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순장님이 방언기도 하는 걸 보고 저도 방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기도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생각에 빠집니다. 방언하면 기도도 더 오래 할 수 있고, 집중도 잘 된다고 해서 방언 받으려고 치유집회 같은 곳에 가서 안수기도도 몇 번 받아봤는데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방언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언을 못 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알려주세요, 목사님!”
상담 혹은 대화를 하면서 많은 크리스천이 방언을 사모하는 것을 발견했다. 집회에서 누군가가 방언에 대해 간증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방언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의 표지로 이해되기도 하고, 그 사람의 신앙심이 깊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인 우월감을 경험하기도 하고, 방언을 못 하는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게서 선물로 주신 것 중에 하나다. 고린도전서에 방언의 은사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당시 고린도교회 역시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이해했다. 그런데 안타깝게 방언의 은사로 인해 고린도교회가 영적 분열과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방언을 포함한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다. 나의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 가운데 하나가 방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방언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은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은사가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언의 은사 또한 마찬가지다. 방언의 은사를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와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지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나는 청년 시절 교회를 위한 특별기도회 기간에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다. 당시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 큰 어려움이 있어서 교회 전체가 기간을 정하고 집중적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다. 그때 나는 방언의 은사를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도회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다. 방언의 은사는 구한다고 무조건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같다고 말한다(고전 12:4).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 분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셨다(고전 12:10). 사람마다 주어진 은사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사명이 다르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하시고 뜻하신 바를 이루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방언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은사 중에 하나다. 무엇이 우월한 것이고, 무엇이 열등한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안타깝게 우리 안에 은사의 다양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방언과 같이 평범해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은사가 중요하고 우월해 보이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 가운데 방언이 아니지만 다른 것이 주어져 있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해 역사하실 일과 계획이 있다면 방언을 은사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라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따라 이루어진다. 방언하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은 다른 은사와 방법으로 뜻과 계획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방언에 대한 사모함이 있다면 기도로 구하라.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구하고 고백하라(마 26:39, 막 14:36, 눅 22:42).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간구를 기억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 정한효 목사(하늘대학부)
방언은 하나님께서 은사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게서 선물로 주신 것 중에 하나다. 고린도전서에 방언의 은사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당시 고린도교회 역시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이해했다. 그런데 안타깝게 방언의 은사로 인해 고린도교회가 영적 분열과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방언을 포함한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일이다. 나의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나님의 일 가운데 하나가 방언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방언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은사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은사가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방언의 은사 또한 마찬가지다. 방언의 은사를 통해 내가 속한 공동체와 세상에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지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나는 청년 시절 교회를 위한 특별기도회 기간에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다. 당시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 큰 어려움이 있어서 교회 전체가 기간을 정하고 집중적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다. 그때 나는 방언의 은사를 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도회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경험했다. 방언의 은사는 구한다고 무조건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렇지 않다고 해서 주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성령은 같다고 말한다(고전 12:4).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 분별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셨다(고전 12:10). 사람마다 주어진 은사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사명이 다르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하시고 뜻하신 바를 이루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방언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은사 중에 하나다. 무엇이 우월한 것이고, 무엇이 열등한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다.
안타깝게 우리 안에 은사의 다양성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방언과 같이 평범해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주목하는 은사가 중요하고 우월해 보이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 가운데 방언이 아니지만 다른 것이 주어져 있음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방언을 통해 역사하실 일과 계획이 있다면 방언을 은사로 주실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라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방언 여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따라 이루어진다. 방언하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분명히 하나님은 다른 은사와 방법으로 뜻과 계획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방언에 대한 사모함이 있다면 기도로 구하라. 다만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구하고 고백하라(마 26:39, 막 14:36, 눅 22:42).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간구를 기억하시고 축복해 주실 것이다.
/ 정한효 목사(하늘대학부)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