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일반은총의 사용명세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영역주권과 일반은총(6)
영역주권과 일반은총(6)
일반은총의 사용명세서
믿지 않는 직장동료들과 함께 가는 노래방에서 기독교인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직장에서 따돌림을 받더라도 세상의 유행가를 부르는 노래방 문화의 포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성도의 삶 아닐까? 교회가 아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과 삶의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 사회로 나가면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자문하는 내용일 것이다. 혹자는 “예수님을 그 상황에 대입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당시 문화와 현대의 다변화한 문화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가나 혼인잔치(마 2:8)에서 포도주를 만드시고 공급하신 예수님을 그대로 우리나라 술 문화에 대입해 보자. 그렇다면 많은 사람에게 술잔치를 베푸는 행위가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과 분리해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질화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반은총론’은 세상살이 방향타에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만의 편한 홈그라운드(교회)에 머무는 게 아니라 거친 세상이 우리가 거할 위치임을 <마태복음> 5장에서 일관되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다니엘이나 요셉 같은 성경 속 일부 영웅들, 또는 많은 간증에서 자랑스럽게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세상 속 성공담이 일반화되고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4)”이라며, “우리의 선한 행실의 빛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셨다. 일반은총론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는 말씀을 믿는 자들의 온전함 기준으로 요구하신다. 교회 내 성도끼리의 관계에 안주하는 것은 세리와 이방인들도 하는 것이며(마 5:46~47), 하나님이 악인에게도 일반은총을 베푸시듯, 세상 속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됨(마 5:45)을 명시하셨다. 일반은총의 목적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인내임은 <베드로후서>에서도 잘 나타난다(벧후 3:7, 9). 자연과 그 모든 질서,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 문화와 예술적 창의력 등을 포함하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모든 자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일반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명확하다. 잃어버린 양한 마리를 끝까지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은총에 대한 관점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한 세상과의 접점(Contact Point)의 역할이다. 그리스도인의 발길이 닿는 세상의 모든 일반은총의 영역은 반드시 구원을 베푸시는 특별은총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야 한다.
믿는 자에게 일반은총이란 달란트(마 25:15~28)와 같은 것이다. 다양한 일반은총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만큼 세상과 많은 접점을 통해서 지경을 넓히고, 더 많은 구원의 열매를 도모할 소명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문화로 인하여 세상에 소극적으로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더 품어야 한다.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대전제 앞에 어느 것도 앞설 수 없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
성경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특별은총의 은혜를 받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인의 일반은총를 개발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훈련이다. 독일의 천체물리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빚어내는 교육이다.
“하나님은 천문학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믿지 않는 직장동료들과 함께 가는 노래방에서 기독교인은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까? 직장에서 따돌림을 받더라도 세상의 유행가를 부르는 노래방 문화의 포기,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성도의 삶 아닐까? 교회가 아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과 삶의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 사회로 나가면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자문하는 내용일 것이다. 혹자는 “예수님을 그 상황에 대입해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 당시 문화와 현대의 다변화한 문화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가나 혼인잔치(마 2:8)에서 포도주를 만드시고 공급하신 예수님을 그대로 우리나라 술 문화에 대입해 보자. 그렇다면 많은 사람에게 술잔치를 베푸는 행위가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과 분리해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질화될 수도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반은총론’은 세상살이 방향타에 매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만의 편한 홈그라운드(교회)에 머무는 게 아니라 거친 세상이 우리가 거할 위치임을 <마태복음> 5장에서 일관되고, 명확하게 말씀하신다. 다니엘이나 요셉 같은 성경 속 일부 영웅들, 또는 많은 간증에서 자랑스럽게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세상 속 성공담이 일반화되고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을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4)”이라며, “우리의 선한 행실의 빛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셨다. 일반은총론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는 말씀을 믿는 자들의 온전함 기준으로 요구하신다. 교회 내 성도끼리의 관계에 안주하는 것은 세리와 이방인들도 하는 것이며(마 5:46~47), 하나님이 악인에게도 일반은총을 베푸시듯, 세상 속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됨(마 5:45)을 명시하셨다. 일반은총의 목적이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인내임은 <베드로후서>에서도 잘 나타난다(벧후 3:7, 9). 자연과 그 모든 질서, 인간의 양심과 도덕성, 문화와 예술적 창의력 등을 포함하는 일반은총(Common Grace)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모든 자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다. 일반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명확하다. 잃어버린 양한 마리를 끝까지 찾고 찾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은총에 대한 관점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부여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한 세상과의 접점(Contact Point)의 역할이다. 그리스도인의 발길이 닿는 세상의 모든 일반은총의 영역은 반드시 구원을 베푸시는 특별은총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야 한다.
믿는 자에게 일반은총이란 달란트(마 25:15~28)와 같은 것이다. 다양한 일반은총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만큼 세상과 많은 접점을 통해서 지경을 넓히고, 더 많은 구원의 열매를 도모할 소명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문화로 인하여 세상에 소극적으로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더 품어야 한다.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대전제 앞에 어느 것도 앞설 수 없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
성경적 교육이란 무엇인가? 특별은총의 은혜를 받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인의 일반은총를 개발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훈련이다. 독일의 천체물리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의 다음과 같은 고백을 빚어내는 교육이다.
“하나님은 천문학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신무환 장로(서빙고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담당)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