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꿈엔들 잊힐리야
통일칼럼
/이용경 장로 (CGNTV 대표)
근 10년 전 만주의 고구려 유적과 백두산을둘러 볼 기회가 있었다. 항공기를 타고 중국심양 요녕을 거쳐 드문드문 압록강을 접하며연길과 용정까지 가서 백두산을 오르고 다시심양을 통해 돌아오는 7박8일 일정이었다. 이틀 밤을 버스에서 자는 빡빡한 행군이었다. 몸은 무척 피곤하였지만 만주 벌판에 흩어져 있는 고대 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문화유산은 실로 놀라웠다. 해방 10여 년, 1950년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구멍투성이 국사 지식에 갇혀있던 나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이었다.
요하문화가 대륙문화의 기원이라고 믿고 있던 황하문화보다 1,000년이나 앞섰고, 고조선,부여의 문화가 요하문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아는 역사의 틀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어디 그 뿐이랴. 요녕 박물관에 전시된고대 여신상의 손이 곰의 발 모양을 한 것을보았을 때 교과서 몇 줄로 배운 우리 고대사에대한 궁금증이 단번에 해소되는 것 같았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올바른 우리 역사의 정립은 한반도 분단이 해소되지 않고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과업이라고생각되었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가정의 믿음의 고향을회복하는 일이다. 1936년 연세 세브란스를 갓졸업한 아버지는 고향 땅 수원을 떠나 무의촌개업을 자임하고 함경도 신창에서 둥지를 틀었다. 북녘생활 10여 년 동안 함흥을 거쳐 정평에 자리를 잡은 가정에서 나는 막둥이로 태어났다. 서너 살이나 되었을까. 정평의 장로교회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도 드리는 40대 아낙네 어머니의 가슴을 파고들다 야단맞던 기억이 나에게는 교회에 관한 첫 번째 추억이다. 1947년, 공산당의 핍박을 피해 38선을넘어 이남 땅 고향으로 떠나겠다는 젊은 의사를 장로로 세우고 “어디를 가나 죽도록 충성하라”고 당부한 믿음의 선배를 아버지는 평생마음에 품고 사셨다. 우리 가족은 이삿짐을 싸놓고 마지막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갈길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라고 찬송을 불렀다.
신의주가 고향인 처가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일가친척 대부분을 북한 땅에 남겨둔 채돌이 갓 지난 집사람 하나만 데리고 월남한 처가는 외할아버지가 목사였으니 믿음의 역사로 따지면 100년이 훨씬 넘는 집안이다. 잠깐떨어져 있으면 될 줄 알았던 남행길이 마지막이별이 된 처가 부모님은 함께 넘어 온 고향친지들과 교회를 세워 평생 섬기며 그리움을 달래셨다.
내가 기억하는 북한은 풍요의 땅이었다. 지금은 식량부족으로 굶어 죽는 동포가 많다는소식이 들리지만 1940년대 함경도는 해산물이 넘쳐나 정어리, 명태, 가자미가 지천에 널려 있는 고장이었다. 올해 85세이신 형님은 아직도 명품 털게로 배를 채우던 이야기를 즐겨하신다.
아버지는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 온 후에도함경도 이웃들의 훈훈한 정을 못 잊어 매년 서울 인근에서 열리는 정평군민 야유회에 참석하곤 하였다. 어린 기억에 운동장 가득 채운실향민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었다. 아마도 남한에서의 삶은 임시이고,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리라. 분단 어언 70년, 마지막 정평군민 야유회가 열린지 벌써 50여 년이넘었다. 전쟁 통에 남하 해 그동안 간혹 왕래가 있던 이웃들도 이제는 모두 돌아 가셨는지소식이 끊어진지 10년이 넘었다. 우리는 영원히 다시 하나가될 수 없는 것인가.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기도한다.
작성자 온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