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재물]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즐거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 재물
 
돈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즐거움
 
한국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부채 없는 30평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이며, 2,000cc급 중형차를 소유해야 한다. 통장 잔액은 1억 원 이상 보유하면서 해외여행은 1년에 1회 이상 다니는 정도다. 반면 프랑스에서 이야기하는 중산층은 1개 이상 자유롭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 직접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하나가 있을 것, 다룰 줄 아는 악기 한 가지가 있을 것,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하나가 있을 것,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약자를 도우며 살 것 등이다.
2024년 대한민국 소비 동향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도서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중산층을 정의하는 기준이 판이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나라마다 그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기준이 다양하다. 그러나 위의 예에서 볼 때 한국의 기준은 돈과 외형적으로 보이는 고급스러움에 집중되어 있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인품, 가정 교육, 사회적 관계와 영향력 등 다양한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요즘의 흐름은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돼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듯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도 돈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올바로 견지하지 못하면 사회적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경제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는 ‘돈’이다. 풍족하든, 부족하든 생활을 유지하려면 돈을 버는 경제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돈은 자산에 대한 보증 지불수단, 교환 도구 그 이상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가?’ 하는 것이 선악을 판단할 행동이 아니다. 돈은 도덕적으로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을 나누는 것은 사람의 문제다. 오히려 돈은 선한 것의 도구지 선한 것 자체가 아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 세상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면 돈도 도덕적으로 그렇게 사용될 것이지만, 세상은 중립적이지 않다. 불행하게도 물질 만능주의와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돈은 중립적인 교환 수단에 머물지 않고, 세상 권력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돈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돈을 섬기고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심각한 죄의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일단 돈을 삶의 주인으로 허락하면 ‘맘몬’이 되고, 그 맘몬의 탐욕이 다른 모든 것 위에 군림하게 되고, 사람의 무시무시한 주인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은 돈을 좋은 종으로 삼을 수 있다. 성도는 돈을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사용하는 도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정적인 축복을 주실 때에는 선한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유함을 맡기신 것은 그것을 붙잡고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관대하게 나누라고 맡기신 것이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성경은 거듭난 성도인 우리에게 나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시며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섬기라고 하셨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성경에서 말하는 관점은 물질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궁극적인 즐거움에 초점을 맞춘다. 하늘의 보화를 위해 땅의 가치 있는 것을 포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큰 즐거움과 진정한 소유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영역이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곳이라고 고백한 성도라면, 우리가 버는 돈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되기를 소망하며 살아감이 마땅하다. 우리의 소득 중에 구별되어 드리는 헌금과 구제와 사역을 위해 사용되는 물질 역시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드림’으로 인해 이익을 빼앗아 가지 않으신다. 오히려 우리의 관점을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우리 자신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가게 해주신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축복이다.
/ 주성대 장로(동대문중랑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