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이제는 전문인 선교사를 꿈꿉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양재 온누리교회 피아노 조율사 박창국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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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국 집사는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피아노를 관리하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피아노는 명품이 된다. 박 집사는 전국을 누비며 피아노를 조율하고, 고치는 일을 한다. 피아노 조율이라는 외길을 30년 동안 걸어온 전문가다. 10년 전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난 이후 삶이 180도 달라졌다. 아웃리치를 가서 낡은 피아노를 도색하고, 조율하고 있다. ‘전문인 선교사’라는 새로운 꿈도 꾸고 있다. 신학을 공부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피아노 선율처럼 곱고 아름다운 그의 인생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피아노 건반 88개와 220여 개의 피아노 줄이 만나면 아름다운 연주가 완성된다. 피아노는 예민한 악기다 기름칠 해주고, 조율해주지 않으면 그 아름다운 소리를 잃는다. 장식용 피아노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부품을 교체하고 수리하듯 피아노도 정기검진과 수리가 필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피아노라도 조율사의 손을 거쳐야 좋은 소리가 난다.
양재 온누리교회 박창국 집사는 피아노 조율 경력 30년 된 소리기술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30년 전에는 악기가 워낙 귀해 서양 악기는 만져볼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곱지 않은 음색의 피아노를 고쳐보고자 무턱대고 뜯어보았다. 그런데 조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피아노 소리는 더 엉망이 됐다. 그 사건과 삼촌의 제안이 더해져 피아노 조율 인생이 시작됐다. 당시 피아노 조율사는 생소한 직업이었다. 수도 극히 적었다. 그는 스승인 삼촌의 도움으로 망가졌던 피아노의 음색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박창국 집사는 1986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삼촌의 영향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세례도 받았다. 군 제대 후에는 삼촌과 함께 예배드리고, 부흥회도 같이 다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결혼 생활이 공허했다. 운동하고 친구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는 아내가 교회 생활로 바쁘다고 할 때마다 잔소리를 했다. 교회 모임이 잦던 아내와 30분 이상 대화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됐다. 그러던 와중에 유명 피아노 대리점을 차렸다. 사업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피아노 대리점 사업이 실패했다. 1997년 IMF 금융위기가 찾아오면서 문을 닫고 말았다. 유명 피아노 대리점을 정리하고 중고 피아노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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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만나고, 삶이 달라지다

 

그는 2005년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박창국 집사의 아내와 아들은 개척교회를 다니며 늘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박 집사가 예수를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제목을 놓고 부르짖었다. 박 집사의 아내는 그를 좋은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온누리교회로 발걸음을 인도했다.
매주 토요일 아침에 모이는 조기 축구동아리 ‘공사랑’도 그를 교회로 인도하는데 한몫했다. 그는 교회에 적응하면서 삶이 변해갔다. 금요일에는 순 예배, 토요일에는 조기 축구동아리 공사랑 참석, 주일에는 새가족사역팀 봉사를 시작했다.
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삶의 기준이 달라졌다. 돈과 세상친구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2008년에는 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2009년에는 JDS(예수제자학교)과정을 마쳤다. JDS 간사로도 섬겼다. 아내와 함께 40일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했다. 그렇게 지난 5년 동안 쉼 없이 사역했다.
한 번은 중국 아웃리치를 갔는데 한 기술학교에서 피아노 조율에 대한 강의를 의뢰했다. 그 기술학교는 미용, 자동차 정비, 치위생사 기술만을 전수하고 있었다. 박창국 집사는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 여기고 피아노 조율에 대해 강의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돈 받고 피아노를 조율하는 기술자였지만 앞으로는 무보수 전문인 선교사가 되어 보자!”
그의 헌신과 다짐은 확고했다. 그간 바쁘게 달려온 삶을 재정비하며 자신의 기술이 선교지에 서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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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온누리교회 피아노 관리 도맡아

 

2010년 또 다른 아웃리치 현장에서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좋은 피아노가 좋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팀원들이 황급히 박 집사를 찾았다. 그 피아노를 들여다봤더니 줄이 끊어져 있었다. 그는 해머(피아노 현을 때리는 기구)로 두들기고, 소리를 조정하는 작업을 통해 음을 맞춰나갔다. 그의 재능을 눈 여겨 본 이민욱 목사가 제안을 했다.
“양재 온누리교회 피아노를 조율해주시겠습니까?”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의 손을 타면 피아노 선율이 달라졌다. 청각에 민감한 박청국 집사는 연주자의 피아노 연주 소리만 들어도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타는 사람에 따라 다르듯이 피아노도 연주자에 따라 원하는 소리가 다릅니다.”
그는 피아노를 조율할 때 연주자와 호흡을 맞춘다. 문제점을 함께 파악한다. 피아노 조율은 조정과 정음 과정이 포함된다. 음정을 확인한 뒤 건반의 높이, 해머와 현 사이의 간격을 맞추는 조정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능숙하게 복원하는 정음을 한다. 양털과 나무로 된 해머는 기온과 습도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는 양재 온누리교회의 모든 예배 때마다 피아노 연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냉방 기계를 가동했을 때에는 피아노 음이 높게 올라갔고, 난방 기계를 가동했을 때에는 음이 심하게 낮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피아노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나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값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양재 온누리교회 피아노를 고치고, 음을 만들었다. 교회의 특성상 예배가 많고, 반주자가 많은 것을 감안해서 꼼꼼히 살피고, 고쳐나갔다. 피아노 뚜껑을 열어 보면 줄 틈사이에 연필, 볼펜, 심지어 악보까지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종이와 연필이 걸려 피아노 소리가 안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생각하고 소중히 다뤄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문인 선교사의 꿈

 

박창국 집사는 현재 신학생이다. 그가 신학을 하게 된 것은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음악의 불모지인 곳에서 피아노 조율 기술과 복음을 함께 전하는 전문인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메콩강 유역 5개국을 돌며 피아노 조율 기술을 전수하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4천 880킬로미터에 달하는 메콩강 인근에 태국,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이 있다. 그곳에 3억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메콩강 유역 5개국은 빈민층이 많은 국가다. 그런데 피아노는 아직까지 상류층이 접하는 악기였다. 그래서 그는 메콩강 5개국에 피아노를 모르는 이들에게 조율하는 기술을 전하면서 음악도 알리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 찬양의 전파력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은 70살이 넘어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작성자  김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