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열정은 늙지 않는다!”
이병현∙김현기 선교사 부부의 ‘인생 3부작’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삶으로 증명하고 있는 선교사가 있다. 이병현, 김현기 선교사 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병현 선교사는 올해 90세고, 김현기 선교사는 87세다. 그들의 선교열정이 대단하다. 젊은 사람들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다. 67세에 중국 선교사로 부름 받고, 81세에 내몽고로 사역지를 옮겼다. 84세에 은퇴하고 90세인 지금은 중보기도 선교사로 살고 있다. 이병현, 김현기 선교사의 인생 3부작 이야기다.

▲ 이병현, 김현기 선교사가 활짝 웃고있다.
그의 인생 전반부는 남달랐다. 중국 천진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일본을 거쳐 한국에 왔다.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터에서 군 생활을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서는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밀림에서 벌목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5년 뒤에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사업을 했다.
중년, 잘나가던 사업가에서 빈털터리로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를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중동에서 사업을 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면서 동양과 서양의 문물을 배우고 익혔다. 영국에 정착할 무렵 인생역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불교신자이던 이병현, 김현기 선교사가 고향에 대한 향수와 외로움에 지쳐 교회를 찾은 것. 아내를 교회에 데려다 주고 나오려는데 비가 내렸다. 교회문턱도 밟지 않던 그가 비를 피해 교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하용조 목사를 만났다. 하 목사와 잠깐 대화를 했는데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사업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면서 닫혀있던 마음의 문이 열렸다. 그 일을 계기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을 만난 그들 부부는 모든 사업을 접고 빈털터리 신세로 귀국했다.
67세, 중국 선교사로 부름 받다
한국에 오자마자 찾은 곳이 온누리교회다. 온누리교회와 행보를 함께했다. 하 목사는 선교의 ‘선’ 자도 모르던 그들에게 해외선교 사역을 맡겼다. 협력교회를 통해 선교사 파송을 돕고, 후원 및 기도편지를 관리하는 사역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선교를 배웠다. ‘ 기도신문’
을 발행하기도 했다.
어느 날, 중국에서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흑룡강성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도서가 필요합니다.”
이병현 선교사는 그 편지를 받고 곧장 중국 흑룡강성으로 향했다. 책 한 보따리를 메고 갔다.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만 들고 찾아갔기에 교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한밤중 밀밭을 7시간이나 걷고 또 걸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게 권능을 주십시오.”
어둑어둑한 새벽녘 희미한 불이 켜진 집 하나를 발견했다. 문을 두드렸다. 집주인에게 편지봉투를 보여주며 “이 편지를 보낸 분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집주인이 갑자기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 하셨습니다”라면서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 이병현 선교사가 찾던 바로 그 교회였다. 자신이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된 것 같아 정말 기뻤다. 중국 교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닫고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때 그의 나이 67세였다.
고향 천진에 화평국제학교를 세우다
선교사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이병현 선교사는 부름 받은 그날부터 중국 곳곳을 정탐하러 다녔다. 연길, 훈춘, 왕촌, 심양, 천진까지 여러 곳을 다녔다. 고향 천진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는 중국 천진에서 출생했기에 옛 생각이 사무쳤다. “바로 이곳이 나의 선교지구나!”
1995년 4월, 짐을 싸서 아내와 함께 천진으로 향했다. 그렇게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했다. 천진 공안(경찰)이 이병현 선교사에게 이곳에 온 목적을 물었다. 이 선교사가 대답했다.
“내가 천진에서 20년을 살다가 5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분위기가 금세 전환됐다. 효 사상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이 이 선교사를 “라오톈젠(老天津)천진의 어르신이 돌아 왔다”라 부르며 환영하고, 대접했다. 이 선교사 부부는 중국 천진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화평국제학교’ 를 시작했다. 한편, 탄광 지역과 조선족이 모이는 단결촌(團結村)을 찾아가 말씀을 나누었다. 석가장(石家莊)성경학교에서는 한국교사와 중국교사가 성가연습도 하고, 가정교회 위탁도 받게 됐다. 그곳에서 1시간 거리에 떨어진 곳에서 문화교류의 장(場)을 만들었다. 하남성(河南省)지하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가르쳤고, 복음 전하는 제자로 훈련하기도 했다. 이 선교사는 중국인들이 명절에 주고받는 선물도 금지했다. 대신 자필로 카드를 써서 고마움을 표시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나 공안당국으로부터 정직함을 인정받을 정도였다. 공안 당국으로부터 장기 체류증을 통지 받았다. 반면, 화평국제학교 학생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친절, 예의, 정직을 중시한 효과가 컸다. 화평국제학교 출신 학생들 중에 목사와 선교사, NGO단체 종사자 등이 배출되었다.
81세에는 내몽고로 사역지를 옮겼다. 고령의 나이도, 고향을 떠나야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는 것이 선교사의 사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몽고에서의 추억도 특별했다. 아웃리치팀과 함께 400명이 모여 비빔밥을 먹고, 강강술래를 돌았다. 화합의 장이 됐다.
“Do You Love Jesus?” 모인 학생들은 한 목소리로 “Yes, I love Jesus, I love Father!”를 외쳤다. 선교의 열매를 맛보게 했다.
중보기도 선교사가 되다
이병현 선교사 부부는 2011년 20여 년의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다. 20여 년 동안 그들은 중국 천진과 내몽고 등지를 다니며 참 열심히 사역했다. 미전도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의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전도했다.
2011년 84세가 됐다. 언제 나이가 그렇게 많아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쉼 없이 달려왔다. 은퇴했다고 선교를 멈춘 것이 아니다. 은퇴한 이후 두, 세 차례 현장을 찾아가고 있다. 또한 선교사와 선교지에 남겨 둔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있다. 은퇴 이후 중보기도 선교사가 되었다.
새벽예배와 중보기도모임에서 파송 선교사를 위해 계속 중보기도하고 있다. 특히 다음 세대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서빙고 온누리교회에 중보기도모임을 하러올 때마다 교회 곳곳을 다니면서 차세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그가 차세대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이유는 중국 천진 화평국제학교에서의 놀라운 성과를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앞으로 온누리교회 30년은 차세대와 청년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차세대가 하나님을 전하는 믿음의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30년 뒤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김미림 기자 mirim@onnuri.org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