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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을 에워싼 다원주의 프레임
오늘날, 기독교를 위협하는 거대한 골리앗 중 하나는 다원주의 세계관이다. 다원주의는 ‘다른 견해라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는 결이 다르다. ‘다른 진리라도 모두 똑같은 진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까지 나가기 때문이다. ‘초월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도 모자라, 보편적 도덕마저 억압적이란 이유로 강하게 거부한다. 타협을 거부하는 기독교인은 당연히 미움의 대상이 되고, 걸핏하면 ‘다양성을 짓밟는다’는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
이렇듯 절대적 진리를 배척하는 ‘도덕적 상대주의’는 필연적으로 ‘나의 절대화’로 치닫는다. 사실과 가치보다 감정과 주관이 중요하다 보니 ‘나의 생각’을 진리로 대체한다. 이런 ‘자기중심성’은 인간의 타락한 본능에 영합하기 쉽다. 전통적 가치인 희생, 용기, 정직, 책임 등이 종적을 감추고, 개인과 사회의 윤리는 끝없이 추락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인간 존엄성에서 출발한 자기결정권이 다원주의 세례를 받은 자기중심성과 결합해 극심한 가치 전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임신을 종결할 것인지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라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혼인과 가정의 유지보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앞세운 간통죄 폐지 결정을 했다. 법원도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한 군형법 적용을 제한하고, 동성 커플을 사실혼과 같이 평가해 피부양 자격을 인정했다. 이젠 ‘선택’이란 용어가 인간 행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 내지 궁극적 가치로까지 격상한 느낌이다. 지금도 뱀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만들 능력’이 있다는 거대한 거짓말을 주입하고, 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하나님과 같은 권력’을 갈망한다.
과거 도덕률이 존재하던 시대엔 ‘옳고 그름의 경계’가 분명했다. ‘도덕적 합의 없이 법이 있을 수 없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법은 도덕을 법제화해 놓은 거였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 법을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가 강제력에 대한 과학’, ‘사회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때론 ‘유토피아적 거짓 환상을 위해 사람을 조종하는 도구’로까지 불린다. 법의 위상이 추락한 거다. 아이러니한 건 바닥에 떨어진 법이 힘은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도덕이 부재한 사회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질서를 잡아주는 권력이 법이기 때문이다. 법이 흔들리면 사회도 존립하기 어렵다.
기독교 세계관은 ‘세상엔 선악이 공존하고,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지켜보신다는 관점이 수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삶의 이타적 가치를 끌어낸다. 이런 초월성의 상실은 사회의 정의도, 개인의 인격도 무너뜨리기 쉽다. 실제로 다원주의 세계관에 뒤덮인 지금은 인간의 죄성을 억제해 온 두 가지 힘, 바로 ‘양심’과 ‘칼’ 중에서 칼만 남은 형국이다. 양심이 부재한 사회는 규제나 감시를 위한 비용이 증가하고, 복잡하고 새로운 규칙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양심이 무뎌질 때마다 권력은 칼을 더 휘두른다. 한데 정의롭지 못한 칼날은 해악이 크다. 도덕의 부재에 이은 법의 타락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우리나라도 법의 칼날로 모든 걸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법이 탑다운 방식으로 특정 가치를 강요하고, 이를 받아들인 입법과 사법이 대단히 빨리 그리고 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목도한다. 옳고, 그름의 영역에 대한 기준을 자의적으로 설정해 복잡하고 교묘한 법들을 무수히 찍어내는 ‘입법의 과잉과 남용’, 상위법의 통제도 받지 않고 다수의 뜻도 싫어하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이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창조질서에 부합하는 법과 정의를 세우는 건 다원주의 골리앗과의 영적 전쟁이다. 전략과 용기를 구하자! 진리를 거부하는 세속사회를 향한 ‘원칙을 가진 설득’과 ‘책임 있는 참여’는 기독교인의 복음적 사명이다.
다만, 우리는 다원주의 프레임을 깨뜨리면 이상향이 도래한다고 믿는 유토피아주의자는 아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법과 양심에 의해 통제받는 게 마땅하고, 역사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완성하신다고 믿는 종말론자다.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말씀대로 살려는 용기를 가지고, 공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 비전을 품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하용조 목사님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성령의 사람이여,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십시오!”
/ 이은경 변호사(OCC공동체.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 대표이사)
이렇듯 절대적 진리를 배척하는 ‘도덕적 상대주의’는 필연적으로 ‘나의 절대화’로 치닫는다. 사실과 가치보다 감정과 주관이 중요하다 보니 ‘나의 생각’을 진리로 대체한다. 이런 ‘자기중심성’은 인간의 타락한 본능에 영합하기 쉽다. 전통적 가치인 희생, 용기, 정직, 책임 등이 종적을 감추고, 개인과 사회의 윤리는 끝없이 추락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인간 존엄성에서 출발한 자기결정권이 다원주의 세례를 받은 자기중심성과 결합해 극심한 가치 전쟁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헌법재판소는 임신을 종결할 것인지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 주라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혼인과 가정의 유지보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앞세운 간통죄 폐지 결정을 했다. 법원도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한 군형법 적용을 제한하고, 동성 커플을 사실혼과 같이 평가해 피부양 자격을 인정했다. 이젠 ‘선택’이란 용어가 인간 행동을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 내지 궁극적 가치로까지 격상한 느낌이다. 지금도 뱀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만들 능력’이 있다는 거대한 거짓말을 주입하고, 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하나님과 같은 권력’을 갈망한다.
과거 도덕률이 존재하던 시대엔 ‘옳고 그름의 경계’가 분명했다. ‘도덕적 합의 없이 법이 있을 수 없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처럼, 법은 도덕을 법제화해 놓은 거였다. 그러나 금세기 들어 법을 이렇게 정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가 강제력에 대한 과학’, ‘사회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때론 ‘유토피아적 거짓 환상을 위해 사람을 조종하는 도구’로까지 불린다. 법의 위상이 추락한 거다. 아이러니한 건 바닥에 떨어진 법이 힘은 더 강해졌다는 점이다. 도덕이 부재한 사회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질서를 잡아주는 권력이 법이기 때문이다. 법이 흔들리면 사회도 존립하기 어렵다.
기독교 세계관은 ‘세상엔 선악이 공존하고,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지켜보신다는 관점이 수준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고, 삶의 이타적 가치를 끌어낸다. 이런 초월성의 상실은 사회의 정의도, 개인의 인격도 무너뜨리기 쉽다. 실제로 다원주의 세계관에 뒤덮인 지금은 인간의 죄성을 억제해 온 두 가지 힘, 바로 ‘양심’과 ‘칼’ 중에서 칼만 남은 형국이다. 양심이 부재한 사회는 규제나 감시를 위한 비용이 증가하고, 복잡하고 새로운 규칙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양심이 무뎌질 때마다 권력은 칼을 더 휘두른다. 한데 정의롭지 못한 칼날은 해악이 크다. 도덕의 부재에 이은 법의 타락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우리나라도 법의 칼날로 모든 걸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법이 탑다운 방식으로 특정 가치를 강요하고, 이를 받아들인 입법과 사법이 대단히 빨리 그리고 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목도한다. 옳고, 그름의 영역에 대한 기준을 자의적으로 설정해 복잡하고 교묘한 법들을 무수히 찍어내는 ‘입법의 과잉과 남용’, 상위법의 통제도 받지 않고 다수의 뜻도 싫어하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이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창조질서에 부합하는 법과 정의를 세우는 건 다원주의 골리앗과의 영적 전쟁이다. 전략과 용기를 구하자! 진리를 거부하는 세속사회를 향한 ‘원칙을 가진 설득’과 ‘책임 있는 참여’는 기독교인의 복음적 사명이다.
다만, 우리는 다원주의 프레임을 깨뜨리면 이상향이 도래한다고 믿는 유토피아주의자는 아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법과 양심에 의해 통제받는 게 마땅하고, 역사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완성하신다고 믿는 종말론자다. 마지막 날이 오기까지 말씀대로 살려는 용기를 가지고, 공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자! 비전을 품은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하용조 목사님 말씀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성령의 사람이여,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고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십시오!”
/ 이은경 변호사(OCC공동체.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 대표이사)
작성자 박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