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성인

[맛있는 말씀해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시 51:4).

맛있는 말씀해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시 5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모두의 죄악에 대한 마땅한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셨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 안에서 자유와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십자가를 통한 구원으로 죄로 인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구원, 죄의 용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밀양>이 있었다. 2007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전도연 배우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유명해졌다. <밀양>에서 여주인공 신애는 유괴된 외아들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신애는 이런 절망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대로,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만나 그에게 용서의 말을 건넨다. 그런데 이 유괴범은 너무나도 평안한 얼굴로 “자신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런 유괴범의 말에 신애는 분노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을 만나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고, 이미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죄로부터 자유하다”는 유괴범의 뻔뻔스러움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큰 오해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다윗도 이 유괴범과 비슷한 뻔뻔스러운 고백을 하는 것 같다. <시편> 51편은 밧세바와의 간음과 충성된 용사 우리야를 죽인 죄악을 회개하는 다윗의 시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다윗은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주께” 범죄하였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는데, “주께만” 범죄하였다고 하니, 밧세바나 우리야에게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도 없던 것일까?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죄악을 고백하고 회개하였다면, 또한 하나님께서 고백한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자세로 나아가야 할까? 비록 나의 죄가 하나님께 용서받았을지라도 그 죄악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떳떳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음에도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기 위해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용서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았던 것 같다. 자신이 저지른 간음과 살인의 죄악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으므로(삼하 12:13), 이미 용서받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용서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밀양>의 유괴범과 달리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더 깊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한다.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서 태어났고, 자신의 어머니도 죄 중에서 자신을 잉태했다고 고백한다(시 51:5).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음과 살인의 죄는 용서하셨고, 이 죄에 대하여 다시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구할 필요는 없지만, 이 죄가 용서되었어도 자신은 또 다시 수많은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해 면죄부를 얻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또한 죄책감을 벗어나는 심리적 도구는 더욱 아니다. 죄에 대한 회개는 도리어 자신이 근본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는 구원의 시작이 된다. 구원은 죄를 저지르는 것이 당연했던 자신이 죄가 싫어지고, 그럼에도 죄를 다시 지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을 경험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회개는 죄에 대한 자유함을 경험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 것 아니라, 죄인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구원의 기나긴 길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밀양>의 유괴범은 신애를 만났을 때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자신이 철저한 죄인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어야 했다. 또한 신애의 용서에 감사하면서 신애의 상처에 공감하여 눈물을 흘려야 했다.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누렸다면, 마땅히 예수님처럼 이웃의 아픔에 함께 울고, 이웃의 사랑에 감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은일 장로(성동광진공동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작성자  김다애