그의 어머니는 편지에 “나라를 위한 일이니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며 수의까지 보낸다. 안중근 의사도 그렇지만 어머니의 결연한 태도가 모두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그는 참으로 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해 나라를 지켜낸 의인이다.
안중근 의사의 삶이 단지 독립투사로서만이 아닌 의를 추구하는 의인으로 숭고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버드와 예일대에서 역사를 연구한 오드 베스타 교수는 최근 <제국과 의로운 민족>이라는 저서에서 중국이라는 거대제국 옆에 붙어있는 약소국가가 600년 동안 한 번도 점령당하지 않았던 저력이 무엇인지 밝혀낸다. 그것은 한국인이 의를 추구하는 민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은 유교, 즉 성리학을 기초로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의를 숭상했다. 유교적인 의란 도덕심, 충성심, 원리에 대한 성실함을 뜻한다. 이 의로움은 대외적인 침략을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발동되었다. 우리 민족은 외적과 싸우는 백성들의 군대를 ‘의병’이라 불렀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군과의 싸움을 단순한 적과의 전쟁이 아닌 ‘의와 불의간의 투쟁’이라 본 것처럼 한국인은 의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왜군이 조선을 침공했을 때 선조가 한성을 비우고 도망간 것을 보고 이미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우리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해서 싸웠다. 왜군은 성을 빼앗기고 왕이 도망가면 전쟁이 끝나는데, 조선의 백성들은 왕이 없어도 나라를 위해 싸우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왕과 별개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의의 개념이 투철했다. 이러한 의에 대한 신념이 일본제국에 의해 35년 동안 식민지배를 당할 때 불의에 끝까지 항거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했다. 8.15 해방 이후 곧바로 독립 국가의 기틀을 잡을 수 있게 했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구한말 복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서 성경까지 번역했다. 초창기 조선의 복음화는 선교사들의 노력보다 우리 민족의 자발적 필요로 진행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복음 수용력이 강했다. 의를 숭상하는 민족이니 노력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의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복음은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의에 갈급한 영혼들에게 최고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결국 한민족은 의를 추구해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부어지는 은혜로 의로운 백성이 되었다. 일제 치하의 불의를 믿음으로 이겨냈고, 그 이후 공산정권의 불의함에도 신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은 어떤 불의한 상황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외부적인 침략보다 강력한 세속적이고 반기독교적인 불의의 요소를 어떻게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 허원희 목사(남양주온누리교회)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