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크리스천과 대중문화-크리스천 눈으로 대중문화 읽기
무분별한 대중문화, 신앙적 가치관 흔들 수 있어
정서에 도움 되고, 분별할 수 있을 만큼만 즐겨야
“TV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무분별한 대중문화가 크리스천들의 신앙을 흔들 수 있다. 유해한 콘텐츠들이 가치관에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유해한 콘텐츠에 빠져 교회보다 대중문화에서 위로와 안식을 찾는다면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크리스천들이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유해한 콘텐츠를 분별할 줄 알아야하는 이유다. 어떻게 하면 크리스천들이 유해한 콘텐츠를 분별하면서 신앙을 지킬 수 있을까. / 박잎새 기자 leaf@onnuri.org
유튜브의 영향력이 이렇게 막강할 줄 몰랐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세상에 나왔다. 조회 수가 무려 20억을 돌파했다. 말 그대로 전 세계가 강남스타일 열풍에 휩싸였다. 외국인들이 어설픈 발음으로 강남스타일을 따라 불렀고, 뮤직비디오 패러디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그렇게 가수 싸이가 월드스타가 됐다.
최근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인기도 심상치 않다.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직장인들이 위로 받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착각할 정도다. 그래서일까. 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더 깊게 빠져들었다. 이렇듯 대중문화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오늘도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유해한 대중문화가 신앙 흔든다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자칫하면 대중문화가 욕망과 쾌락의 미끄럼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다. 말 그대로 콘텐츠 홍수다. 문제는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나쁜 불량식품 같은 유해한 콘텐츠다. 요즘은 공중파 방송에서조차 동성애를 옹호하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 MBC에서 제작한 드라마 ‘형영당일기’는 방송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 형영당일기는 결혼한 형이 가정을 버리고 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담았다. 기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동성애를 옹호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를 반영하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우려해서다. 이 드라마는 거센 논란 끝에 형제간의 사랑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수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내용을 수정했다. 이 드라마의 대본은 2006년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기성 작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기대치가 높았던 작품이었는데 기독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발로 8년 만에 내용을 수정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작품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를 두고 창작행위에 대한 간섭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동성애나 근친상간은 사랑을 말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누가 봐도 유해한 콘텐츠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독교가 전통적 신앙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대중들과 기독교인들의 시각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사례는 또 있었다.
2012년 팝스타 레이디 가가(Lady Gaga)가 내한공연을 했다. 당시 일부 크리스천들의 움직임을 되짚어보자. 그들은 ‘동성애와 포르노그라피를 조장한다’면서 공연 저지 운동을 벌였다. 레이디 가가가 처음 내한공연 했을 당시 그녀는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피아노 의자에 앉아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했었다. 그녀의 공연 퍼포먼스 수위는 갈수록 높아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두 번째 내한공연이 예고됐다. 공연장 앞과 SNS에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녀의 공연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보란 듯이 가룟 유다를 떠올리게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자신의 공연을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응수한 것이다. 퍼포먼스만 문제가 아니다. ‘Judas’라는 앨범에서는 대놓고 가룟 유다를 사랑하고 숭배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그녀의 대표적인 곡 ‘Born this way’의 가사를 들여다보자.
난 내 자신의 방식대로 아름다워.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시지 않으니까.
난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거야. 난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후회하며 네 스스로를 숨기지마. 그냥 네 스스로를 사랑해, 그럼 넌 된거야.
난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거야. 난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재미없게 굴지 마, 그냥 여왕이 되어 버려.
네가 빈털터리든, 돈이 넘쳐흐르든 네가 검은색, 흰색, 베이지,
아니면 멕시코의 후손이든 중동에서 왔던, 동양 사람이건
인생의 장애들이 널 따돌림 당하고, 괴롭힘 당하거나, 놀림 받게 했어도
축하하고 오늘 네 스스로를 사랑해. 왜냐하면 넌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상관없어 네가 게이건, 이성애자건 양성애자건 레즈비언이건
트랜스젠더의 인생을 살건 난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얼핏 보면 다름을 인정하자는 메시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조건적인 자기애와 인간은 완벽하다는 인본주의, 그리고 욕망과 쾌락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동성애를 대놓고 지지한다. 최근 발표한 뮤직비디오에서는 예수의 부활을 복제사건으로 표현했다. 일각에서는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의 확대해석이라고 지적하지만 자칫하면 신앙적 가치관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분명히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뱀파이어, 좀비, 주술 등 반기독교적 콘텐츠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뱀파이어나 좀비는 부정적인 이미지였는데 최근에는 매력적인 용모를 뽐내고 인간과 사랑을 나누는 등 긍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론 상상이 빚어낸 허구지만 사람의 피를 먹거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은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예술의 형태로 합리화시키기에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속성과 본질이 하나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빈치코드>가 출판되었을 때 반응을 떠올려보자. 예수님과 성경을 비판하는 내용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크리스천들은 불매운동을 벌이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 2의 <다빈치코드>들이 재생산되어 유통되고 있다. 크리스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대중문화를 지혜롭게 분별해야 할 분명한 이유다. 신앙적 시각으로 건강하게 분별하지 못하면 유해한 콘텐츠에 물들 수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특히 차세대들이 교묘하게 파고드는 유해 대중문화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한 관리가 요구된다.
대중문화 읽는 세 가지 방법
크리스천들이 이 시대 대중문화의 가치를 등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대중문화에 비해 기독교 문화가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신앙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해서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부정적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진리다. 성경에서 금하는 것은 하지 않아야한다.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하면 유해 대중문화를 분별하고 신앙을 지킬 수 있는지 호주 찬양사역팀 힐송 관계자의 말을 빌려 대안을 제시한다. 힐송 찬양사역팀이 내한했을 때 한 학생이 질문했다.
“대중음악을 들어야 하나요? 듣지 말아야 하나요?”
힐송 찬양사역팀 관계자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는 대중음악을 듣습니다. 다음 세 가지 기준에 의해서 말이죠.”
첫째, 우리 정서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 대중음악을 듣는다.
둘째, 좋은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음악을 듣는다.
셋째, 내가 분별력이 없더라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계시기에, 그 분이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기에 대중음악을 듣는다.
문화는 만드는 사람 뿐 아니라 즐기는 사람도 올바른 세계관이 필요하다. 크리스천으로서 세계관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라
한때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많은 학생들이 학교 시험 답안지에 침대를 ‘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표기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 단순한 광고 문구 하나가 ‘침대’라는 물건의 개념을 뒤바꿔 놓았다. 그만큼 미디어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청소년 시절에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옳은 것을 가르쳐 주고 아름다운 것을 보여줘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책임을 가진 어른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틀린 것’을 ‘옳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고, ‘음란’한 것을 ‘사랑’이라고 보여주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을 금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바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세계관은 ‘자연주의 세계관’이다. 즉, 눈에 보이는 ‘자연세계’만이 전부일 뿐, 자연세계를 초월한 ‘초자연적 세계’나 ‘초자연적인 절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 자연주의 세계관의 핵심이다.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자가 정한 ‘절대적인 진리’나 ‘윤리적 기준’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주의 세계관은 결과적으로 ‘도덕적 상대주의’(모든 도덕적 기준은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정해진다)와 ‘문화 다원주의’(모든 문화는 도덕적으로 동등하다)를 낳게 되었고, 이와 같은 세계관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교육과 대중문화 속에 녹여져서 우리 모두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우리 학교의 윤리 교과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행위’ 자체를 차별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것은 ‘차별적인 행위’요 ‘비윤리적인 행위’로 간주된다. 사사시대와 같이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오늘날의 미덕이요 윤리인 셈이다.
이와 같은 세계관은 교과서 뿐 아니라, 대중음악의 가사나 드라마의 대사 등을 통하여 훨씬 더 매력적이고 효율적으로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예를 들어, 1960년대 비틀즈 음악 안에 담겨져 있던 “Let it Be” (될대로 되라!)와 같은 메시지는 미국 사회 안에 ‘히피 문화’를 양산해 내어 사회 문화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1962년에는 공립학교에서 기도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1973년에는 Roe vs. Wade의 대법원 판결을 통해 낙태가 합법화되면서, 전통적으로 미국 사회가 보수해왔던 기독교적인 문화와 법안들이 하나 둘씩 해체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 안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 세상의 특정 세계관과 가치관이 녹여져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대중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게 될 경우, 우리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가르침, 성경적인 기준보다는 세상적인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 디도서에서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하나님을 안다고는 주장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가증스러운 그리스도인’ (딛1:16)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반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 세계관이 다스리고 있는 대중문화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종교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주적인 진리’다. 교회 안에서의 진리일 뿐 아니라, 가정과 사업장, 학교와 실험실, 법원과 국회 등 이 세상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고 있는 유일한 질서요 법칙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계시된 이같은 신적 질서와 법칙의 본질을 확신하고 그 질서와 법칙을 우리 삶의 유일한 기초로 삼아야 한다. 이것만이 이 세상의 교육과 문화 안에 녹여진 ‘헛된 철학과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고(골2:8)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법칙을 이 땅 가운데 회복시켜 나가는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피할 수 없다면 바꿔야 한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여 이 세상의 문화를 바꿔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한다.
작성자 조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