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책임감의 미학(美學)
전문가 기고
책임감의 미학(美學)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라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초중고 시절 생활기록부를 보면 담임 선생님의 평가란에 자주 올라오는 단어 중 하나가 ‘책임감’이었다. 당시 사회적 통념으로 학생이 성적이나 교우 관계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책임감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 모든 약점을 만회할 수 있는 장점으로 부각 되었고, 미래의 길이 열리는 아이콘이었다.
‘책임감’의 엄청난 힘
대한민국에서 책임감은 국가나 일터, 가정, 교회에서 충성심으로 발현되었다. 기성세대에서는 아버지가 한 직장에서 평생 충성스럽게 재직하고 정년퇴임을 하는 게 가문의 자랑이었다. 어머니들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배우자의 외도, 가정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고, 자녀들을 교육한 책임감의 여전사들이었다.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이 지구촌에서 핵심 국가로 부상하게 된 동력은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의 책임감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OECD 국가 중에서 부끄러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살률, 이혼률, 노인빈곤률, 아동불행지수의 원인을 살펴보면 책임감의 상실과 무관하지 않다.
연로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자녀가 다하지 않을 때 부모는 절망과 외로움으로 정신과 육신이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의 무관심과 무책임은 자녀들이 입시경쟁 스트레스와 학교폭력, 교우 관계,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불안감의 수렁에 빠지게 한다. 부부간에도 책임의식이 희미해지면 여러 이유로 이혼하게 되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가 책임감을 상실하면 부실한 경영으로 회사 매출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복지와 사기가 떨어진다. 곧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직원들도 책임감을 상실해서 회사 기술을 유출하는 최악의 상황이 도미노처럼 일어난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은퇴를 앞두고 있을 때 그 기업에 탁월하고 쟁쟁한 인물이 많아서 과연 누가 후계자가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카네기는 놀랍게도 찰스 쉬브(Charles Schwab)를 지목했다. 그는 청소부로 입사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중졸 출신이었기에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카네기는 “좋은 대학을 나온 유능한 사람은 많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며 그를 후계자로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수십 년 전, 공장을 둘러보던 카네기가 한 철공 곁을 지나게 되었다. 대부분 일하다가 고개를 돌려 사장한테 인사를 하는데 이 철공은 사장이 곁에 머물러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카네기는 속으로 ‘저런 친구한테 공장을 맡기면 책임감 있게 운영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공장 관리자를 권유했다. 그런데 그는 “사장님, 저는 다른 일은 못 합니다. 평생 해 본 일이라고는 쇳물에서 철관을 뽑는 일밖에 없습니다. 지금 일을 계속하도록 해주십시오”라며 거절했다. 승진 기회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함과 근면한 태도를 눈여겨본 카네기는 훗날 그를 비서실장으로 임용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청지기 같은 그의 책임감을 보았고 결국 그에게 회사를 맡기기로 했다.
나라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의 희생정신이다. 1597년 임진왜란 발생 이후 6년 동안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며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에게 돌아온 것은 주변의 시기심으로 인한 누명과 파면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은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처하자 옥살이하던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탁상공론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조정 대신들과 무능한 임금을 향해 원망과 불만을 쏟아내며 목숨을 담보로 하는 최악의 전쟁에 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에게 남은 것은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12척의 배뿐이었다.
1,500만 관객동원 영화 ‘명량’에서도 묘사되었듯이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였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했을 때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나중에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김억추의 배 1척이 더해졌지만 멀리 떨어져 관망만 했기에 이순신의 책임감이 사실상 12척의 판옥선으로 적의 133척을 수장시킨 기적 같은 승리를 낳았다.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이 지구촌에서 핵심 국가로 부상하게 된 동력은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의 책임감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OECD 국가 중에서 부끄러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살률, 이혼률, 노인빈곤률, 아동불행지수의 원인을 살펴보면 책임감의 상실과 무관하지 않다.
연로한 부모에 대한 책임을 자녀가 다하지 않을 때 부모는 절망과 외로움으로 정신과 육신이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의 무관심과 무책임은 자녀들이 입시경쟁 스트레스와 학교폭력, 교우 관계, 불확실한 진로에 대한 불안감의 수렁에 빠지게 한다. 부부간에도 책임의식이 희미해지면 여러 이유로 이혼하게 되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가 책임감을 상실하면 부실한 경영으로 회사 매출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복지와 사기가 떨어진다. 곧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 직원들도 책임감을 상실해서 회사 기술을 유출하는 최악의 상황이 도미노처럼 일어난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은퇴를 앞두고 있을 때 그 기업에 탁월하고 쟁쟁한 인물이 많아서 과연 누가 후계자가 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카네기는 놀랍게도 찰스 쉬브(Charles Schwab)를 지목했다. 그는 청소부로 입사해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중졸 출신이었기에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카네기는 “좋은 대학을 나온 유능한 사람은 많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며 그를 후계자로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수십 년 전, 공장을 둘러보던 카네기가 한 철공 곁을 지나게 되었다. 대부분 일하다가 고개를 돌려 사장한테 인사를 하는데 이 철공은 사장이 곁에 머물러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과 자신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카네기는 속으로 ‘저런 친구한테 공장을 맡기면 책임감 있게 운영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공장 관리자를 권유했다. 그런데 그는 “사장님, 저는 다른 일은 못 합니다. 평생 해 본 일이라고는 쇳물에서 철관을 뽑는 일밖에 없습니다. 지금 일을 계속하도록 해주십시오”라며 거절했다. 승진 기회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함과 근면한 태도를 눈여겨본 카네기는 훗날 그를 비서실장으로 임용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청지기 같은 그의 책임감을 보았고 결국 그에게 회사를 맡기기로 했다.
나라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의 희생정신이다. 1597년 임진왜란 발생 이후 6년 동안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며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에게 돌아온 것은 주변의 시기심으로 인한 누명과 파면이었다. 오랜 전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조선은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북상하는 왜군에 의해 국가 존망의 갈림길에 처하자 옥살이하던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탁상공론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조정 대신들과 무능한 임금을 향해 원망과 불만을 쏟아내며 목숨을 담보로 하는 최악의 전쟁에 임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에게 남은 것은 전의를 상실한 병사와 두려움에 가득 찬 백성, 12척의 배뿐이었다.
1,500만 관객동원 영화 ‘명량’에서도 묘사되었듯이 마지막 희망이었던 거북선마저 불타고 잔혹한 성격과 뛰어난 지략을 지닌 용병 구루지마가 왜군 수장으로 나서자 조선은 더욱 술렁였다. 330척에 달하는 왜군의 배가 속속 집결하고,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모두가 패배를 직감했을 때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나중에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김억추의 배 1척이 더해졌지만 멀리 떨어져 관망만 했기에 이순신의 책임감이 사실상 12척의 판옥선으로 적의 133척을 수장시킨 기적 같은 승리를 낳았다.
성경 인물들의 책임감
성경에도 책임감 있는 인물들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 사울 왕이 초심을 떠나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자 하나님은 그를 버리고 새로운 왕을 세우기 원하셨다. 사무엘 선지자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셨다(삼상 16장). 사울의 반발을 우려해 사무엘은 제사를 지내러 왔다고 말하며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청한다.
이새의 아들들을 보며 사무엘은 속으로 엘리압을 기름 부으실 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를 버렸고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셨다. 이새가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지만 여호와께서는 택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은 아직 그 자리에 오지 않은 막내가 양을 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데려오라고 명한다. 그리고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노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아마 평범한 사람 같으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밥 먹고 합시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했을 수도 있다.
사무엘은 불임이었던 어머니(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울며 한 서원기도를 통해서 얻은 아들이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성전으로 보내 엘리 제사장의 손에서 자라게 한다. 그의 부모라고 어찌 어렵게 얻은 늦둥이의 재롱과 성장 과정을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밤에 열이 나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엘리 제사장이 잘 돌봐줄지, 아이가 떼를 쓰면 때리지는 않을지, 영양결핍 없이 잘 먹이고 있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자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성전에서 자란 사무엘은 자신의 스승 엘리가 영적으로 무뎌지고, 자녀교육도 엉망인 환경에서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맑은 영의 선지자로 세워진다. 경건 훈련이 몸에 배어 식탐과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책임감의 선지자로 성장했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도 이스라엘 전통에 따라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개인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젊은 과부 룻을 아내로 받아들였다. 그는 신중하고 배려 깊은 마음으로 결국 메시아의 가문을 이었다.
430년 종살이하던 자기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처음에는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두려움으로 거절했지만, 온갖 고생 끝에 그 임무를 수행해낸다. 끊임없이 배신하고 속을 썩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수천 번 포기하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하려 할 때마다 홍해를 가르고 인도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켜드리며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비록 가나안 입성에는 제외되었지만, 그는 충성심으로 책임을 다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죄를 대신 지게 하심으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새벽부터 감람산에 올라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말씀을 선포하시고(Preaching), 환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Healing), 가르치셨다(Teaching).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처럼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자신을 희생한다. 현대 성도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지고 있다. 삶을 나누고 시간을 드려야 하는 공동체 활동에 속하지 않고 예배만 참석하는 성도들도 늘고 있다. 예배와 봉사의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싶은 자발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교회에서 찬양사역팀(성가대)이 없어지거나 노령화되면서 몇 명의 워십팀으로 대체하는 현상은 2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바쁜 주중에 연습시간을 할애하고, 가족과 동행하고 싶은 주일에도 교회에 일찍 나오고, 예배 후에는 다음 주일 특순을 연습하는 찬양사역팀과 챔버의 헌신은 대단한 것이다. 차세대 교사들, 공동체 리더십들, 주차 안내, 청소 봉사자들, 각 사역팀 책임자들, 교역자들도 존경스럽다. 한 장로님은 본인이 서울에서 경영하던 병원을 여수로 옮겼는데, 순예배에 참석하고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매주 서울로 올라온다고 한다. 지방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한 집사님은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차세대 교사로 섬기고 있다. 그의 입술은 늘 부르터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여성 CEO)
이새의 아들들을 보며 사무엘은 속으로 엘리압을 기름 부으실 자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를 버렸고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셨다. 이새가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했지만 여호와께서는 택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은 아직 그 자리에 오지 않은 막내가 양을 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데려오라고 명한다. 그리고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노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아마 평범한 사람 같으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밥 먹고 합시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했을 수도 있다.
사무엘은 불임이었던 어머니(한나)가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울며 한 서원기도를 통해서 얻은 아들이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성전으로 보내 엘리 제사장의 손에서 자라게 한다. 그의 부모라고 어찌 어렵게 얻은 늦둥이의 재롱과 성장 과정을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밤에 열이 나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엘리 제사장이 잘 돌봐줄지, 아이가 떼를 쓰면 때리지는 않을지, 영양결핍 없이 잘 먹이고 있을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자 약속에 대한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성전에서 자란 사무엘은 자신의 스승 엘리가 영적으로 무뎌지고, 자녀교육도 엉망인 환경에서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맑은 영의 선지자로 세워진다. 경건 훈련이 몸에 배어 식탐과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책임감의 선지자로 성장했다.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도 이스라엘 전통에 따라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개인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젊은 과부 룻을 아내로 받아들였다. 그는 신중하고 배려 깊은 마음으로 결국 메시아의 가문을 이었다.
430년 종살이하던 자기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처음에는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두려움으로 거절했지만, 온갖 고생 끝에 그 임무를 수행해낸다. 끊임없이 배신하고 속을 썩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수천 번 포기하고 싶었겠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하려 할 때마다 홍해를 가르고 인도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시켜드리며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렸다. 비록 가나안 입성에는 제외되었지만, 그는 충성심으로 책임을 다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죄를 대신 지게 하심으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새벽부터 감람산에 올라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말씀을 선포하시고(Preaching), 환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고(Healing), 가르치셨다(Teaching).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처럼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자신을 희생한다. 현대 성도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지고 있다. 삶을 나누고 시간을 드려야 하는 공동체 활동에 속하지 않고 예배만 참석하는 성도들도 늘고 있다. 예배와 봉사의 기쁨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싶은 자발적인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교회에서 찬양사역팀(성가대)이 없어지거나 노령화되면서 몇 명의 워십팀으로 대체하는 현상은 2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바쁜 주중에 연습시간을 할애하고, 가족과 동행하고 싶은 주일에도 교회에 일찍 나오고, 예배 후에는 다음 주일 특순을 연습하는 찬양사역팀과 챔버의 헌신은 대단한 것이다. 차세대 교사들, 공동체 리더십들, 주차 안내, 청소 봉사자들, 각 사역팀 책임자들, 교역자들도 존경스럽다. 한 장로님은 본인이 서울에서 경영하던 병원을 여수로 옮겼는데, 순예배에 참석하고 공동체를 섬기기 위해 매주 서울로 올라온다고 한다. 지방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한 집사님은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와 차세대 교사로 섬기고 있다. 그의 입술은 늘 부르터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여성 CEO)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