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연구가이자 방송인 ‘심영순 권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음식비법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
진짜 성공한 삶이 무엇일까. 요리연구가이자 방송인 심영순 권사(용산공동체)를 만나면 꼭 묻고 싶었다. 그녀는 1980년대부터 옥수동에서 요리강습을 했다. ‘향신즙 선생’, ‘옥수동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재벌가 며느리와 손녀, 대통령 며느리, 연예인 등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요리강습을 받았다. 2000년에는 그녀의 요리비법이 책으로 출간돼 큰 호응을 얻었고, 요리비법을 응용한 ‘향신장’, ‘향신즙’은 상품화되기도 했다. 2013년부터 작년까지는 케이블방송 ‘한식대첩’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주목받았다. 현재는 배우 박수진과 함께 케이블방송‘옥수동 수제자’에 출연하고 있다. 40여 년간 요리를 연구해 온 심영순 권사를 지난 10일 그녀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민트색 한복 저고리를 입은 심 권사는 입고 있는 한복처럼 곱디 고왔다. 그의 온화한 미소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 이소정 기자 s2868@onnuri.org

▲ 심영순 권사가 한복을 입고 활짝 웃고 있다.
피난시절 어린아이였던 심영순 권사가 교회를 찾아갔다. 신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마음에 사탕과 노트, 필기도구 등을 받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공과공부를 하게 됐다. 그때 그녀는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
“세상 친구들과 교회 친구들은 억양, 생각, 가치관이 달랐어요. 그 때 나도 예수님 믿어서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일이 생각만으로 되지 않았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가게 됐다. 그때부터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신앙이 조금씩 깊어졌다.
핍박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을 전도하기까지
“내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어요.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시선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죠. 이뿐만이 아니에요. 무엇이든지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일이 재밌었고 감사했어요.”
사람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보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너무 귀중하고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더 존귀하게 여기고 섬겼다. 그러자 사람들도 그녀를 좋아했고 많이 따랐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환경을 주관하심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질수록 유교사상이 강했던 어머니의 핍박이 심해졌다.
“아유, 말도 말아요. 그때 성경책이 아궁이에 던져지고 난리가 났었죠. 하루는 어머니께 교회에서 야외를 가는데 다녀오겠다고 했다가 호통을 듣고 설거지물을 뒤집어썼어요. 집 밖에서 기다리던 교회아이들이 제가 설거지물을 뒤집어 쓰는 것을 보고 도망가더라고요. 결국 그날 저만 가지 못했어요.”
심영순 권사가 교회 갔다 오는 날이면 어머니의 따가운 시선과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비록 철저한 유교 사상을 가졌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이웃을 정말 잘 섬기시던 분이셨다. 세입자들에게도 정말 잘해줬다. 특히 어머니는 음식을 많이 해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셨다. 심영순 권사와 언니들은 매일 동네를 뛰어다니며 음식을 전달하기에 바빴다. 어머니가 그러셨기에 심 권사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어머니 말고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결혼 후 삶이었다. 심성이 좋은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댁식구들 출퇴근 시간이 모두 달랐기에 여러 번 상을 차려야 했고, 고된 시집살이를 겪었다. 고비 때마다 그녀에게 힘을 준 것은 찬양이었다.
“♪ 구주여 광풍이 일어 큰 물결이 뛰놀며… 우리가 죽게 된 것을 안 돌아봅니까… 큰 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
힘들 때마다 이 찬양을 부르면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후렴구인 ‘ 큰 풍파는 잔잔해’ 라는 가사가 그녀의 마음을 깊이 위로했다.
가족들의 종교도 각양각색이었다. 제사에 대한 의견 차이가 컸다.
“친척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일단 상만 형식적으로 차려놓는 것이었죠.”
그녀가 상만 차리자고 생각한 이유는 그것 자체로 위로받는 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제사를 드리지는 않았다. 음식도 하나님을 위해 만들었다. 제사상은 온 가족을 모이게 하려는 도구에 불과했다. 조금씩 가족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상을 차리는 일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지금은 40여 명 되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 예배만 드린다. 이렇게 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온 가족이 모여 찬양을 부를 때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했다.
“저는 정말 성공한 인생이에요. 자녀, 손주, 사위, 남편이 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가족 모두가 주변 사람들과 교회를 마음 다해 섬기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사해요.”
“세상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라”는 사명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태어나게 하신 데에는 분명 그 이유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해요.”
심영순 권사는 자녀들의 권유로 온누리교회에 오게 됐다. 매일같이 새벽기도를 갔다. 그때 하나님께서 ‘ 세상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라’ 는 소명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네가 만든 양념을 먹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사람을 살리는 양념을 만들어라.”
이때 그녀가 붙들었던 말씀이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심 권사는 이 말씀을 붙들고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한참을 기도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두부와 콩이 떠올랐다. 또 열두 가지 채소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볶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하는 중에 음식이 구상되었다.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떠오르는 대로 메모를 했다. 그 메모가 그녀가 개발한 양념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40년 전 양념은 방부제, 향료 등 몸에 해로운 재료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매일 동의보감을 찾아가며 인체에 좋은 음식에 대해 공부했다. 당시 그녀의 일상은 공부와 기도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만든 것이 바로 ‘향신즙’ 이다. 향신즙은 우리 몸에 좋은 무와 배, 생강 등을 갈아 농축시켜 만든 양념이다. 그 다음으로는 ‘향신유’ 를 만들었다. 기름이 몸에 들어가면 음식이 소화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두고 매일 기도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채를 넣고 끓이면 좋겠다”는 지혜를 주셨다. 그래서 고추, 생강, 마늘, 파, 깻잎 등 채소와 기름을 반반 넣고 끓여서 향신유를 만들었다. 그 다음은 간장이었다. 당시 간장은 색소 덩어리였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건강한 간장 ‘향신장’ 을 만들었다. 채소와 고기를 넣고 끓여서 몸에 좋은 간장을 개발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만든 양념장이 20여 가지나 된다. 모두 사람을 살리는 양념이다.
한번은 동아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그녀가 개발한 양념 만드는 방법을 책으로 내자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요리강습 받는 사람들에게 했더니 극구 반대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었다. 고민하다 하용조 목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날 하 목사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 때 우연히 김사무엘 목사와 김영숙 사모가 있는 것을 보고 사정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김사무엘 목사가 이렇게 말했다.
“권사님, 옹달샘에 맛있는 물이 고여 그대로 놔두면 썩지만 계속 퍼서 다른 사람들을 먹이
면 새 물이 솟아납니다.”
심 권사는 그 말을 듣고 책을 내기로 했다. 보통 요리책은 3만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다. 그런데 그녀의 책은 출판한 지 3일 만에 1만5천부가 팔렸고 그 이후로 총 10만부 이상이 팔렸다.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 권사는 한식 세계화와 밥상의 회복을 비전으로 품고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서 한식을 건강식품으로 인정하고 연구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식이 알려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욱 건강해지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녀는 밥상의 회복이 곧 가정의 회복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식탁 교제로 사역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가정식을 차리게 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다.
그녀의 넷째 딸이자 식품개발 회사 ‘ NAVE S&F, 담미’ 장윤정 대표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셨어요. 말씀대로 사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죠. 그런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작성자 이소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