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침묵의 순종 

신앙에세이
 
침묵의 순종 
 
<마가복음> 15장 3~5절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향하는 절정의 장면이다. 빌라도가 붙잡혀 온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는다. 예수님이 “그렇다 네가 말한 대로다”라고 대답하셨다. 추가적인 설명도, 스스로 변명하는 표현도 덧붙이지 않으셨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갖은 방법으로 끌어 내리려 했다. “저 사람들이 너를 여러 가지로 고소하고 있는데, 할 말이 없느냐?”라며 빌라도가 다시 한번 묻는다. 예수님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억울하고, 변명하고 싶고, 설명하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답답한 마음에 역정을 내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침묵으로 순종하셨다. 능력을 과시하지 않으셨고 도망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이기에 잠잠히 감당하셨다. 
십자가의 길은 침묵의 배경에서 잠잠히 걸어가는 단순한 순종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도 잔을 내려놓고 싶은 고통이 있으셨지만, 기도하셨다. 감정, 상황, 간구, 모든 것에 대해 먼저 침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라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더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 뜻을 앞세우지 않겠다는 철저하고 단순한 침묵의 순종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순종이다. 우리도 예수님이 보여주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떤 길이 될 것인지, 무슨 일들이 벌어질지 설명하지 않으셨다.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부르심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더 묻지 않았다. 따지지 않고, 재지 않고, 불평하지 않았다. 그물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갔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담대한 증인들의 삶이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강압적인 게 아니다. 제자로서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허락의 선포다. 먼저 모든 길에 앞장서겠다는 격려의 말씀이고, 우리를 향한 기다림이다. 예수님은 어떤 제자도 억지로 끌고 가지 않으셨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한 사람에게도,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온다는 사람에게도 강압적으로 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의 행위로 응답했다. 우리가 왜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할까?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순종하는 유일하고, 타당한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부르시기에 따라가는 것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예수님이 하라고 하시니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친히 침묵의 순종을 보여주셨다. 채찍질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과 멸시 속에서 십자가를 지셨다. 침묵 속에 순종하셨다. 그리고 “다 이루었도다”라고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십자가 사명의 자리로 부르셨다. 여러 가지 고소를 당하는 것만 같은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말하지 않는 침묵의 순종으로 각자 사명의 자리에서 길, 진리,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 최종현 목사(하늘대학부)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