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
목회칼럼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신앙적 유산 하나를 소개하라고 하면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많은 자랑거리가 있지만,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라는 게 으뜸 아닐까? ‘한국 교회는 기도로 세워진 교회’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기도는 한국 교회를 이끌어 온 중요한 요소다. 미국 장로교(PCUSA) 예배예식서에 ‘통성기도’가 발음 그대로 고유명사(Tongsung Kido)로 언급되고, 한국식 기도(Korean Style Prayer)라고 소개되는 점만 봐도 뜨겁게 기도하는 모습이 한국 교회의 특징이자 귀한 신앙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열정적인 기도의 물결이 한국 기독교 초기 선교사 또는 목회자들의 권면과 지도로 형성된 움직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도들의 자발적인 열망으로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열망을 가지고 모여든 곳이 기도의 자리였고,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새벽기도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는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나 무속신앙에서 형성된 기복신앙적 습관을 따라 기도하던 게 새벽기도의 시작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발적으로 시작됐다고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다.
1898년 황해도 한 교회 사경회에서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감리교 선교사의 부인은 알람시계가 울리듯 새벽마다 여인들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대화나누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다고 한다. 사경회마다 새벽에 기도하는 모임들이 있었고, 학자들은 이 모임들의 연장선에서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다고 평가한다.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열정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의 기도 내용을 보면 단순히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었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신석구 목사는 나라를 위해서 매일 새벽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3.1운동에 동참했고, 전국적으로 회개 기도와 영적 갱신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가정과 사회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고, 무절제함이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매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있던 사람이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도둑질한 사람이 그 물건을 다시 가져다주는 일들이 일어났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성도의 개인적 욕망보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추구하고, 나라와 민족의 암울한 시대적 현실을 바라보며, 목 놓아 부르짖던 자리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세속 종교들이 도를 깨우치기 위해 반복하던 개인적 수행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 교회가 민족적인 위기 상황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도 위대한 영적 각성과 부흥을 이루어 내는 데 성도들의 자발적인 새벽기도회가 기여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시대적이고, 영적인 위기 앞에 서 있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귀한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를 참여해서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나올 것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돌아봐야 한다. 오늘까지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을 기도로 지켜온 무명의 신실한 성도들처럼 의무감보다 자원함으로, 나의 유익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마 6:33).
/ 박근범 목사(예배본부, 김포공동체)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열정적인 기도의 물결이 한국 기독교 초기 선교사 또는 목회자들의 권면과 지도로 형성된 움직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성도들의 자발적인 열망으로부터 일어난 현상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열망을 가지고 모여든 곳이 기도의 자리였고,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새벽기도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는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나 무속신앙에서 형성된 기복신앙적 습관을 따라 기도하던 게 새벽기도의 시작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자발적으로 시작됐다고 이해하는 게 더 적절하다.
1898년 황해도 한 교회 사경회에서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새벽기도회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감리교 선교사의 부인은 알람시계가 울리듯 새벽마다 여인들이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대화나누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야 했다고 한다. 사경회마다 새벽에 기도하는 모임들이 있었고, 학자들은 이 모임들의 연장선에서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다고 평가한다. 기도의 자리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열정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의 기도 내용을 보면 단순히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었다.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신석구 목사는 나라를 위해서 매일 새벽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3.1운동에 동참했고, 전국적으로 회개 기도와 영적 갱신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가정과 사회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고, 무절제함이 사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매일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있던 사람이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도둑질한 사람이 그 물건을 다시 가져다주는 일들이 일어났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성도의 개인적 욕망보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추구하고, 나라와 민족의 암울한 시대적 현실을 바라보며, 목 놓아 부르짖던 자리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세속 종교들이 도를 깨우치기 위해 반복하던 개인적 수행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 교회가 민족적인 위기 상황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도 위대한 영적 각성과 부흥을 이루어 내는 데 성도들의 자발적인 새벽기도회가 기여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시대적이고, 영적인 위기 앞에 서 있는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귀한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를 참여해서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나올 것인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돌아봐야 한다. 오늘까지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을 기도로 지켜온 무명의 신실한 성도들처럼 의무감보다 자원함으로, 나의 유익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함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너희에게 더해 주실 것이다”(마 6:33).
/ 박근범 목사(예배본부, 김포공동체)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