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
신앙에세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
지난 2018년 소천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대목이 있어서 나누고자 한다.
더러움을 뜻하는 형용사 ‘Dirty’는 흙을 뜻하는 단어 ‘Dirt’에서 유래됐다. 여기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보통 흙이 더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제자리에 있을 때는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흙이 있어야 할 땅이나 길에서 꽃을 피우고, 길을 만들고, 식물을 키워내는 등 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 보고 트집 잡아서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흙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옷이나 신발, 손 등에 묻었을 때는 그것을 더럽다고 말한다. 바로 ‘Dirt’가 ‘Dirty’가 되는 것이다. 더럽다고 생각되는 그 흙을 빨리 씻어 내기 마련이다. 손을 씻어 내고, 옷과 신발을 털어 냄으로써 흙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 헬라어에서 죄, 죄악, 불법 등을 뜻하는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어야 할 곳, 그 자리를 잃고 목적한 바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는 의미다. 우리는 있어야 할 곳,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죄인이 되었다. 하나님 곁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곁을 벗어나 죄인이 되었다.
신앙은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로 가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찾으셨다.
지난 종려주일 본문이었던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새끼 나귀를 가져오도록 명령하셨다. 그때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예수님은 새끼 나귀뿐만 아니라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하나님이 그 자리를 버렸던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그 아들을 내어주신 것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 두 명을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라. 그곳에 들어가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하나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서 이리로 끌고 와라. 만약 누가 ‘왜 이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필요하시니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라’”(막 11:1~3).
오늘날 우리의 제자리가 어디일까? 지금 당장 짐을 싸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선교지로 가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과녁을 벗어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제자리일 것이다. 더불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복음을 드러내야 한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품고, 저마다 제자리를 살아가기를,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 양진범 목사(평택온누리교회)
더러움을 뜻하는 형용사 ‘Dirty’는 흙을 뜻하는 단어 ‘Dirt’에서 유래됐다. 여기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보통 흙이 더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제자리에 있을 때는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흙이 있어야 할 땅이나 길에서 꽃을 피우고, 길을 만들고, 식물을 키워내는 등 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것 보고 트집 잡아서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흙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옷이나 신발, 손 등에 묻었을 때는 그것을 더럽다고 말한다. 바로 ‘Dirt’가 ‘Dirty’가 되는 것이다. 더럽다고 생각되는 그 흙을 빨리 씻어 내기 마련이다. 손을 씻어 내고, 옷과 신발을 털어 냄으로써 흙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하다. 헬라어에서 죄, 죄악, 불법 등을 뜻하는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어야 할 곳, 그 자리를 잃고 목적한 바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는 의미다. 우리는 있어야 할 곳,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죄인이 되었다. 하나님 곁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 곁을 벗어나 죄인이 되었다.
신앙은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자리로 가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찾으셨다.
지난 종려주일 본문이었던 <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새끼 나귀를 가져오도록 명령하셨다. 그때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예수님은 새끼 나귀뿐만 아니라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 하나님이 그 자리를 버렸던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그 아들을 내어주신 것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올리브 산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 제자 두 명을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보이는 마을로 들어가라. 그곳에 들어가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하나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서 이리로 끌고 와라. 만약 누가 ‘왜 이러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필요하시니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겠다’고 하라’”(막 11:1~3).
오늘날 우리의 제자리가 어디일까? 지금 당장 짐을 싸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선교지로 가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과녁을 벗어나지 않도록 사는 것이 제자리일 것이다. 더불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복음을 드러내야 한다.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품고, 저마다 제자리를 살아가기를, 그리스도의 담대한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 양진범 목사(평택온누리교회)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