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상처는 선물이자 면류관!

신앙에세이
 
상처는 선물이자 면류관!
 
배우자의 상처가 오히려 큰 은혜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를 돌아보면 나는 자상한 엄마가 아니었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이 가장 기본적인 것만 했던 것 같다. 아이가 학교갈 때나 집에 돌아올 때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맞아주는 것, 방과 후 간단한 간식을 챙겨주는 것, 학교에서 필요한 부분을 챙겨주는 것 정도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모습을 본 남편이 “우리 아이는 참 좋겠다! 이렇게 좋은 엄마가 있어서…”라고 말했다. 내가 ‘참 좋은 엄마’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다. 주변의 다른 엄마들을 보면 아이들을 더 따뜻하고, 자상하게 돌보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항상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했던 남편에게는 어린 시절 배경이 있다. 시어머니가 젊어서부터 중풍이 왔고, 몸이 약해서 항상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 아이들 학교에서 행사가 있어도 참석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면 다른 친구들은 가족과 소풍 오듯 운동장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는데, 남편은 혼자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슬픈 기억이 있다고 한다. 또 남편이 어렸을 때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항상 간호해 드려야 했었는데, 우리 아이가 엄마의 돌봄을 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꼭 돌봄 받는 것 같은 대리보상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 한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만약 남편이 지극정성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면 ‘당신은 왜 우리 어머니처럼 아이를 잘 챙겨주지 않느냐?’며 불평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기에 내가 아이에게 조금만 잘 해줘도 대리만족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에게 더 잘해줘야겠구나!’하고 다짐했다.
남편에게 있었던 어린 시절의 아쉬웠던 마음이 도리어 나에게 칭찬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니었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아쉬웠던 부분이 새 가정을 이루며 채워지는 것을 느낄 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고 한다. 남편의 이전 환경 속에도 마음에 깊은 상처가 없었던 이유는 남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아버님이 ‘존(尊)’, ‘귀(貴)’, ‘부(富)’라는 한자 세 글자를 써주셨는데 남편이 그날부터 이 단어를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남편이 다른 아이들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었지만, 주눅 들지 않고 열등감에 쌓이지 않았던 이유는 ‘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이고, 부한 인생을 살 것’이라는 <이사야> 43장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만드신 분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건져주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네 이름을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사 43:1).
“네가 내 눈에 소중하고 귀한 만큼, 또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대신해 다른 사람을 내주고 네 목숨을 대신해 다른 민족들을 내주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동쪽에서 네 자손들을 데려오고 서쪽에서 너를 모으겠다”(사 43:4~5).
남편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겪어봤기에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그 모습이 가정에서도 적용되면서 항상 따뜻함이 흐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상처가 하나님 안에서 재해석이 되면, 그 상처는 흉터가 아니라 선물과 면류관이 된다. 가족에게 가장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따뜻한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분 안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 강미향 목사(가정사역공동체)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