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과학주의 분별하기
특별기고
과학과 과학주의 분별하기
기독교인에게 과학이란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이성이라는 선물을 사용해서 그가 창조하신 만물을 탐구하고, 이해함으로써 만물에 깃들인 그의 신성과 능력을 맛보는 달콤한 여정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거룩한 행위이다. 선하고 친절하신 하나님은 성경과 함께 우리에게 자연을 주셔서 하나님을 느끼고 알도록 허락하셨다(롬 1:20). 발명의 지혜도 주셨다. 고성능 현미경으로 하나님의 섬세하신 능력을 보거나 고성능 망원경으로 끝없는 우주의 신비스러움에서 광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알려주신다. 이 모든 복잡성과 역동성으로 가득찬 우주 만물에 깃들인 철저한 질서를 통해서 우리의 생존과 편안함을 보장하신다. 인간에게 집중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지금도 지속적으로 나타내고 계신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끝으로 지으신 이 세계는 정말 아름답고 오묘하다(시편 8:1~4). 이처럼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나타내는 귀중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반면 과학주의(scientism)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물질만이 영원히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인 것으로 인식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적 세계관의 하나이다.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떠한 초자연적 존재나 현상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세계관이다. 과학주의는 합리적 증거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의 특성과 가속적으로 확장되는 과학 시대라는 시대 주류의 갑옷을 입은 매우 강력한 비기독교적 세계관이다. 무엇보다 과학주의는 그 내용과 정신이 일반적인 공교육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합리주의(rationalism)와 인본주의(humanism)의 속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차세대들의 신앙을 크게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성경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존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자연주의에서 인간은 단지 물질로 이루어진 기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과학주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 역시 물질의 반응이나 작용의 결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인간의 사회성과 도덕성을 만드는 허브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과학주의에 근거한 주장들은 이미 일반적인 심리학 전공 서적에서 과학적 중심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검증된 학문의 이름으로 교육되고 있다.
과학주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의 실재는 물질이므로 죽음과 함께 소멸하고,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이란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과학주의 세계관에서의 행복은 철저하게 현재 시점(now)과 여기(here)에서의 항상성 상태(homeostatic state)의 성취에 있을 수밖에 없다. 또 과학주의에서의 역사관은 단순히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으로서 역사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역사관과 완전히 괘를 달리한다.
오늘날 과학주의는 기독교를 증거주의에 미흡한 비과학적이고, 현대 사조에 뒤처지는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몰아가며 교육과 문화의 이름으로 도전하고 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풍성한 신앙교육과 동시에 끝없이 밀려오는 세속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력을 교회의 미래인 차세대에게 철저하게 제공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지금 교회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반면 과학주의(scientism)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물질만이 영원히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인 것으로 인식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적 세계관의 하나이다.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떠한 초자연적 존재나 현상을 부정하는 무신론적 세계관이다. 과학주의는 합리적 증거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의 특성과 가속적으로 확장되는 과학 시대라는 시대 주류의 갑옷을 입은 매우 강력한 비기독교적 세계관이다. 무엇보다 과학주의는 그 내용과 정신이 일반적인 공교육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합리주의(rationalism)와 인본주의(humanism)의 속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차세대들의 신앙을 크게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성경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존귀한 존재이다. 하지만 자연주의에서 인간은 단지 물질로 이루어진 기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과학주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 역시 물질의 반응이나 작용의 결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이 인간의 사회성과 도덕성을 만드는 허브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과학주의에 근거한 주장들은 이미 일반적인 심리학 전공 서적에서 과학적 중심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검증된 학문의 이름으로 교육되고 있다.
과학주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의 실재는 물질이므로 죽음과 함께 소멸하고,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이란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과학주의 세계관에서의 행복은 철저하게 현재 시점(now)과 여기(here)에서의 항상성 상태(homeostatic state)의 성취에 있을 수밖에 없다. 또 과학주의에서의 역사관은 단순히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의 연속으로서 역사의 목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역사관과 완전히 괘를 달리한다.
오늘날 과학주의는 기독교를 증거주의에 미흡한 비과학적이고, 현대 사조에 뒤처지는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몰아가며 교육과 문화의 이름으로 도전하고 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풍성한 신앙교육과 동시에 끝없이 밀려오는 세속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력을 교회의 미래인 차세대에게 철저하게 제공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지금 교회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발문>
과학주의는 기독교를 비과학적이며,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몰아가며,
교육과 문화의 이름으로 도전하고 있다.
풍성한 신앙교육과 동시에 세속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력을 차세대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지금 교회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고리타분한 사상으로 몰아가며,
교육과 문화의 이름으로 도전하고 있다.
풍성한 신앙교육과 동시에 세속적 세계관에 대한
대응력을 차세대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지금 교회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