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맛있는 말씀해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27)

맛있는 말씀해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다”(창 1:27).
 
동성애를 성경에서 부끄러운 일로 기술하고 있지만(롬 1:27), 교회에서 동성애를 다른 죄보다 우선해서 다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신학자가 있다. 동성애의 근본 원인인 성 정체성의 혼란 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바꾸려는 게 반드시 죄인가에 대한 질문도 있다. 십계명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정신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기 사랑’으로 요약하셨다(마 22:37~39). 그런데 십계명은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열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계명은 사랑한다면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초로 주신 계명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첫 인류에게 주어진 유일한 계명은 하나님과 사람을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위대한 존재이며, 하나님을 대리한 지구의 통치자인 인간이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는 경계이다. 그런 의미에서 율법은 마치 국경선과 같다. 국경선은 한 나라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국경선 안에서는 이동이 자유롭지만, 국경을 넘는 이동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첫 번째 계명이 하나님과 사람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경계였다면, 십계명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경계가 포함되었다. 서로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끼리 최소한 죽이고, 빼앗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첫 번째 죄는 피조물인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이며, 타락한 천사도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유 1:6)’이다. 
죄의 근본은 하나님이 부여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십계명 정신 중 하나인 ‘자기 사랑’은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당연히 남자 또는 여자라는 정체성이 포함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명도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그 자체가 너무 분명해서 경계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변할 수 없는 유전정보에 의해 남자와 여자로 결정되고, 그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몸이 만들어지며, 남자와 여자의 연합을 통해서만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는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남자 또는 여자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부부관계를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동성애 관계로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을 동성애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동성애 지지자들은 생물학적인 남자라도 여성과 같은 기질이 있어서 여성으로 살고 싶다면 그가 여성으로 성 정체성을 바꿔 사는 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양한 기질이 있고, 그 기질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이 이루지 못한 탁월한 성취를 할 수 있다. 
교회는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고 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지지해줘야 한다. 문제가 되지 않는 기질과 성품 그리고 변할 수 있는 감정과 문화적 사회적 편견으로 변할 수 없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성 정체성뿐 아니라 키, 미모, 심지어 부모까지 바꾸기를 소망한다. 마음의 상처와 분노가 이 변화를 통해 해결될 것 같은 강한 유혹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변화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비롯해 체질과 성품, 출생 배경 등의 아픔이 도리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은혜의 통로가 됨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나를 지으신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자신을 진정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 이은일 장로(성북공동체,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