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사랑부 교사의 고백] 그렇게 ‘사랑부’가 시작되었다!
초대 사랑부 교사의 고백
그렇게 ‘사랑부’가 시작되었다!
1987년 특수교육을 전공한 나는 자연스럽게 장애 아동과 구원, 교회와 예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 교회에 장애아동부서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WHO(세계보건기구)가 전 세계 인구의 10%가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나는 ‘온누리교회에도 장애 자녀를 둔 가족이 많을 텐데 그들이 왜 교회에 없을까?’ 질문했다. 당시에는 가정에 장애 자녀가 있으면 가능한 숨기고 싶고, 숨겨야 하는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몹시 마음이 아팠다.
그 무렵,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데니스레인 목사의 <창세기> 강해설교 집회에서 ‘장애 아동을 위한 예배가 교회에 세워져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데니스레인 목사가 설교 중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하는 게 창조 목적임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유치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명의 친구가 유치부 예배에 참석했다. 그 친구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예배 시간마다 돌보기 시작했다. 이 일이 교회에 알려지면서 장애 자녀들이 한 명, 두 명 예배에 참석했다. 그렇게 ‘사랑부’가 시작되었다. 당시 이항봉 전도사가 사랑부를 섬겼고, 사랑부에서는 ‘예수님, 저두요!’라는 제목의 공과를 만들었다. 예배뿐만 아니라 제주 한라원, 포항 한동대 등지로 가족수련회도 갔다.
한동안 사랑부 친구들과 교사들이 짝이 되어서 유치부에서 중등부까지 함께 예배드리고, 성경공부를 했다. 하지만 사랑부 친구들이 가진 여러 행동 특성으로 인해서 다른 부서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서 학급을 달리하는데, 교회에서도 과연 나눠야 할까?’ 갈등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부 친구들이 다른 부서에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다른 부서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사랑부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더 좋은 방법 같다. 사랑부 친구들이 다른 부서에 가면 다수 속에 소수로 존재하고, 단순히 공간적으로 함께하는 것뿐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부서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사랑부에 와서 함께 예배드리면 사랑부 친구들은 평소대로 예배를 드리고, 주인의 마음으로 다른 부서 친구들을 맞이할 수 있다. 다른 부서 친구들은 사랑부 예배를 드리면서 장애인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랑부 예배를 생각하며 때때로 두 가지 오류에 빠지기 쉽다. 첫째, 장애인은 무조건 구원을 받을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3장 10절 말씀처럼, 모든 인간은 죄 중에 태어난 죄인이고,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함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지식과 물질, 건강과 힘이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장애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하는 데, 장애인을 열외로 둘 수 없다. 둘째, ‘장애인이 어떻게 십자가의 도를 깨달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다. 구원의 첫걸음인 죄를 깨닫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다. 세상의 허다한 유명한 학자나 지식인들도 성령님이 아니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요 16:7). 사랑부 예배에서 나의 죄인 됨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눈물로 고백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할 수 있구나”가 아니라 “그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구나”라고 여기는 게 옳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장애인이 열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1988년 한 명으로 시작한 온누리교회 사랑부가 지금은 인원이 많이 늘었다는 게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실수하지 않으시며,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성도가 서로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바란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남을 대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온 누리에 흘러넘치기를 기대한다. 장애인들이 어디에서든지 예배드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나영지 성도(초대 사랑부 교사)
그 무렵,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데니스레인 목사의 <창세기> 강해설교 집회에서 ‘장애 아동을 위한 예배가 교회에 세워져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데니스레인 목사가 설교 중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과 교제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하는 게 창조 목적임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유치부 교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명의 친구가 유치부 예배에 참석했다. 그 친구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예배 시간마다 돌보기 시작했다. 이 일이 교회에 알려지면서 장애 자녀들이 한 명, 두 명 예배에 참석했다. 그렇게 ‘사랑부’가 시작되었다. 당시 이항봉 전도사가 사랑부를 섬겼고, 사랑부에서는 ‘예수님, 저두요!’라는 제목의 공과를 만들었다. 예배뿐만 아니라 제주 한라원, 포항 한동대 등지로 가족수련회도 갔다.
한동안 사랑부 친구들과 교사들이 짝이 되어서 유치부에서 중등부까지 함께 예배드리고, 성경공부를 했다. 하지만 사랑부 친구들이 가진 여러 행동 특성으로 인해서 다른 부서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해서 학급을 달리하는데, 교회에서도 과연 나눠야 할까?’ 갈등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부 친구들이 다른 부서에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다른 부서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사랑부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더 좋은 방법 같다. 사랑부 친구들이 다른 부서에 가면 다수 속에 소수로 존재하고, 단순히 공간적으로 함께하는 것뿐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부서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사랑부에 와서 함께 예배드리면 사랑부 친구들은 평소대로 예배를 드리고, 주인의 마음으로 다른 부서 친구들을 맞이할 수 있다. 다른 부서 친구들은 사랑부 예배를 드리면서 장애인과 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랑부 예배를 생각하며 때때로 두 가지 오류에 빠지기 쉽다. 첫째, 장애인은 무조건 구원을 받을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3장 10절 말씀처럼, 모든 인간은 죄 중에 태어난 죄인이고,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함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지식과 물질, 건강과 힘이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장애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해야 하는 데, 장애인을 열외로 둘 수 없다. 둘째, ‘장애인이 어떻게 십자가의 도를 깨달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다. 구원의 첫걸음인 죄를 깨닫는 것은 우리의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다. 세상의 허다한 유명한 학자나 지식인들도 성령님이 아니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요 16:7). 사랑부 예배에서 나의 죄인 됨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눈물로 고백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가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할 수 있구나”가 아니라 “그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구나”라고 여기는 게 옳다.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장애인이 열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1988년 한 명으로 시작한 온누리교회 사랑부가 지금은 인원이 많이 늘었다는 게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실수하지 않으시며,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모든 성도가 서로를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바란다. 내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처럼, 남을 대접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온 누리에 흘러넘치기를 기대한다. 장애인들이 어디에서든지 예배드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나영지 성도(초대 사랑부 교사)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